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관객을 넘게 모은 영화 <부산행>의 감독 연상호. 그가 이 시대 청춘들에게 자신의 지난 청춘을 이야기했다. 8일 오후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복합문화페스티벌 <청춘 아레나> 페스티벌에서 강연자로 선 연상호 감독은 '천만 감독'의 과거라고 하기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지질했던 자신의 지난날을 털어놨다.

12년 동안 단 한 번도 거둔 적 없는 성과

 연상호 감독이 8일 오후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복합문화페스티벌 <청춘 아레나>의 강연자로 나섰다. 이날 연상호 감독은 꿈을 위해 달려온 지난 날의 힘들었던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청춘들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남겼다.

연상호 감독은 솔직담백한 입담으로 청춘들에게 다가갔다. ⓒ 마이크 임팩트


연출이나 시나리오를 배워본 적이 없다는 연 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중학교 때 비 오는 날 체육관에서 노래자랑을 하게 됐는데 일본 애니메이션 노래를 일본어로 불렀을 정도로 애니메이션에 빠진 아이였다. 연 감독은 중학교에 다닐 때 공부를 너무 못해서 선생님이 어머니를 부를 정도였다. 공부를 못 해서 일찌감치 의사나 검사와 같은 직업인에 대한 꿈은 버렸다. 다만 "나도 근사한 사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늘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다. 공부는 이미 틀렸고, 애니메이션을 해서 특별한 사람이 되어야겠단 생각에 미술학원에 다녔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진학 후 꿈이 깨졌다. 애니메이션으로 대학에 가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고 평범하게 공부하여 남들처럼 대학가는 길을 걷게 된 것. 재수를 하게 된 연 감독은 공부가 너무 싫어서 다시 애니메이션의 꿈을 갖게 됐다. 그때부터 단편 애니메이션을 혼자 만들었는데 7년 동안 단 한 번도 주목받지 못했다. 두드릴 수 있는 공모전 문은 다 두드렸지만 작은 영화제의 예선 통과조차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 7년을 했는데 이 정도니 "내가 재능이 없다"고 연 감독은 스스로 판단했고 27살쯤 한 회사에 들어갔다. 유럽 애니메이션의 하청 업체에서 애니메이터로 일했는데 회사가 너무 부도덕했고 노동력 착취가 심해서 1년 반 만에 그만뒀다. 부모님은 매우 불안해했다.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드는 작업은 혼자 하는 건 불가능할 정도로 힘든 일이다. 하지만 연 감독은 상황이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혼자 작업해나갔다. 집에 박혀 너무 열심히 작업하니까 친구들이 와서 보고는 "너는 혼자 뭘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묻곤 했다. 그렇게 30대가 됐다. 애니메이션을 시작한 지 12년이 지난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도 조그마한 공모전의 예선 통과도 하지 못하는 30대의 자신을 보니 한심한 나머지 연 감독은 '진짜 관둬야겠다'고 결심했다.

친구의 한 마디가 인생을 바꿨다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돼지의 왕>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돼지의 왕> ⓒ KT&G 상상마당


하지만 애니메이션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도 관두기로 굳게 결심하고, 연 감독은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애니메이션을 12년 했는데 아무 성과가 없었어. 이제 포기할래." 그러자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넌 재능이 있어. 한 번만 더 해봐. 아니 계속해. 계속하다가 그래도 안 되면 인생 망쳐서 노숙자로 살겠지. 그런데 말이야, 실패해서 노숙자로 살다가 죽어도, 사람이 죽는 건 다 똑같은 거 아니냐?"

연상호 감독은 친구의 이 말에 매우 큰 위로를 받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왜 지금까지 잘 되려고 했지? 그냥 살면 되잖아." 이렇게 생각하고 마음을 잡고 '마지막 작품'으로 여기며 만든 게 애니메이션 영화 <돼지의 왕>이었다. 이 작품으로 상상마당에서 1억 2천만 원 지원을 받는 좋은 기회를 얻었는데 그렇기에 '이게 안 되면 나는 끝'이라고 생각했다. 상상마당 측에서 투자금을 주면서 연 감독에게 "어디를 목표로 하겠느냐" 물었고 그때 연 감독은 "나는 칸 영화제가 목표"라고 호기롭게 답했다.

그런데 칸 영화제에 출품한 영화는 시원하게 낙선했다. 그래서 베니스 영화제 넣었다. 탈락이었다. 이어 로테르담 영화제에 출품했다. 또 탈락. 연 감독은 해외 영화제에 전부 출품해보자는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막 넣었는데 모든 곳에서 '완벽히' 떨어졌다. 그래서 결국 한국으로 눈을 돌려 부산영화제에 <돼지의 왕>을 출품했는데 "저희는 이런 작품을 틀 수 없다"는 답변을 돌려받았다. 실망이 엄청났다.

외국인 기자, 연상호의 인생을 바꾸다

 연상호 감독이 8일 오후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복합문화페스티벌 <청춘 아레나>의 강연자로 나섰다. 이날 연상호 감독은 꿈을 위해 달려온 지난 날의 힘들었던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청춘들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남겼다.

연상호 감독은 꿈을 위해 달려온 지난 날의 힘들었던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청춘들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남겼다. ⓒ 마이크 임팩트


그런데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다. <돼지의 왕>을 좋게 본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설명하자면, 영화진흥위원회란 곳은 보통 모든 영화를 저장해 놓는데 해외에서 영화 관계자가 오면 그런 자료들을 보곤 한다. 마침 한 외국 기자가 우연히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연 감독의 <돼지의 왕>을 보고는 훌륭하다고 생각한 것. 연 감독은 이 외국 기자를 우연히 부천 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만났고 기자에게 여차여차 상황을 설명했더니 기자가 "왜 이 작품을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하려 했냐"며 "해외 영화제에 출품해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걸 우연히 옆에서 듣고 있던 부산국제영화제 관계자는 불현듯 귀가 솔깃해져서 "안 된다, 이 영화는 우리가 하겠다"며 부산영화제에 정식으로 출품했다. <돼지의 왕>은 이 영화제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덕분에 칸 영화제에도 가게 됐다. 연 감독이 맛본 '최초의 성취'였다. 이 성취까지 자그마치 15년이 걸린 셈이다. 

연 감독은 그 후 아시다시피 <부산행>이란 영화를 찍어 '대박'을 쳤다. 연 감독은 자신의 지난 청춘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페스티벌에 모인 청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때 그 외국 기자가 <돼지의 왕>을 안 봤다면 저는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 노숙자로 살고 있겠지요." 그리고 이어 말하길 "여러분께 '안 되더라도 나처럼 15년은 노력하라'고 말하는 건 웃긴 이야기이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자기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가진 열정의 동력이 어디서 나오느냐에 따라 꿈을 지속해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된다고 말이었다. 열정을 지속성 있게 쏟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인생의 불안이나 실패 같은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렇게 해야지만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고, 나중에 감당 안 될 만큼 큰 성취를 이뤘을 때조차도 계속해나가던 것을 해나갈 힘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이날 연 감독의 강연에 청춘들은 적극적으로 질문하며 진지하게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상호 부산행 청춘아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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