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편집자말]
영화 <터널>의 줌렌즈는 사람을 쫓는다. 공명을 유발하는 사람다운 순간을 포착한다. 영화관 여기저기서 터지는 관객들의 박장대소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재난 영화를 보며 웃을 수 있는 지금-여기는 안전지대인가.

영화 <터널>은 뻥 뚫린 고속도로와 잇닿은 긴 터널의 붕괴를 긴박하게 보여준다. 차는 냅다 달리던 기세만큼 호되게 곤두박질친다. 자동차 영업사원 정수(하정우 분)는 영업실적이 대박 터지기 직전에 돌연 고립된다. 당장 생명줄은 딸의 생일 케이크와 작은 물병 둘이다.

곰팡이가 피도록 아껴 먹은 케이크를 다른 생존자의 애완견에게 엉겁결에 빼앗기고 정수는 목청껏 "개새끼야~"를 연발한다. 허탈감에 버무려진 분노의 상대가 마침 개여서 관객의 웃음 폭발이 일어난다. 영화에서 개새끼는 제 몫 챙기기에 급급해 타자가 안중에 없는 캐릭터다.

이곳은 개새끼들의 세상

 영화 <터널> 중 한 장면. 작은 손전등과 스마트폰에 의지한 정수는 과연 붕괴된 터널에서 탈출할까. 혹은 그저 희망고문에 그칠까.

영화 <터널>의 재난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이다. ⓒ (주)쇼박스


터널 붕괴는 개새끼들이 빚은 재난, 즉 인재(人災)다. 설계도면을 어기고 환풍기 수를 줄인 탓에 전체 국민을 향해 본때 있게 시도한 구조는 실패한다. <터널>을 국가급 재난 영화로 봄은 그런 부정부패의 만연 때문이다. 원전 마피아가 있는 지금-여기는 그래서 더 위태롭다.

부정부패는 여론 호도에도 스며 있다. 상당한 시일을 끌며 기대했던 구조가 실패함으로써 터널 밖 구조 열기는 냉각된다. 피로감을 드러내며 구조 중단을 요구하는 이해집단의 명분은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파급 효과다. 사람이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구조본부 대장 대경(오달수 분)의 호소는 안 먹힌다. 세월호 운운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사회적 해법 흐름이 유사하다.

비슷한 해법은 또 있다. 정수의 아내 세현(배두나 분)은 구조대원들의 식사 준비를 거들며 남편을 기다린다. 바닥에 떨어진 달걀부침을 주워 빗물에 씻어 먹은 작업반 최 반장(정석용 분)의 어이없는 사고사는 구조 불가론에 불을 지피며 세현에게 포기각서 서명을 강요하기에 이른다. 이것 역시 세월호 관련 어느 잠수부의 죽음을 연상시킨다.

사람다움과 개같음의 차이

 터널

누가 더 인간다운가. 누가 진짜 인간인가. 영화 속 욕설에 웃게 되면서도 마냥 가볍게 웃을 수는 없는 포인트이다. ⓒ (주)쇼박스


<터널>에서 사람다움을 대변하는 인물들은 정수, 대경, 세현 그리고 최 반장이다. 특히 정수 역의 하정우는 말투와 음색의 변조를 고스란히 표정과 몸짓에 실어 밀폐된 터널 공간에 삶을 진동시킨다. 경악, 침착, 배려, 친절, 멋쩍음, 구토, 갈망, 필사 등의 내폭이나 미세한 떨림을 온전히 전달해 명배우임을 입증한다.

오달수는 119 구조본부 대장이 적역이다. 어눌함과 얼버무림이 조합된 말투로써 주변을 거스르는 진정성을 길어 올리기는 쉽지 않다. 왠지 주연이 되지 못할 것 같은 그의 외모가 버젓한 역할에 한몫한다. 주연과 조연을 구분할 필요 없는 연기의 시너지를 발산하며 한정된 공간에서 진행된 스크린의 영상에 풍미를 제공한다.

정수의 생환은 대경의 의기(義氣)가 있어 가능했던 줄탁동시(啐啄同時)의 결과다. 장관 출현으로 인해 정수의 호송이 지연되었을 때, 대경이 보도진에 건넨 말에 정수는 엄지 척을 해 보인다. "다 꺼져! 이 개새끼들아~" 결국 개새끼와 사람다움의 차이는 상대방을 살릴 수 있는 줄탁동시의 눈과 씀에 달렸음을 단적으로 역설하며 웃게 한 명장면이다.

터널, 하정우, 오달수, 개새끼, 줄탁동시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온갖 종류의 책과 영화를 즐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