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나는 작별을 고한다. 그래, 그 소중한 희망…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치료할 수 있으리라는 그 희망을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 가을의 나뭇잎이 떨어지고 시들어 버리듯이, 나의 희망도 시들어버렸다. 아름다운 여름날에 내게 영감을 주곤 했던 그 희망은 사라졌다. 아아, 섭리여, 내게 마지막 하루의 순수한 기쁨을 허락해 주십시오. 절대로 안 된다고요? 아, 그것은 너무나 괴롭습니다."

 크리스티안 호르네만이 그린 1803년 무렵의 베토벤.

크리스티안 호르네만이 그린 1803년 무렵의 베토벤. ⓒ 참여사회


이 가을, 베토벤이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에 덧붙인 이 절규가 우리 가슴을 시리게 한다. 1802년 10월 10일, 베토벤이 31살 때였다. 작곡가로서, 피아니스트로서 성공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던 그때, 베토벤은 빈 근교 하일리겐슈타트에서 혼자 죽음과 직면해야 했다. 6년 전 생긴 귓병이 점점 악화돼 이젠 회복될 희망을 버려야 했다. 베토벤은 지인들에게 "더 크게 얘기해 주세요, 저는 귀가 먹었으니까요"라고 말할 수 없었다. 멀리 들리는 목동의 피리 소리가 아름답다고 제자가 말했을 때 정작 그 소리를 못 들은 자신에게 좌절해야 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즐겼던 그는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피했고, 그래서 이중으로 괴로웠다. 생각해 보라. 하필이면 가장 뛰어난 음악가가 청력을 잃어야 했을까? 다정다감한 그가 청각 장애 때문에 괴팍한 사람으로 오해되고 고독으로 내몰린 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피아노협주곡 3번 C단조는 이 무렵 베토벤의 심경을 담고 있다. 이 곡을 들으면 낙엽 지는 가을, 쓸쓸히 걸어가는 베토벤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죽음이여, 그대는 나를 이 끝없는 고통에서 해방해 줄 것이다. 죽음이여, 언제든 오라! 나는 그대를 용감하게 맞이할 것이다." 베토벤은 죽음의 가능성을 열어 놓은 상태에서 온 힘을 다해 삶을 택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바로 예술이었다. 그는 자기 속에서 움트는 모든 것을 내놓기 전에 이 세상을 떠나는 게 불가능해 보인다고 썼다. 그는 극한의 외로움 속에서도 이러한 자기 심경을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누구보다 사람들과의 소통과 공감을 갈망한 베토벤이 아니었던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솟구쳐 오른 베토벤의 예술혼, 그것이 바로 이 피아노협주곡 3번 C단조였다. 그는 더는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 아래 빈 청중들의 갈채를 받던 신인 음악가가 아니었다. 이 곡에서 베토벤은 웅장한 스케일로 자기 세계를 펼쳐 보였다. 그것은 내면의 고백이자 삶의 긍정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작곡한 교향곡 2번 D장조보다 더욱 깊고 진실한 자화상이었다.

1악장은 어두운 열정과 달콤한 희망이 교차한다. 목관과 현의 나지막한 대화로 시작하며, 온화한 꿈을 노래하는 두 번째 주제에 이어 비통한 마음을 가슴 속으로 삼키는 듯한 패시지가 나온다. 2악장 라르고는 고요히 내면을 돌아보는 느낌으로, 쓸쓸한 베토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 같다. 3악장 론도는 발랄한 C단조로 시작하여 다채롭게 발전한 뒤 당당한 C장조로 힘차게 마무리한다.

비통한 느낌으로 시작하여 강력한 긍정으로 끝나는 이 구성은 '고뇌에서 환희로' 나아가는 <운명> 교향곡을 예감케 한다. 이 곡에서 베토벤은 '상처 입은 치유자'의 면모를 보여주며, 외롭고 슬픈 사람은 언제나 이 곡에서 따뜻한 위로를 발견한다. 내게 이 곡의 감동을 처음 전해 준 음악가는 미국의 피아니스트 줄리어스 카첸, 그리고 피에리노 감바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였다. 이 연주가 수록된 데카 LP의 재킷에는 노랗고 붉은 낙엽이 가득 그려져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낙엽 지는 가을이면 이 곡이 떠오르곤 한다.

베토벤이 이 곡을 처음 구상한 것은 1798년이었고,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쓴 1802년 가을에 마무리하여 1803년 4월 5일 직접 피아노를 치며 초연했다. 베토벤이라면 이 곡을 어떻게 연주했을까?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 불굴의 투혼으로 연주하지 않았을까? 다소 거칠지만 영혼의 외침이 생생히 살아 있는 연주를 들려주지 않았을까?

피아노협주곡 3번 C단조 Op.37 (피아노 줄리어스 카첸, 피에리노 감바 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절망 속에서 써 내려 간 베토벤의 유서는 역설적이게도 삶을 향한 출사표가 됐다. 고통이 끝났기 때문에 삶을 긍정한 게 아니었다. 이 고통은 시작에 불과했으며, 베토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용감히 자기 것으로 품으며 삶을 긍정했다. 투쟁은 끝난 게 아니라 이제 시작이었다. 이 협주곡은 C장조로 마무리하지만, C단조의 운명적 조성은 베토벤의 생애 내내 예술적 표현을 갈구하며 폭풍처럼 아우성쳤다.

사방을 둘러봐도 희망을 찾기 어려운 세월이다. 그러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용기 있게 일어선 베토벤은 우리에게 절망하지 말라고 일러준다. 베토벤은 혼자서 운명과 맞서야 했다. 그러나 이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베토벤은 우리에게 나약해지지 말라고 얘기해 준다. 베토벤의 비통한 피아노협주곡을 다시 듣고, 그 안에서 용솟음치는 삶의 의지를 느껴보자. 세상 사람들을 향해 호소하는 다음 구절은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에서 가장 울림이 큰 대목이다.

"세상의 불행한 사람들이여, 타고난 장애에도 불구하고 가치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온 힘을 다한 사람이 있었음을 알고 위안을 얻으라!"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이채훈님은 MBC 해직PD입니다.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했습니다. 2012년 해직된 뒤 ‘진실의 힘 음악 여행’ 등 음악 강연으로 이 시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 <우리들의 현대 침묵사>(공저) 등이 있습니다. 이 글은 월간 <참여사회>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클래식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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