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올림픽에 출전하는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3일(현지시간) 오후 브라질 사우바도르 피투아투 경기장에서 조별리그 1차전 피지와의 경기를 하루 앞두고 열린 훈련에서 몸을 풀고 있다.

리우올림픽에 출전하는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3일(현지시간) 오후 브라질 사우바도르 피투아투 경기장에서 조별리그 1차전 피지와의 경기를 하루 앞두고 열린 훈련에서 몸을 풀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축구가 2016 리우올림픽에서 2회 연속 메달 획득에 도전한다. 한국은 1988 서울올림픽부터 어느덧 세계 최초로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무대에 진출하는 기록을 세운 단골손님이다.

올림픽 본선에서 축구 종목이 포함된 것은 2회 대회인 프랑스 파리 대회부터였다. 시범종목을 거쳐 1908년 런던 대회부터 정식 종목에 편입되었다. 현재 세계 최고의 축구 국가대항FIFA 월드컵이 1930년에야 처음 개최한 것을 보면 올림픽 축구의 역사는 30년 가까이나 더 빠르다. 그만큼 올림픽 축구의 권위도 초창기에는 지금의 월드컵 못지 않았다.

FIFA가 월드컵을 출범시킨 이후로는 올림픽 축구의 권위가 많이 떨어진 게 사실이지만, 여전히 글로벌스포츠인 축구와 올림픽의 국제적 위상을 감안할 때 비중 있는 메이저대회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축구 없는 올림픽은 영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중계권료와 광고 수입 등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IOC가 대회의 가치와 개최시기, 선수 차출 문제 등 여러 가지 현안을 놓고 FIFA와 반목을 거듭면서도 축구 자체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북중미·남미·아프리카, 강세 보이는 올림픽 축구

오랜 역사를 거치며 올림픽 축구 제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84년 LA 대회부터 프로 선수들의 출전이 허용되었으나,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부터는 나이 제한과 와일드카드 제도가 도입되기도 했다. 여자축구는 1996년 애틀란타 대회부터 도입됐다.

올림픽 축구는 각종 A매치나 월드컵과는 역사적 판도에서 차이가 크다. 올림픽 축구에서 최다 금메달을 차지한 국가는 헝가리와 영국(각 3회)이다. 하지만 헝가리는 1972년 이후 본선진출조차 실패하고 있으며, 영국은 마지막 우승이 1912년으로 벌써 한 세기 전의 기록이다. 

월드컵을 5회나 우승한 브라질(은메달 3회)도 올림픽에서는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이탈리아는 올림픽 본선 최다승(32승) 국가지만 정작 금메달은 무려 80년 전인 1936년 베를린 대회가 유일하다.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홈팀 스페인 우승)까지는 우루과이(1924-28년 올림픽 2연패)를 제외하면 유럽팀이 올림픽 무대에서도 18차례나  금메달을 싹쓸이하는 등 초강세를 보였다. 그러나 1996년 애틀란타 대회부터 최근 20년간은 유럽팀이 더 이상 정상을 밟지 못하고 있다. 연령 제한의 도입과 클럽축구의 성장으로 최근에는 올림픽 축구에  더 이상 큰 비중을 두지 않는 유럽 축구계와 달리, 남미와 아프리카, 북중미 등이 더 두각을 보이고 있다.

1996년 나이지리아-2000년 카메룬이 아프리카 최초로 2연속 올림픽 정상에 올랐고, 2004년과 2008년에는 남미의 아르헨티나가 대회를 2연패했다. 지난 2012년 대회에서는 멕시코가 북중미 국가로는 최초로 올림픽을 제패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홈팀 브라질이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올림픽 무관과 2년 전 브라질 월드컵의 한을 풀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한국 축구와 올림픽의 인연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48년 런던올림픽이다. 이 대회는 축구를 넘어 한국 스포츠사에 의미 있는 이정표로 회자되는데, 바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태극기를 앞세우고 하계올림픽에 참가한 첫 번째 대회이기도 하다. 월드컵에서는 1954년 스위스 대회에서 대한민국이 아시아 최초의 본선 진출을 이뤄냈는데, 이보다 6년이나 더 빨리 올림픽을 통해 세계무대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해 5월 FIFA에 가입한 한국은 당시까지 별도의 올림픽 예선이 없던 덕분에 곧바로 본선에 직행할 수 있었다. 심지어 한국은 멕시코와의 첫 경기에서 5-3으로 승리하며 월드컵(2002년)보다 반세기가 앞서 세계 규모의 메이저대회 국가대항전에서 첫 승을 신고하는 역사를 썼다. 하지만 이후 스웨덴에 0-12로 대패하며 세계 무대의 높은 벽 역시 절감했다

한국은 16년 뒤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두 번째로 본선 진출에 성공했지만 당시 조별리그에서 3연패했다. 이후 1968년 멕시코 대회부터 1984년 LA올림픽까지 다시 5회 연속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다가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개최국 자격으로 무려 24년 만에 본선에 복귀할 수 있었다. 2년 앞서 한국축구는 멕시코월드컵에서 32년 만의 본선진출에 성공했다. 이후로 한국은 지금까지 올림픽과 월드컵 양대 메이저대회 본선 무대에서 지금껏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개근 중이다.

순탄치 않았던 한국 축구의 올림픽 무대

 리우올림픽에 출전하는 축구대표팀 권창훈(왼쪽부터), 손흥민, 류승우가 3일(현지시간) 오후 브라질 사우바도르 피투아투 경기장에서 조별리그 1차전 피지와의 경기를 하루 앞두고 열린 훈련에서 몸을 풀고 있다.

리우올림픽에 출전하는 축구대표팀 권창훈(왼쪽부터), 손흥민, 류승우가 3일(현지시간) 오후 브라질 사우바도르 피투아투 경기장에서 조별리그 1차전 피지와의 경기를 하루 앞두고 열린 훈련에서 몸을 풀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올림픽 본선 역시 월드컵 못지않게 한국 축구에 있어서는 많은 좌절과 시련을 안겨준 무대이기도 했다. 1988 서울 올림픽에서 한국은 축구 강국이던 아르헨티나와 구소련, 미국과 한 조에 배속되었다. 한국은 소련과 미국에 연이어 무승부를 거두며 선전했으나 마지막 경기에서 아르헨티나에 석패해 8강 진출에 실패했다.

23세 이하(U-23)로 선수 출전연령 제한이 도입된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3무)에서는 모로코, 파라과이, 스웨덴을 상대로 모두 무승부를 기록하며 역대 최초의 조별리그 무패를 기록하고도 8강행이 좌절되는 진기록의 희생양이 됐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1승 1무 1패)에서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외국인 사령탑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이 지휘봉을 잡아 첫 경기에서 가나를 1-0으로 잡고 1948년 런던 대회 이후 48년 만의 본선 첫승을 신고했다. 그러나 멕시코와의 2차전에서 0-0으로 비기고 이탈리아와의  최종전(1-2)에서 종료를 눈앞에 두고 뼈아픈 결승골을 허용하며 또다시 8강행이 좌절됐다.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2000 시드니 올림픽(2승 1패)은 가장 안타까운 대회로 꼽힌다. 조별리그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두고도 8강 진출이 좌절되는 불운에 울었다. 한국은 스페인과의 첫 경기에서 0-3으로 패했지만 모로코(1-0)와 칠레(1-0)를 연이어 격파하며 올림픽 본선 사상 처음으로 2승을 수확했으나 스페인-칠레에 골득실에서 뒤져 조 3위로 밀렸다. 한국이 이긴 칠레는 그 대회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 대회에서 허정무 감독이 발굴해낸 박지성-이영표-이천수 같은 젊은 피들은 2년 뒤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축구의 4강 신화를 일궈내는 데 밑거름이 됐다.

한국은 2004 아테네 올림픽(1승 2무)에서야 비로소 조별리그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김호곤 감독이 이끈 한국은 그리스에 2-2 멕시코에 1-0으로 승리하며 1승 1무를 기록했다. 아프리카 말리와의 최종전에서 후반 중반까지 0-3으로 끌려가며 탈락의 위기에 몰렸던 한국은 이후 조재진의 연속골과 상대 자책골에 힘입어 기적 같은 동점 드라마를 연출하며 말리에 이어 조 2위로 올림픽 역사상 56년의 8강 진출을 이뤄냈다.

엄밀히 말하면 토너먼트제였던 1948 런던 올림픽에서 이미 8강에 오른바 있지만, 지역예선과 조별리그를 모두 통과하여 8강에 오른 것은 아테네 올림픽이 최초다. 하지만 김호곤호는 8강에서는 파라과이의 벽을 넘지못하여 2-3으로 분패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A팀과 올림픽팀을 겸임하던 핌 베어벡 전임감독의 중도사퇴로 본선 1년 전 박성화 감독이 중간에 지휘봉을 물려받으며 진통을 겪었다. 당시 한국 대표팀(1승 1무 1패)은 카메룬, 이탈리아, 온두라스와 한 조에 배속됐다. 한국은 카메룬과의 첫 경기에서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1-1로 비겼고, 이탈리아에게는 힘 한번 못 써보고 0-3으로 완패했다. 최종전이었던 온두라스전에서 1-0으로 첫 승을 신고했지만 결국 조 3위에 그쳐 2회 연속 8강 진출에 실패했다.

2012년의 홍명보호는 한국축구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라는 새 역사를 수립했다. 기성용, 구자철, 김영권, 윤석영, 김보경 등 역대 최고의 멤버를 구축한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멕시코(0-0), 스위스(2-1), 가봉(0-0)을 상대로 1승 2무로 무패행진을 기록하며 토너먼트에 올랐고 8강에서는 개최국인 영국 연합팀(1-1)을 승부차기 끝에 제압하며 4강에 올랐다. 준결승에서 브라질에 0-3으로 완패하며 결승 진출은 좌절되었지만 3-4위전에서 숙명의 라이벌 일본을 2-0으로 제압하고 동메달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신태용호,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 극복할까

 리우올림픽 축구대표팀 신태용 감독이 3일(현지시간) 오후 브라질 사우바도르 폰치 노바 아레나에서 열린 올림픽 축구 본선 C조 감독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리우올림픽 축구대표팀 신태용 감독이 3일(현지시간) 오후 브라질 사우바도르 폰치 노바 아레나에서 열린 올림픽 축구 본선 C조 감독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연령제한이 있는 올림픽 본선에서는 2회 출전이 최다 출전 공동 기록이다. 한국 선수들 중 올림픽 무대를 두 번 밟은 선수는 모두 10명뿐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1번은 해당 연령대로, 또 한번은 와일드 카드로 참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최태욱, 이천수, 기성용은 와일드 카드 출전 없이 각각 19살과 23살에 올림픽 대표팀에 발탁되어 두 번출전한 드문 케이스다.

올림픽 본선에서는 기성용과 박주영이 각 9경기에 출전한 것이 최다기록이다. 최다 득점은 통산 3골을 기록한 이천수와 박주영이 공동 선두에 올라있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는 신태용 감독이 지휘봉을 잡아 2회 연속 메달에 도전한다. 한국축구는 2년 전 브라질 월드컵에서 악몽을 남겼던 아픈 추억이 있다. 지난 올림픽의 영광을 이어가면서 월드컵 상처의 치유라는 복합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메이저 대회마다 한 대회에서 잘하거나 못하면 그 다음 대회에서는 정반대의 성적이 나오는 징검다리 징크스를 극복하는 것도 과제다.

한국은 독일, 멕시코, 피지와 한 조에 배정되었다. 특히 멕시코와는 역대 올림픽 본선(총 10회 출전)에서만 벌써 5번째로 만난다. 한국은 1948년, 1996년, 2004년, 2012년 대회에서 각각 멕시코와 맞붙어 한국이 2승 2무로 우위를 보이고 있다. 오세아니아의 피지와 유럽의 독일은 올림픽 대표팀간 대결에서는 첫 만남이다.

이번 리우 올림픽 대표팀은 4년 전 런던 올림픽에 비하며 이름값에서는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다. 감독과 와일드카드 선수들을 포함하여 올림픽 본선 경험이 있는 인물도 전무하다. 어쩌면 '역대 최약체'라는 저평가를 딛고 신태용호가 리우 올림픽에서 또 어떤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갈지 기대된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축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