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골프선수 조인찬을 만났다.

시각장애인 골프선수 조인찬을 만났다. ⓒ 박경배


흔히 골프를 인생이라고 말한다. 바람을 가르는 호쾌한 드라이버샷을 젊음으로, 벙커와 워터해저드를 고난으로, 아슬아슬하게 홀컵을 훑으며 들어가는 퍼팅을 극복으로 비유한다. 골프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시각장애인 국가대표 골프선수 조인찬(63)씨다.

시각장애인 골프는 1925년 시작됐다. 한국인 시각장애인 골퍼는 50명 남짓이다. 남자가 42명 안팎이고 여자가 8명이다. 시각장애인 골퍼에게는 서포터가 필요하다. 서포터는 안내자 역할은 물론 캐디와 조언, 레슨까지 하며 시각장애인의 손발이 된다. 비장애인 프로골퍼 선수와 같은 국제대회 규칙을 따른다. 해저드에서도 쳐야 한다. 다만 볼을 서포터가 한번 집은 후 스윙하는 자리에 놓는다는 것이 다르다. 또 벙커나 워터해저드에서 클럽헤드가 지면에 닿아도 된다는 것도 예외 규정이다.

조인찬 선수는 B1(전맹)과 B3(약시)의 중간등급인 B2 클래스에 출전한다. 그는 2008년 일본 블라인드 골프대회 출전을 시작으로 호주 블라인드 골프 챔피언십 우승, 2012년 캐나다 블라인드 오픈 우승 등 국제 대회에서 3승을 올리며 시각장애인 골프선수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지난 4일 서울 종로에서 만났던 그는 에너지가 넘쳐보였다. 하지만 그의 삶이 항상 이렇게 활기찼던 것은 아니었다.

"육교 위에서 뛰어내릴까, 약을 먹을까?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었는지 몰라요."

1988년, 당시 35살이던 조인찬(63)씨의 삶에 절망이 찾아왔다. 가스 사업을 하던 그는 출장차 미국에 머물렀다. 짬을 내 들른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그는 처음으로 시력에 이상을 느꼈다. 멀쩡하던 무지개가 찌그러져 보였고 움직이는 자동차는 순간적으로 하늘로 솟았다가 떨어졌다. 귀국 후 찾은 병원에서 의사는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말을 했다.

"망막 뒤쪽 혈관에 출혈이 생겨서 망막에 주름이 생겼습니다. 치료가 불가능해요. 시력을 잃을 겁니다."

장애를 극복하는 것, 노력한 만큼 발전하는 것

 기자와 인터뷰 중인 조인찬 선수

기자와 인터뷰 중인 조인찬 선수 ⓒ 박경배


병명은 황반변성. 황반이라는 곳에 변성이 일어나 시력장애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쪼그라든 망막 가운데로 빛이 들어오지 않고 주변으로만 흐릿하게 빛이 들어왔다. 그는 1988년 오른쪽 눈, 2000년에 왼쪽 눈의 기능을 잃었다. 앞을 보려면 일반 사람보다 수십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희미하게 보이는 빛에 의지해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계속 두리번거려야 했다.

보통 사람들은 시각장애인들이 시각을 잃으니까 다른 감각이 발달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는 "자기가 노력을 해서 그만큼 발전시키는 거예요, 그런 소리 들으면 장애인들은 씁쓸한 웃음을 지어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해, 할 수 없는 일은 포기하고 발전 가능성 있는 감각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

앞이 깜깜해지면서 그의 삶도 어두워졌다. 누구나 그런 상황을 맞이하면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양안의 시력을 잃은 2000년 2월, 그때부터 3년 동안 그의 삶은 암흑기였다. 죽음만을 생각했다. 가족들한테 폐 끼치기 싫어서.

"막상 죽을 생각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이 눈치챌까 봐 죽겠다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요. 어떻게 죽을까 방법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절망에 젖어 살던 2003년, 그에게 다시 삶에 대한 욕구가 생겨났다.

"시간이 지나니 죽어야겠다는 생각보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지더라고. 죽기가 쉽지가 않아."

사는 동안만이라도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그는 시각장애인 복지관을 찾았다. 거기서 마주한 광경은 처참했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전맹(全盲), 경제적으로도 가정적으로도 더 열악한 사람들 앞에서 죽음을 얘기하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거기서 마음이 변했다. 그는 그 사람들을 보면서 힘을 얻고 살자고 생각했다. 그 사람들에게 힘이 돼 주고 그 사람들을 이끌어주겠다고 다짐했다.

복지관에서 그는 시각장애인 중 최초로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했다. 강의를 들은 지 두 달 만에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복지관 측에서는 역으로 강사 자리를 제안했다. 복지관에서 장애인을 가르쳐서 자격증을 획득하면 그 사람이 다음 해 강사를 하는 것이 복지관의 지침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안 해도 그만이었지만 다른 사람을 이끌어주겠다던 처음의 다짐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며칠을 준비해 동료 장애인들을 가르치는 힘든 여정을 1년 동안 이어갔다.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그에겐 살아가는 힘이었다. 그는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불빛을 모아 다른 이들을 밝혀주었다.

청각과 촉각을 발전시키면 골프 실력도 다시

사실 그는 정안(정상시력)일 때도 싱글핸디캡을 가진 실력파 골퍼였다. 74타가 베스트 스코어인 그는 시력을 잃고 나서 골프와도 이별했다. 골프는 혼자 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동반자에게 신세 지는 것이 싫어서 애지중지하던 골프채도 쓰레기통으로 내던졌다고 했다. 하지만 2008년 시각장애인골프협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8년 동안 손도 안 대던 골프채를 다시 잡았다. 다시 시작한 골프는 그에게 너무 어려웠다. 단지 잘 보이지 않을 뿐인데 몸과 머리가 따로 놀았다. 머릿속으로는 상급자처럼 치고 싶은데 실력은 초보자였다.

"시각 정보가 안 들어오니까 생각과 몸이 연결이 안 됐어요."

그는 잘 보이지 않는 골프공을 귀로 치고 골프장을 발바닥으로 읽었다. 공이 골프채 헤드에 맞을 때 나는 소리의 다름을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임팩트가 정확하게 들어갔을 때랑 아닐 때, 손에 드는 느낌은 똑같지만 소리만은 다르다고 했다. 수많은 상황 중에서도 그는 그린 위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그는 "깃대를 중심으로 홀컵을 한번 돌고 오면 그린의 언듈레이션(높낮이나 굴곡)이 머릿속에 그려져요"라고 하면서. 전맹은 발바닥 감각이 우리보다 몇천 배는 발달돼 있을 거라고 했다.

골프는 그의 삶에 원동력이기도 했다. 눈이 좋았을 때는 화를 많이 내는 성격이던 그는 골프를 다시 시작하면서 기다림을 알게 됐다. 욕심을 버리고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렸고, 마음에도 여유를 얻었다. 모든 것을 자신만의 잣대로만 판단하고 원망하던 그가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단지 조금 기다렸을 뿐인데 아무 문제가 없어졌다.

문화관광해설사를 하는 이유

 동료 문화관광해설사들과 보수교육을 받은 조인찬 선수

동료 문화관광해설사들과 보수교육을 받은 조인찬 선수 ⓒ 박경배


그의 발길은 골프장에만 닿지 않는다. 그는 경복궁에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 중이기도 하다. 그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어느 순간 찾아온 깨달음 때문이다. 2008년 호주 대회에서 우승한 후 그는 한동안 복지관에 발길을 끊었다. 시각장애인 골프선수로서 새로운 삶, 당당한 삶을 살고 있던 그였다. 그는 자신보다 더 나쁜 환경에 처한 장애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게 없다며 자기 혼자 잘 먹고 잘살았다고 자책했다.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감싸 쥐고 눈시울을 붉히던 그가 말했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데, 그 어려운 사람들을 내가 너무 모른척 하지 않았나 싶어요. 내가 과거에 그 사람들을 위해서 공인중개사 강사까지 하면서 하던 수고의 10분의 1이라도 했어야 되는데. 그래서 문화관광해설사를 자원했어요. 전맹들에게 도움을 주려고요. 그들한테 가장 필요한 게 산책이거든요."

그가 생각하는 장애인과 인식

30년, 그가 장애를 갖고 지나온 시간이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대우는 과거보다 많이 발전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정부와 장애인 양쪽에 모두 문제가 있다고 했다. 복지 혜택을 받은 장애인들은 고맙다는 생각보다 "더 해줄 수 있는데 왜 이 정도야"란 마음을 갖는 경우가 있고, 정부의 복지정책은 전시효과만을 노린다고 강조했다. 골프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해외에 자주 나가는 그는 한국의 사회적 의식 수준이 아직도 개발도상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하며 덧붙였다.

"다른 나라에 가면 핸디캐퍼(장애인)가 먼저예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핸디캐퍼 라스트죠. 핸디캐퍼 퍼스트로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변화가 일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 변화다. 그가 고문으로 있는 단체에서 골프대회를 열었을 때, '눈으로 보는 세상과 마음으로 보는 세상이 어울린 한마당'이라는 슬로건이 쓰였다. 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리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애인을 대할 때 동정심이 빠져야만 해요. 같은 레벨로 봐 줘야지 '너는 나보다 약하니까 내가 케어한다'고 하면 안 돼요. '너와 나는 동급이다'라는 생각을 해 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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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찬 골프선수 시각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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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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