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수 시장에 항의하는 의미로 영화인들이 대거 보이콧해 빈자리가 곳곳에 드너난 2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서병수 시장에 항의하는 의미로 영화인들이 대거 보이콧해 빈자리가 곳곳에 드너난 2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 성하훈


수많은 관객으로 북적대던 영화의 전당 주변은 차분했다. 영화제 첫 주말 영화인들로 가득했던 해운대도 크게 번잡하지 않았다. 개막식 때도 앞쪽에 위치한 내외빈 좌석에는 빈자리가 여럿 눈에 띄었다. 2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회 때의 번잡한 남포동의 열기보다도 더 조용해 보였다. 물론 좋게 표현해서다.

영화제가 필름 페스티벌로 불리는 축제임에도 영화의 전당과 해운대는 썰렁한 기운만이 감돌았고, 해운대는 활기를 잃었다. 개막일 만난 부산영화제의 한 스태프는 "이렇게 가라앉은 개막식은 처음"이라며 무거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올해 부산영화제는 서병수 부산시장의 정치적 간섭이 영화제를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는지를 확인해 주는 시간이었다. 2014년 <다이빙벨> 상영 압박으로 시작된 서병수 시장의 간섭은 이용관 집행위원장 몰아내기로 절정을 이뤘다. 이에 반발해 영화인들은 보이콧을 선언했다. 일부 단체가 정관 개정을 받아들여 보이콧을 철회하고 참여하기는 했으나 감독과 프로듀서 등 영화인들이 대거 불참하면서 서병수 시장에 대한 항의와 분노를 나타냈다.

결과적으로 부산이란 곳의 대외적 이미지를 크게 높이고 세계 영화계의 관심을 받던 부산영화제를 반쪽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서 시장의 행태는 무책임과 자가당착의 연속이기도 했다. 영화제의 경제성을 강조하며 영화제 담당 부서를 경제부시장 아래에 배치했는데, 이 때문에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는 지역 영화과 학생들의 취업 지원을 위해 영화사들과 함께 취업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제에 대한 정치적 탄압은 영화제를 위축시켰고, 보이콧을 불러왔으며 '10월의 부산영화제 특수'를 없애버렸다. 서병수 시장이 벌여 놓은 일에 대해 영국평론가 토니 레인즈가 "어리석고 위선적이며 멍청하다"고 맹폭했다. 조직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서병수 시장을 너무 심하게 비판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법한데도, 영화인들은 그저 시원한 이야기를 했다며 찬사를 보내고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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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시장이 개막식 단상에 오르려 했으면 끌어내렸을 것

 정지영 감독이 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서 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 보장,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과,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회복 등을 요구하며 '#SUPPORT BIFF, #SUPPORT MR.LEE'라고 적힌 스티커를 옷에 부착하고 입장하고 있다.

정지영 감독이 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서 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 보장,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과,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회복 등을 요구하며 '#SUPPORT BIFF, #SUPPORT MR.LEE'라고 적힌 스티커를 옷에 부착하고 입장하고 있다. ⓒ 유성호


 2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리셉션에 참석한 <자백> 최승호 감독 등 영화인들이 #SUPPORTBIFF #SUPPORT MR.LEE 스티커를 붙이고 김동호 이사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리셉션에 참석한 <자백> 최승호 감독 등 영화인들이 #SUPPORTBIFF #SUPPORT MR.LEE 스티커를 붙이고 김동호 이사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부산영화제


개막작 <춘몽>의 기자회견은 올해 영화제의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었다. 주요 배역으로 참여한 양익준 감독은 "부산시청 앞에서 속옷만 입고 시위하고 싶다"는 말로 서병수 시장에 대한 반감을 나타냈다. 양 감독은 앞서 부산영화제 참가 결심을 밝힌 글에서는 '고향에 나쁜 놈이 들어앉았다고, 술수를 쓰고 있다고 먼발치서 고향을 보며 발만 동동 구를 순 없다"며 서 시장을 '나쁜 놈'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박정범 감독은 기자회견에는 자리하지 않고 레드카펫만 밟았고, 또 한사람의 주역인 윤종빈 감독은 감독조합의 보이콧 지침에 따른 듯 아예 불참했다.

영화제에 참석한 영화인들은 피켓을 들거나 #SUPPORTBIFF #SUPPORT MR.LEE가 적힌 스티커를 붙이고 레드카펫과 개막 리셉션에 등장해 서병수 시장에 대한 항의를 표현했다. 

이런 분위기니 부산영화제 개막식에 부산시장이 처음으로 불참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부산시는 대외적으로 "처음으로 시장이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났고 김동호 이사장 체제인 민간 주도로 영화제가 열리는 만큼 불참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고 수해로 인한 인명 피해가 있는 만큼 그곳으로 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신 개막식에서는 부산영화제 부이사장인 김규옥 부시장이 레드카펫을 밟았다.

하지만 일부 영화관계자들은 "서 시장이 축사라도 하고 싶어했던 듯 김동호 이사장을 통해 참석 의사를 밝혔던 것 같은데, 영화인들의 반발이 컸다"고 전했다. 한 영화인은 "만일 서병수 시장이 개막식에 참석해 단상에 오르려 했으면 끌어내릴 작정이었다"고 말했다. 영화인들에게 봉변을 당할까 두려워 이를 피했다는 것이 부산에서 만난 영화인들의 주장이다. 부산영화제 사태를 유발해 한국영화 '공공의 적'으로 규정된 서 시장에게 영화인들이 갖는 감정의 골은 매우 깊었다.  

 부산영화제 사태를 일으킨 서병수 부산시장.

부산영화제 사태로 비판받는 서병수 부산시장. ⓒ 정민규


영화제 개막 하루 전날 들이닥친 태풍 '차바'도 서병수 시장을 연상케 만들었다. 영화제의 상징으로 수 억 원을 들인 해운대의 비프 빌리지 시설물이 모두 망가졌기 때문이다. 공들여 만든 시설물이 태풍으로 인해 허무하게 사라진 모습은 부산영화제 사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 준 것처럼 보였다. 남포동과 해운대의 상인들이 영화제 특수가 사라져 울상이라는 지역 언론의 보도도 서병수 시장이 벌여 놓은 일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주고 있다.

세계적 영화제를 한 순간에 휘청거리게 만들고 지역경제를 침체시킨 중심에 시장이 있다는 점은 지한파 해외 영화인들의 눈에도 우습게 보인 것 같다. 9일 부산영화제 사태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영국인 평론가 토니 레인즈의 말은 그래서 무겁게 다가왔다. "부산영화제 사태 계기로 깊이 생각했으면 한다"며 "제대로 된 시장을 선출해 달라. 다음 선거 때 잘 뽑아야 한다"는 충고는 올해 부산영화제 사태의 본질을 명확히 설명하고 있었다.

부산영화제 셔병수 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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