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6명 선수들만 출전하는 캄보디아 리우 올림픽 선수단이 지난 달 말 출정식을 앞두고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단 6명 선수들만 출전하는 캄보디아 리우 올림픽 선수단이 지난 달 말 출정식을 앞두고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 박정연


남미대륙에서는 처음 열리는 제31회 리우 올림픽이 곧 개막한다. 이번 대회는 207개국 1만500여 명 선수들이 참가해 총 28종목, 306개의 금메달을 놓고 한판 대결을 벌인다.

우리나라 선수단은 금메달 10개로 종합순위 10위권 안에 드는 것을 최종 목표로 리오로 떠났다. 선수단 규모는 선수 204명, 임원 129명 등 총 333명이다. 1976 몬트리올 대회(50명) 이후 최소 규모다.

이에 반해 아시아 최빈국 캄보디아에서는 고작 선수 6명과 임원 10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된 초미니 선수단이 출정식을 갖고 지난달 28일 리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출전 종목은 태권도, 육상, 수영과 레슬링 등 통틀어 겨우 4종목뿐이다. 그런데도 올림픽에 선발된 6명 선수 모두가 하나같이 독특한 이력과 흥미로운 스토리를 갖고 있어 관심을 끌 만하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조국 캄보디아에 40년만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손 시브메이 선수(왼쪽)가 리우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건장한 남자선수들을 상대로 마지막 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모습.

2014 인천아시안게임 조국 캄보디아에 40년만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손 시브메이 선수(왼쪽)가 리우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건장한 남자선수들을 상대로 마지막 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모습. ⓒ 박정연


태권도 '스포츠영웅' 손 시브메이 선수

이번 리우 올림픽에서 캄보디아 국민들이 가장 큰 기대를 거는 운동선수는 역시 태권도 종목의 손 시브메이 선수다. 지난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67kg급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손 시브메이 선수(21)는 지난 1956년 멜버른 올림픽 첫 출전 이래 무려 60년 만에 최초로 자력 진출권을 따내 현지에서는 명실상부한 '스포츠영웅'으로 손꼽힌다. 

이 선수는 무려 40년 만에 조국 캄보디아에 아시안게임 첫 금메달을 안겨줘 캄보디아를 온통 축제 분위기로 들끓게 한 장본인이다. 귀국 당일 금메달을 목에 걸고 당당하게 금의환향한 시브메이 선수는 한국인 최용석 감독(국기원 소속)과 함께 공항에서 시내 중심가까지 보기 드문 카퍼레이드 환대를 받았으며, 자정 무렵 평화궁전까지 초청되어 훈센총리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이후 몰려드는 각종 CF 섭외와 초청행사로 몸살을 앓을 만큼 국민적 사랑을 받아온, 시브메이 선수는 이번 리우 올림픽 개막식에 나설 캄보디아 기수로 일찌감치 낙점됐다. 배구 국가대표 출신인 어머니를 닮아 신장 183cm로 이 나라에선 보기 드문 장신인 시브메이 선수는 수년 전 운동하러 온 국가대표 출신 언니를 따라 나섰다가 정신력과 체력이 최 감독의 눈에 띄어 특별히 발탁된 케이스다. 각종 포상금과 CF 광고로 집까지 마련해 홀어머니와 함께 4남매가 세들어 살던 가난한 집안이 하루아침에 인생역전을 이루어냈다.

지난달 한국에서 한 달간 전지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최 감독은 "시브메이 선수가 동메달 이상 성적을 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올림픽마저 메달을 딴다면 또 다시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레슬링 종목에서도 역시 한국인 김수길 감독(대한레슬링협회 소속)이 가르쳐온 초우 소티아라 선수(48kg급)가 여성레슬러로는 사상 처음 올림픽에 출전한다. 이 선수 역시 흥미로운 이력을 갖고 있다. 이 선수는 지난 13년간 북한에서 파견된 박소남 감독의 지도를 받았던 선수다. 국가대표 선수 출신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남북한 감독 출신의 지도를 받은 선수로 스포츠사에 기록에 될 전망이다.

사실 소티아라 선수는 지난 2009년, 2013년 동남아 SEA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동남아 최고선수지만, 중앙아시아 등 국제무대의 벽이 워낙 높아 올림픽 메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분석이다. 올해 33살 노장으로 체력의 한계를 느껴 이번 무대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소티아라 선수는 "마지막 최선을 다해 조국에 반드시 메달을 안기겠다"는 굳은 각오를 다졌다.  

 리우 올림픽 여자 레슬링 43 kg급에 출전하는 초우 소띠아라 선수(34)가 리우 출발에 앞서 한국인 김수길 감독과 엄지손가락을 들고 선전을 다짐하는 모습.

리우 올림픽 여자 레슬링 43 kg급에 출전하는 초우 소띠아라 선수(34)가 리우 출발에 앞서 한국인 김수길 감독과 엄지손가락을 들고 선전을 다짐하는 모습. ⓒ 박정연


캄보디아는 이외에도 레슬링과 마찬가지로 육상과 수영에서도 지역배분에 따른 와일드 카드로 출전권을 따냈다. 이중 남자 자유형 100미터에 출전하는 포으 소윗야 수영선수(21)는 미국 시민권을 가진 이중국적 취득 선수다. 현재 미국의 명문 브라운대 재학 중인 학생이기도 한 이 훈남선수는 리우 올림픽 출전을 위해 부모의 고국인 캄보디아 국기를 가슴에 달고 출전해 눈길을 끈다.

남은 육상의 경우는 마라톤 종목만 남녀 선수 각각 한 명씩 출전한다. 이중 가장 화제를 모으고 있는 선수는 단연코, 남자 마라토너 다카자키 구니아치(39) 선수다. 대충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원래 일본인이다.

전직 일본 개그맨 출신 마라톤 선수

지난 2011년 귀화한 그는 1977년생 전직 개그맨 출신으로 일본 안방TV에서 '고양이'라는 애칭에 '네코 히로시'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지난 2005년 늦깎이로 마라톤에 입문한 그는 평생 소원인 올림픽 출전을 위해 개그맨까지 그만두고 캄보디아로 귀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개인 최고기록은 2시간 27분 52초으로 19번 완주기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듬해 2012년 런던에서 열린 올림픽 대회에서는 정작 참가 자격을 얻지 못했다. 귀화한 지 1년이 넘어야 출전권을 딸 수 있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규정 때문이었다. 결국 3년여 와신상담 끝에 그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 캄보디아 대표로 마라톤에 출전, 나름 한풀이를 할 수 있었다.

 전직 일본 개그맨 출신으로 올림픽 출전 꿈을 이루기 위해 캄보디아로 귀화한  마라토너 다카자키 구니아치(39)씨가 리오 출발을 앞두고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전직 일본 개그맨 출신으로 올림픽 출전 꿈을 이루기 위해 캄보디아로 귀화한 마라토너 다카자키 구니아치(39)씨가 리오 출발을 앞두고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 박정연


당시 다카자키는 2시간34분16초로 14위를 기록했는데 이때 완주한 선수는 모두 14명이었다. 비록 키 151㎝의 단신에 불혹을 앞둔 나이지만, 올 시즌은 2시간 44분 02초로 캄보디아 선수 중 가장 빠른 기록을 세워 캄보디아 대표로 당당히 선발됐다.

지난달 말 열린 출정식에서 다카자키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고 영광스럽다. 반드시 좋은 기록으로 완주해 캄보디아 국민들의 성원에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일본 출신 마라톤 선수의 캄보디아 귀화소식은 전직 개그맨 출신이란 독특한 이력까지 더해져 이미 여러 차례 국내뉴스에도 소개된 바 있다. 그의 조국인 일본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도 화제를 불러 모았다.

그의 캄보디아 귀화에 대한 전체적인 여론은 대체로 찬성하는 분위기였지만, 부정적 시각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귀화를 선택한 이유 때문이었다. 일각에선 그가 전직 개그맨 출신이란 사실을 비꼬아 "단지 올림픽 출전이란 꿈을 이루기 위해서 국적을 포기하고 귀화를 선택한 것은 코미디언들만 할 수 있는 정말 우스꽝스러운 행동"이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서인지 그의 귀화를 둘러싼 논란과 비난은 눈 녹듯 사라지고, 지금은 불혹을 앞둔 나이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강한 투지로 올림픽 출전이라는 꿈을 이루어 낸 그의 모습에 캄보디아 국민들은 감동하고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모습이다. 현지 언론들도 그가 와일드카드로 극적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한 사실에 주목할 뿐 다카자키가 일본에서 귀화한 선수라는 사실에는 더 이상 관심이나 의미를 두지 않는 모습이다.

프놈펜 중심가 일본계 대형백화점이 주최한 지난 달 27일 선수단 출정식에 참석한 20대 왕립 프놈펜대 대학생 초은 참로은(22)씨도 "그는 이제 일본인이 아닌 우리 캄보디아 국민"이라고 말했다. 

이번 올림픽에 함께 출전한 레슬링종목 동료선수 초우 소티아라 역시 "그가 우리와 같은 자랑스러운 캄보디아 선수라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이견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리우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멋진 장면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이러한 다양하고 독특한 이력을 가진 스포츠 변방국가 선수들이 올림픽 출전에 더 큰 의미를 두며, 자국의 명예를 위해 선전하는 모습을 TV로 지켜보는 것도 이번 스포츠 축제를 즐기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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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리우 올림픽 다카자키 구니아치 최용석 감독 김수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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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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