사실 나에게 유재하(1962.6.6-1987.11.1)란 대학교 음악동아리 시절 항상 선배들이 취기에 올랐을 때 들려주는 음악의 주인공이었을 뿐이었다. 심지어 그의 원래 음성으로 듣기보다 선배들의 목소리로 더 많이 듣던 뮤지션이었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 나갔던 2008년에도 유재하의 깊이를 어느 정도 알고 그의 음악 안에서 나의 음악을 펼치기 위해서라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들이 출전했던 대회'라는 그 울타리 안에 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나는 유재하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가수 박원은 지난 2008년 제19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가수 박원은 지난 2008년 제19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 메이크어스 엔터테인먼트


그렇게 얼떨결에 시작했다. 나는 가수가 되어 감히 '대중'이라는 표현을 쓰고, 누군가 내게 직업을 물으면 음악을 한다고 이야기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내가 너무 좋아했던, 테이프를 사기 위해 레코드점으로 달려갔던 그 앨범의 주인공들이 친한 형이 되고 아는 누나가 됐다. 그 시기쯤 자연스럽게 유재하의 음악에도 관심이 생겼던 것 같다.

단 한 장의 앨범이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들리고 불리고 있다. 젊은 나이에 맞은 안타까운 죽음이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곡 하나하나에 담긴, 그가 의도한 음악적인 기술과 이야기들이 이제는 조금 들리기 시작한다. 내가 좋아하고 친하게 지내는 선배 뮤지션들이 왜 유재하의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하는지 그 이유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난 항상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인 것을 자랑하면서 유재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이제 와서 보면 그런 말을 할 자격도 없었다. 제대로 들어 본 적도 없었는데 말이다. 지금 누군가 내가 만든 음악을 두고 그렇게 이야기한다면 진짜 미웠을 텐데 내가 그러고 있었다.

유재하의 음악, 가사의 묘미에 관하여 

 유재하는 단 한 장의 앨범으로 '전설'로 남았다. 사진은 2014년 발매된 유재하의 리마스터링 앨범 재킷.

유재하는 단 한 장의 앨범으로 '전설'로 남았다. 사진은 2014년 발매된 유재하의 리마스터링 앨범 재킷. ⓒ KingPin


선배들이 자주 이야기하던 유재하는 클래식적인 기법들을 대중가요에 적절히 녹여내며 흔히 말하는 '고급스러운 대중가요'의 시작을 만든 사람이다. 파고들 말한 가치가 있는 음악가다. 하지만 그것만큼 유재하의 음악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그것에 딱 맞물려 있는 이야기들, 가사다.

'어떻게 노래하는가' 만큼 중요하게 '무엇을 노래하는가'에 대해 가장 고민을 많이 하는 요즘에도 그의 가사들을 보면 마치 내 머릿속 영화관에서 한 편의 영화가 상영되는 듯하다. 우울한 편지를 들으며 영화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그리고 유재하가 아닌 다른 사람이 부른다면, 머릿속의 영화는 19세 관람가 영화가 되기도 하고 또 서정적인 일본 영화가 되기도 한다.

간혹 나도 유재하의 노래를 부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모두 다르게 불러보려고 한다.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노래하는 사람 입장에선 굉장히 다양한 방법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게 유재하 음악의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다. 그리고 그렇기에 다양한 뮤지션들이 그를 닮아가려고 하기보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지금도 그의 노래를 계속 부르고 있는 것 같다.

음악을 하는 한, 유재하를 들려주고 싶다

해마다 열리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가 끝나고 뒤풀이 장소에 가면 많은 선배들이 '유재하가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이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곳엔 생전에 그의 절친한 친구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본 가족도, 그를 찬양하던 지금 내가 찬양하는 선배들도, 나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후배들도 있다. 그렇게 각자의 생각들이 모여 한 사람을 이야기한다. 아마도 브라질 올림픽에서 카에타누 벨로주가 등장해 노래 불렀던 것처럼, '국민 가수' 유재하는 평창올림픽에서 '사랑하기 때문에'를 부를 수도 있었겠단 생각도 해본다.

지금도 내가 존경하는 선배들이 유재하만큼, 아니 더 멋지게 그의 음악적 상상력을 이어 나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내가 계속 음악을 한다면, 내가 하는 음악을 계속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한다면, 나로 인해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유재하를, 유재하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2008년 제19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 대상 출신 박원입니다.
유재하 박원 원모어찬스 유재아음악경연대회 사랑하기_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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