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보고 '공드리'를 만든 오혁

22 2015년 5월 28일에 발매한 혁오의 세 번째 앨범 <22> 재킷. <공드리>가 수록돼 있다.

▲ 22 2015년 5월 28일에 발매한 혁오의 세 번째 앨범 <22> 재킷. <공드리>가 수록돼 있다. ⓒ 두루두루amc


데뷔하자마자 대세 밴드로 떠오른 '혁오'. '위잉위잉', '와리가리', 'Hooka' 등, 몽환적이고 독특한 스타일로 정글같은 음원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대중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내고 있다. 혁오의 앨범 수록곡을 살펴보다가 흥미로운 제목을 발견했다. '공드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단번에 '미셸 공드리'를 떠올릴 것이다. 영화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한번쯤은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멜로 영화를 말하시오"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많은 이가 고를 만한 작품이다. 한 겨울, 외투로 꽁꽁 무장한 남녀가 얼어붙은 호수 위에 누워있는 장면은 가장 유명한 장면으로 손꼽힌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프랑스의 미셸 공드리 감독이 연출했고 2004년에 개봉됐다. 혁오의 리더 오혁은 이 영화를 보고 음악 '공드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두 작품의 어느 지점이 닮아있을까.

'다시 괴롭고 힘들어도, 당신이라면 OK', <이터널 선샤인>

영화 <이터널 선샤인> 스틸컷 얼어붙은 호수에 누워있는 클레멘타인과 조엘

▲ 영화 <이터널 선샤인> 스틸컷 얼어붙은 호수에 누워있는 클레멘타인과 조엘 ⓒ 코리아픽처스 , (주)노바미디어


일단 영화 얘기부터 하자. 일상에 지루함을 느낀 조엘(짐 캐리 분)은 밸런타인데이에 무단결근을 하고 몬토크로 향한다. 몬토크의 해변에서 낯선 여인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 분)을 만나고 사랑에 빠진다. 클레멘타인의 충동적인 성격에 조엘은 폭언을 하게 되고, 결국 둘의 관계는 파경에 이른다. 클레멘타인은 극단적인 방법으로 조엘을 정리한다. 특정 기억을 잊도록 도와주는 회사에 찾아가 조엘과의 기억을 전부 지워버린 것이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클레멘타인에게 충격받은 조엘은 똑같은 방법으로 그녀를 정리한다. 서로를 새까맣게 잊어버린 두 사람. 그런데 자석에 이끌리듯 또 만나고 사랑을 시작한다. 그러다 서로가 과거에 사랑을 했었고, 비극적으로 헤어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지금 시작하는 이 사랑이, 알고 보니 과거에 이미 닳고 닳은 것이었으며 서로를 원망한 채 지저분하게 끝나버렸단 것을 알고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클레멘타인은 묻는다.

"당신도 언젠간 (내 단점들을) 알게 되고, 나도 당신이 지겨워지고, "역시 그렇구나" 하며 이를 갈겠죠."

조엘은 대답한다.

"(그래도) 좋아요."

둘은 결말을 알아버려 망설였지만, 결국 "OK"를 외치며 사랑을 이어나간다.

<이터널 선샤인>의 망설임을 녹여낸 '공드리'

<공드리> 뮤직비디오 스틸컷 영화 <이터널 선샤인>과 비슷한 분위기로 연출된 <공드리> 뮤직비디오

▲ <공드리> 뮤직비디오 스틸컷 영화 <이터널 선샤인>과 비슷한 분위기로 연출된 <공드리> 뮤직비디오 ⓒ 두루두루amc


혁오는 이 망설임의 순간을 포착해 '공드리'에 녹여냈다. 노래는 사랑을 묘사하며 시작한다.

"새벽 그림자 사이에 뜀박질 하는 불빛은 모닥불 같아.
선선한 아침의 노을 저기 아래는 우리의 보금자리야."

잔잔하지만 깊은 사랑이 지나고, 망설임이 시작된다.

"지금의 침묵은 기회일까, 내 기댈까, 또 그냥 나만의 생각일까?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나, 나서볼까, 괜히 또 나서는 건 아닐까?"

사랑을 시작했지만 결말을 알아버려 당황해하는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클레멘타인과 헤어지고 부침을 겪는 조엘의 감정도 묘사돼있다.

"Sunshine is over me(햇살이 나를 드리우네)
She gets over me(그녀는 날 잊었겠지)."

결국 "OK"를 외치고 서로를 택하는 남녀의 심정도 드러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앞으로 이렇듯 이렇게
Whatever they say(그들이 뭐라고 하든지)
We stay the same(우리는 여전할 거야)."

살다보면 한번쯤 연애가 안겨다주는 감정의 파고 끝에 매달리곤 한다. 그때 마주했던 수많은 망설임의 순간에서, 시원하게 "OK"를 외친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과 혁오의 '공드리'는 우리 대신 망설임의 조각들을 이어 사랑 그 자체로 만들어주었다. 이것이 이 영화가 10여 년 동안 꾸준하게, 그리고 이 음악을 만들고 연주한 혁오가 뜨겁게 사랑받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내가 사랑한 OOO' 공모작입니다.
이터널선샤인 공드리 혁오 미셸공드리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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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산책을 좋아합니다. 준이, 그리, 도비와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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