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 간 부산국제영화제의 산파 역할을 해온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24일 오후 부산 우동 동서대 센텀캠퍼스 자신의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이 영화제에 독립성을 보장하는 내용의 정관 개정없이 조직위원장직을 맡게 된 것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했다.
이 전 집행위원장은 "영화계가 위기에 빠진 영화제를 위해 보이콧까지 했는데 왜 이런 소중한 자산을 이렇게 밖에 활용하지 못하는지 화가 난다"며 "언제부터 영화제가 눈치꾼을 전락했냐"고 울분을 토로했다.

지난 20년 간 부산국제영화제의 산파 역할을 해온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에게 검찰이 징역 1년을 구형했다. ⓒ 유성호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에게 검찰이 징역 1년을 구형한 것에 대해 한국영화계가 발끈하고 있다. 부산영화제 지키기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아래 영화인 비대위)는 부당한 구형에 항의하는 탄원서 서명에 돌입했다. 오는 6일 개막을 앞두고 부산영화제 참가를 재고하는 모습도 늘어나는 분위기다.

올해 영화제에 참석을 결정한 영화인들은 적극적인 항의 행동을 하겠다는 다짐을 나타내고 있다. 한 영화계 인사는 "이용관 전 위원장이나 사무국장 개인이 횡령한 것도 아니고, 공동사업 파트너였던 업체의 손해에 사무국장이 도의적인 책임을 느껴서 처리한 일을, 큰 비리처럼 몰아 검찰이 전 위원장에게 억지로 덮어씌우기를 하고 있다"며 강한 비판을 내놓았다. 비단 개인의 목소리가 아니다. 서병수 시장의 정치적 개입으로 촉발된 부산영화제 사태에 따른 영화계의 투쟁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한 영화 제작관계자는 "검찰 논리대로 따지면 내가 사업 과정에서 처리한 일들도 다 업무상 횡령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영상위원회의 한 관계자도 저런 사안에 "징역 1년을 구형했다는 것은 검찰의 의도성이 다분해 보인다"며 "검찰의 기소가 정치적 목적이 다분한 상황임을 고려할 때 판사가 현명한 판결을 내릴 수 있을지도 안심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이전까지 정치인들의 뇌물수수나 개인적인 목적의 억대 횡령 사건이 발생해도, 통상 징역 1년이나 약식기소로 처리하던 검찰의 태도에 비춰보면 정치적 목적의 구형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함께 기소된 관계자들에게도 똑같이 징역 1년을 구형한 검찰의 태도는 이번 사건이 정치적 기소임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재판을 참관한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개인적인 횡령이 하나도 드러나지 않은 이용관 전 위원장에게 흠집을 내려다보니 검찰이 기소한 혐의 중 액수가 더 많은 사람의 구형량이 적은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인 비대위 "이용관에 죄 있다면 한국영화발전 헌신 뿐" 탄원서명 돌입

 부산영화제 지키기 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가 부산영화제 기간 중 배포할 스티커. 부산영화제 독립성 지지와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부산영화제 지키기 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가 부산영화제 기간 중 배포할 스티커. 부산영화제 독립성 지지와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지지 의미를 담고 있다. ⓒ 영화인 비대위


영화인 비대위는 지난 1일부터 범영화인 탄원서명에 돌입했다. 영화인 비대위는 검찰의 무리한 수사에 항의하고 이용관 전 위원장의 명예회복을 위해 영화인들이 공동으로 탄원서(☞바로가기)를 제출하려 한다고 밝혔다.

영화인 비대위는 탄원서에서 검열과 표현의 자유 제약으로 얼룩진 한국영화사에서 이를 막고 영화의 원형질을 지켜낼 수 있었던 데는 이용관 위원장의 공이 지대하고, 한국영화가 성장하는 데 큰 공헌을 해온 사람이 이런 억울한 재판을 받는 것 자체가 불명예라며 그에게 죄가 있다면 자신을 돌보지 않고 부산영화제의 독립성과 그 공적인 가치를 위해 헌신한 죄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영화인 비대위는 오는 16일까지 온라인 서명운동을 받아 재판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영화인 비대위는 또한 이용관 전 위원장 지지 의사를 영문으로 적은 스티커를 대량 제작해 영화제 기간 중 관객들과 해외 게스트 등에게 배포한다. 일부 인사들은 "레드카펫에 입장하면서 이를 부착하고 들어가겠다"는 뜻을 전했다. 지역의 영화인들은, 부산영화제 기간에 관객들이 참여하는 탄원서 서명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대적으로 '부산영화제의 원흉'으로 인식되고 있는 서병수 부산시장에 대한 비판도 가중되고 있다. 영화계 인사들은 부산영화제를 촉발한 서 시장이 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할 경우 적극적인 항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나타내고 있다. 일부 영화계 인사들은 "태연하게 웃음 짓고 악수하려고 한다면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은 심정"이라거나, "마주치면 어떤 식으로든 항의의 뜻을 전달하려 한다"는 반응을 보인다. 자칫 개막식 행사 진행 과정에서 돌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다.

개막식에 참석하는 일부 감독과 배우 등은 레드카펫에서 선보일 퍼포먼스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영화관계자는 "레드카펫 입장 때 눈에 띄는 항의 행동을 보여주기 위해 마땅한 방법을 찾고 있다"고 귀띔했다.

보이콧을 선언한 한국영화감독조합이나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등은 부득이 참석하는 감독과 프로듀서 등에게 레드카펫 입장 시 서병수 시장의 사과와 부산영화제 독립성 확보, 이용관 전 위원장 지지 구호를 적은 종이나 피켓을 펼쳐 들어 달라는 지침을 전달했다.

영화제 기간 중 부산 떠나 있을 이용관·전양준

 지난해 부산영화제 개막식에서 배우들을 맞이하고 있는 이용관 집행위원장. 올해는 영화제 기간 중 부산에서 볼 수 없다.

지난해 부산영화제 개막식에서 배우들을 맞이하고 있는 이용관 집행위원장. 올해는 영화제 기간 중 부산에서 볼 수 없다. ⓒ 부산영화제


하지만 보이콧 주장하는 영화인들은 이용관 전 위원장에 대한 검찰의 구형 이후 영화제 집행부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눈에 띄게 표출하고 있다. 한 지역 독립영화협회 한 핵심 관계자는 한국독립영화협회의 참가 결정에도 불구하고 부산영화제에 불편한 심정을 나타냈다.

이 관계자는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에 대한 정치적 탄압이 명백한데도 그의 입장을 고려한 상태에서 그를 배제한 부산영화제를 연다고 한다"며 "영화제를 중단할 수 없다는 집행위원회의 절박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이는 관 옆에서 축제 벌이며 그는 늘 우리 곁에 살아 있다고 외치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일제의 조선 병탄 과정에서 친일파의 처음 논리가 그랬다"고 덧붙였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소속 한 프로듀서는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던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체면은 물론이거니와 의리도 없어 보인다. 이렇게 다 버리고 여는 축제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나타냈다.

국내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역임한 한 영화계 인사는 "올해 부산에 가지 않기도 했다"며 영화계의 보이콧 움직임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유럽에서 개최되는 한국 관련 영화제의 한 관계자도 "매해 부산영화제를 찾았으나 올해는 다른 일도 있고, 보이콧 차원에서 참가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한편 이용관 전 위원장은 영화제 기간 중 부산을 떠나 있을 예정이다. 이용관 위원장은 영화제가 제도적 구조적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며 언론 인터뷰 등에서 영화제 기간 중 부산에 있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왔다. 부산영화제 창설 멤버였던 전양준 전 부집행위원장도 영화제 기간 중 해외로 나가 부산영화제에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전 부집행위원장은 암 투병 중에도 부산영화제를 지지해 준 네덜란드의 피터 반 뷰렌 평론가 등을 병문안하고 해외 영화계 인사들을 만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영화제를 만들었던 창설 공신들이 정치적 탄압 과정에서 떠밀리며 20년간 성장시켜 온 영화제를 피할 수밖에 없는 모습. 이를 지켜보는 영화인들의 안타까운 마음도 커지고 있다.

이용관 부산영화제 BIFF 셔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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