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의 한 장면. 이 영화를 보고 세월호가 떠오르는 건 나뿐일까.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의 한 장면. 이 영화를 보고 세월호가 떠오르는 건 나뿐일까.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한 여객기가 이륙 직후 새떼와 충돌했다. 2009년 1월 15일 미국 뉴욕 라가디아 공항을 출발한 US항공 1549편 얘기다. 항공기는 양쪽 엔진이 모두 망가져 850 상공에서 추진력을 잃었다. 기장은 회항 대신 비상 착수를 선택했고, 항공기를 센트럴 파크 인근 허드슨 강에 불시착시켰다. 승객들은 승무원들의 지시 하에 물이 차오르는 기내를 벗어나 밖으로 나갔다. 구명조끼를 입은 채 강물에 뛰어들거나 구명보트 위로 미끄러져 내려갔고, 후미의 승객들은 항공기 날개 위에 올라섰다. 기장은 기내에 남은 승객이 없는지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문을 나섰다. 한겨울 강의 수온은 2도, 체감온도는 영하 20도에 달했다. 4분이 채 되지 않아 첫 구조선이 도착했고, 24분 만에 모든 승객이 배에 올라탔다. 155명의 탑승객 중 누구도 죽지 않았다.

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아래 <설리>)을 보면서 세월호 사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42년 경력의 베테랑 파일럿 설리(톰 행크스)의 결단력과 책임감, 그리고 민과 관의 협력으로 이루어진 신속하고도 효율적인 구조 작전까지. 모든 전개가 세월호 사고와 정면으로 대비되며 눈시울을 적신다. 한쪽은 불가피한 사고였고 다른 한 쪽은 인재(人災)였다. 사고 후 누군가는 155명 전부를 구했는데, 누군가는 300여 명을 죽게 했다.


사고 이후 기장 설리의 시점을 다룬다는 점에서,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은 뻔한 할리우드 재난영화 이상의 몫을 해낸다. 영화는 사고와 관련해 연방 항공국 공청회에 소환된 설리를 중심에 두고 그가 자신을 향한 의혹에 맞서는 과정을 그린다. 위원들은 "왼쪽 엔진이 작동 중이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인근 공항 회항도 가능했다"며 사고 당시 설리의 대처에 의혹을 제기한다. 누구도 죽지 않았고 모두가 한목소리로 설리를 영웅시하는 와중에 "더욱 안전한 길은 없었나"라고 묻는 것이다.

영화의 진가가 드러나는 건 바로 이 지점에서다. 설리는 '탑승객 155명 전원을 구한 영웅'이란 세간의 평가를 뒤로하고 자신을 반성한다. '관제탑의 권고를 따라 근처 공항으로 회항했다면'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 '어쩌면 엔진이 완전히 망가진 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승객들의 안전을 위협한 거라면?'이라고 자문하며 자신이 한 선택이 '최선'이었는지에 대해 의심한다. 결과론에서 벗어나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되돌아본다. 155명 전원을 안전하게 구해냈으면서도 끊임없이 '더 안전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고 되묻는 설리의 내적 갈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는 그저 내 일을 한 것" 설리가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들이대는 언론 앞에서 말한 이 대사는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다. 극 중 설리는 초능력을 발휘하지도,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그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사고 앞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낸다. 설리 뿐만이 아니다. 부기장 제프(아론 에크하트 분) 또한 흥분하지 않고 설리를 보좌하고, 세 명의 여성 승무원들은 흔들리는 기내에서 승객들을 안전하게 유도한다. 승객들은 이들의 말에 따라 벨트를 맨 채 몸을 웅크렸다가 질서 있게 밖으로 이동한다. 주변의 배들이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다가오고, 해안경비대 경찰 스쿠버들도 구조에 나선다.

책임감 있는 사람들, 그리고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정상적인 시스템. 결국, 이 영화가 그리는 영웅은 이렇게나 평범하고 당연하다. 대단한 기적이나 거창한 인류애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저 차분하게 해야 할 일을 하면 그뿐이다. 영화 속 승객들의 노란 구명조끼에 세월호 리본이 겹쳐 보이고, 땅을 밟은 설리가 무엇보다도 생존자 수를 확인하는 모습에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이 떠오른다. 당연히 살았어야 하는 이들을 살리지 못한 미안함.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이 새삼 되새기는 이 나라의 아픈 기억이다. 오는 2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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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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