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과 나란히 선 클레이 모레츠

힐러리 클린턴과 나란히 선 클레이 모레츠 ⓒ @chloegmoretz


지난달 28일(현지시각)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19살 '여배우'가 거대 군중 앞에서 당당하게 단상에 섰다. 힐러리 클린턴의 민주당 대선후보의 수락연설이 한창이던 전당대회장에서 "힐러리 클린턴에게 내 생애 첫 대선 투표를 하겠다"고 선언한 이 배우는 바로 영화 <킥애스> 시리즈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클레이 모레츠다.

"전 세계 여성교육문제에도 관심이 있어요. 많은 여성이 혜택 받지 못하고 있어서 아주 슬픕니다. 또한 미국의 젊은 층들이 투표를 하지 않아요. 여기 한국도 비슷하다고 들었어요. 정치적인 의견이 서로 맞지 않는다 해도 적어도 정치 공부를 조금은 했으면 좋겠어요. 당신의 투표는 이미 있으니까요."

지난 3월 내한, <SNL 코리아> 등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클레이 모레츠는 tvN <뇌섹시대-문제적 남자>에서 위와 같은 소신을 피력했다. 미 공화당 대선후보 트럼프에게 독설도 마다하지 않는 클레이 모레츠는 일찌감치 힐러리 지지를 선언하고, SNS 게시물은 물론 실제로 지지 캠페인에 나서며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끈 바 있다.

1997년생 여배우가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유감없이 펼치고, 또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분위기. 이를 넘어서 한국의 젊은 층에게도 투표와 같은 정치 행위를 독려하는 젊은 여배우. 또 이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함. 솔직히 정치 영역을 떠나 부러울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반면 우리는 어떠한가. 지난달 31일은 물론 1일 하루 인터넷 포털 검색어 1위를 차지하고 SNS를 뜨겁게 달군 한 배우가 처한 상황을 보면 자명해 진다.

하연수의 SNS 글은 왜 '발굴' 됐을까 

 하연수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자필 사과문.

하연수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자필 사과문. ⓒ 하연수 인스타그램



"방법은 당연히 도록을 구매하시거나 구글링인데, 구글링하실 용의가 없어 보여서 답변 드립니다." - 2016년 7월 15일 인스타그램 댓글 중에서


"잘 모르시면 센스 있게 검색을 해보신 후 덧글을 써주시는 게 다른 분들에게도 혼선을 주지 않고 이 게시물에 도움을 주시는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 2016년 6월 2일 인스타그램 댓글 중에서

자신의 SNS상에 올린 이 댓글을 두고 배우 하연수에게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게다가 과거 글은 물론 이른바 '신상털이'까지 난무하며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급기야 하연수는 논란이 가중된 31일 저녁 자필 사과를 SNS에 게재하기에 이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낱 해프닝과 같은 사안에 '인성'을 운운하는 형국에 한탄이 나올 지경이다. 발단은 지난 31일, 하연수가 올린 두 개의 글이 '발굴'되고 '회자'되면서 부터이다. 지난 6월 올린 '아시아 하프 페스티벌 2016 라이징스타 콘서트' 관련 SNS 글을 보자.

하연수는 "하프의 대중화"를 위해서라며 관련 사진과 글을 올렸고, 이에 대해 한 SNS 사용자가 "대중화를 하기에는 가격의 압박이 너무..."라는 댓글을 달았다. 여기에 하연수가 관련 설명글을 적은 것이 화근이 됐다. 하프의 종류와 폭넓은 가격대를 설명하는 와중에 다소 경직된 어투가 표적이 된 것이다.

"인류 최초의 악기인 리라에서 기원한 하프는 전공자 분들이 다루시는 그랜드 하프와 초보자들도 쉽게 다룰 수 있는 켈틱 하프, 이렇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요. 수천만 원대의 그랜드 하프와는 달리 켈틱 하프는 50만 원 이하부터 수백만 원대까지 가격대의 폭이 매우 넓습니다. 잘 모르시면 센스 있게 검색을 해보신 후 덧글을 써주시는 게 다른 분들에게도 혼선을 주지 않고 이 게시물에 도움을 주시는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여기에 원 댓글을 단 작성자는 "아하, 제가 평소에 많이 알려져 있던 것만 알고 있었네요"라고 다시 답글을 달았다. 팬이든 아니든, 원 댓글 작성자가 이렇게 댓글을 달며 사안은 마무리 됐다. 하지만 두 달여가 흐른 지금, 하연수가 쓴 글의 어투가 다시금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한 배우의 '인성'을 운운하면서 말이다. 여기엔 과거 하연수가 달았던 글에 대한 불만을 가진 여타 SNS 사용자들의 불편한 시선이 개입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좀 더 살펴보자.

'공인' 아닌 '유명인' 하연수가 남성이었다면

'콩트앤더시티' 하연수, 귀요미 꿀노잼 26일 오전 서울 영등포의 한 웨딩홀에서 열린 tvN 예능프로그램 '2015 도시공감' <콩트앤더시티> 제작발표회에서 배우 하연수가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콩트앤더시티>는 연애, 결혼, 사회생활 등 20세 이상 성인이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소재로 꾸려나가는 예능프로그램으로 도시인들의 행동양식을 공감코드로 담아낸 '도시 생태 보고서', 인간관계에서 누군가 삐치는 원인을 과학수사로 풀어낸 'BSI:서울', 현대인들의 미스터리한 경험을 살린 '파라노말X', 부성애를 스릴감 있게 그려낸 '테이큰:딸바보의 습격' 등의 코너로 구성된 공감코미디다. 30일 금요일 밤 11시 30분 첫 방송.

지난 2015년 10월 26일 오전 서울 영등포의 한 웨딩홀에서 열린 tvN 예능프로그램 '2015 도시공감' <콩트앤더시티> 제작발표회에서 배우 하연수가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이정민


"불쾌합니다. 제가 정말 이런 농담을 싫어합니다. 의도한 바가 그저 농담이라도, 매번 똑같은 내용으로, 결혼하자고 쓰시고는 'ㅋㅋㅋㅋㅋㅋㅋ'를 붙이시죠. 항상 소름 돋을 정도로 똑같은 덧글이기에 기억합니다. 늘 같은 내용과 같은 이모티콘, 저는 신경정신과적으로 조금 문제가 있으신 분인가 했습니다.

제가 올리는 게시물마다 결혼결혼하며 덧글 다시는 행동이... 너무 지나치신 것 같네요. 훗날 미래의 진짜 부인되실 분을 생각한다면... 이건 부끄러운 행동이지 않나요? 몇 살이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라는 것을 뱉으시기 이전에 상대방 기분도 생각바랍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지난해 9월, 하연수의 이 SNS 글 역시 여러 매체를 통해 기사화 된 바 있다. 끊임없이 '결혼' 운운하는 댓글을 단 SNS 사용자에게 나름 예의를 갖춰 '정색'하고 답을 올린 것이다. 당시 이 글과 관련된 기사의 제목들에는 "일침", "똑부러진다", "분노"와 같은 표현이 달렸다. 지금과는 분명 온도차가 있었던 셈이다.

그 사이 하연수는 자신이 올린 그림에 대한 "실례지만 사진 가운데 작품이 뭔지 알고 싶은데 방법이 없나요?"라는 댓글에, "제가 태그를 해 놓았는데 방법은 당연히 도록을 구매하시거나 구글링인데 구글링 하실 용의가 없어보여서 답변 드린다"며 작품 제목을 덧붙이기도 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만약 지난해 9월, 결혼 운운하며 집요하게 댓글을 쓰던 (팬인지 아닌지 모를) SNS 사용자에게 일침을 가하지 않았다면, 이미 두 달여가 지난 하연수의 SNS 상의 '정색'과 '똑 부러짐'이 이토록 문제시 됐을까. 더욱이 하연수가 일반인이었다면, 아니 적어도 남성 연예인이었다면 그저 "까칠함"으로 포장되거나 치부될 일 아니었을까. 

하연수는 사죄해야 했을까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들의 SNS 사용은 일반화 된지 오래다. 이미 SNS 글로 인해 자의든 타의든 해프닝이든 실제로 문제되는 발언이었든, 유명세를 치러야 했던 사례는 줄줄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하연수의 경우, 사실 그 정색하는 태도와 어투가 일부 사용자들에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검색어 1위에 등극(?)하고, 그로 인해 수많은 기사가 쏟아졌다고 볼 수 있다. 이게 자필 사과문까지 작성하며 사죄해야 하는 일인가.

"SNS가 인생의 낭비"라거나 "공인이니 조심해야 한다"는 지적들은 하나 마나 한 공염불에 가깝다. 이미 SNS에 인생을 낭비하는 이들은 차고 넘친다. 단지 실명이냐 아니냐의 차이다. 발언 수위나 표현의 적절함이 각자의 몫으로 남겨질 뿐이다. 무엇보다, 연예인은 유명인이지 공인이 아니다.

그래서 더더욱 하연수의 '결혼 댓글'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교적 '어리고' '젊은' '여성' 유명인에게 쏟아지는 엄격한 이중 잣대 말이다. 결혼 관련 댓글엔 하연수라는 배우 개인이 느꼈을 불쾌감과 공포가 생생히 담겨 있다. 이 댓글에 쏟아진 반발을 포함해 하연수의 '인성' 운운하는 지적에는 그 여성 개인의 감정을 헤아리기에 앞서 "어디서 어린 여자 연예인이 팬(인지 아닌지 모를 익명의 누군가)에게 감히"라는 시선이 내포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여성 혐오'가 갈수록 문제시되고 그에 대한 '미러링'이 부각되고 있는 지금, 하연수의 글이 '일침'이라 일컬어졌던 지난해 9월과 달리 유독 '하연수 미러링'과 같이 그의 어투를 빗댄 비아냥조의 글까지 회자되고 있는 것을 보라. 이번 논란은 비단 유명인 개인의 SNS 사용에 관한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이는 남성 중심의 한국사회가 어리고 젊은 여성(연예인)에게 들이대는 지극히 모순적이고 차별적인 잣대와 궤를 같이 한다. (어린) 나이와 외면의 미, 온순함 정도로만 어필하면 그만이지 않느냐는, 자기주장 따위는 접으라는 일종의 침묵의 강요이자 배제의 시선 말이다. 특히나 2000년대 이후 남성 중심의 인터넷 상 분위기는 더더욱 이러한 차별과 강요의 시선이 힘을 얻어 왔다. 굳이 SNS 활동에 '연예인과 팬의 관계'로만 한정 지으려는 선입견이 강한 한국사회에서, '20대' '여'배우의 목소리에 더욱 가혹하고 엄격한 잣대가 가해지는 배경이다.

소셜 네트워크와 더불어 소셜 미디어의 성격이 강한 SNS 시대에 접어 들면서 겨우 이러한 분위기에 균열이 가고 있는 정도다. 어딘가 뒤틀려도 대단히 뒤틀리지 않았은가. 과연 '미러링'과 같이 여성혐오에 대한 반발이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해도, 하연수란 20대 여배우가 이토록 뒤늦은 시점에 비난의 십자가를 짊어졌을까.   

대선 후보 연설까지 나선 클레이 모레츠는 우리 나이로 스무 살. 댓글로 인해 사죄까지 하며 '인성 논란'을 겪어야 했던 하연수는 이제 스물 일곱이다. 하지만 20대 중반을 훌쩍 넘긴 성인임에도 하연수는 SNS 상 글 몇 개로 인해 '인성' 운운하는 평가까지 받아야 했다. 과연 역시나 SNS 상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클레이 모레츠였다면 어땠을까. 그 역시 '사죄'를 해야만 했을까.

[관련기사] 유아인은 되고, 하연수는 안 되는 이유가 대체 뭔가

하연수
댓글17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