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구의 전설' 허재가 대표팀 감독으로 돌아왔다. 대한농구협회는 지난 6월 14일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허재 감독을 선임했다. 임기는 2016년 7월초부터 2019년 2월말까지 약 3년간이고 한국이 2019 농구월드컵 출전권을 확보할 경우 자동으로 연장된다.

허재 감독은 6일 오전 서울 송파구 대한농구협회에서 열린 대표팀 소집 미팅에서 선수단과 상견례를 하고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업무에 돌입했다. 허 감독의 친아들이자 농구 선수로 활동 중인 허웅과 허훈도 함께  대표팀에 발탁되며 삼부자가 농구대표팀에서 감독과 선수로 만나는 진풍경도 펼쳐졌다. 허재 감독은 23일부터 대만에서 열리는 존스컵에 출전하여 대표팀 전임 감독으로서 첫 대회를 치른다.

허재 감독이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허재 감독은 2009년과 2011년 아시아선수권에서 두 번이나 한국 농구대표팀을 지휘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는 프로농구 전주 KCC 사령탑을 역임하면서 임시로 대표팀 감독을 겸임하는 구조였다. 이번에는 온전히 대표팀만을 전담하는 전임 감독 체재다. 허 감독 개인으로서는 2014년 KCC 사령탑에서 물러난지 약 1년 4개월 만의 현장 복귀다.

1년 4개월 만에 현장에 복귀한 허재

 허재 남자농구대표팀 감독이 6일 오전 서울 송파구 대한농구협회에서 열린 남자농구 대표팀 훈련 소집에서 각오를 다지는 발언을 하고 있다.

허재 남자농구대표팀 감독이 6일 오전 서울 송파구 대한농구협회에서 열린 남자농구 대표팀 훈련 소집에서 각오를 다지는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허재 감독의 선임은 벌써부터 팬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허 감독은 현역 시절 한국의 '농구대통령'으로 통할 만큼 최고의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실업 기아자동차 시절 농구대잔치 역대 최다인 7회 우승을 견인했고 프로무대에서는 선수(부산 기아-원주 나래)와 감독(전주 KCC)으로 모두 우승을 경험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한국농구 역사상 최고의 기술과 스타성까지 겸비한 전설로 손색이 없다. 자타공인 한국농구의 간판인 허 감독의 존재감만으로도 대표팀에 대한 관심과 위상이 높아지는 효과를 기대할수 있다.

한편으로 농구인 허재와 태극마크의 끈끈한 인연은 30년에 걸친 '애증'으로 점철된다. 허재만큼 대표팀을 통하여 영욕을 모두 맛본 인물도 드물다.

허재 감독은 중앙대 시절이던 85년 아시아선수권에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른 뒤, 99년 후쿠오카 아시아선수권까지 무려 14년간 태극마크를 달며 한국 농구대표팀을 이끌었다. 88서울올림픽, 1990-1994 세계선수권(현 농구월드컵) 등에서 허재는 한국 선수들 중 유일하게 세계적인 선수들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기량을 선보이며 극찬을 받았다. 특히 90년대 세계대회 이집트전에서 기록한 62득점은 대회 역사상 한 경기 최다득점 기록으로 남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한국농구와 세계와의 격차가 엄청나던 그 시절에, 허재는 '슛도사' 이충희와 더불어 세계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득점과 기술력을 갖췄다는 극찬을 들었던 몇 안되는 선수였다. 실제로 국제대회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NBA에서 영입제의를 받기도 했다. 국내무대에서는 이렇다할 적수가 없었던 허재가 대표팀에서 세계적인 선수들을 상대하며 승부욕을 불태웠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대표팀은 그의 농구인생에 빛보다 짙은 그림자도 드리웠다. 국내 무대에서는 밥먹듯이 우승을 차지한 것에 비하여 국제무대에서는 아시아선수권과 아시안게임 등에서 한번도 정상에 올라보지 못했다. 1997년 사우디 리야드 선수권 우승 당시에는 허재가 대표팀에서 제외된 상태였고, 2002년 부산 AG 우승은 이미 대표팀을 은퇴한 후였다. 이쯤되면 국제대회만큼은 지독하게 우승복이 없었다고 할만하다.

흑역사도 많았다. 허재는 농구대표팀에서 1993년과 1996년 대표팀에서 두 번이나 징계를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허재의 현역 시절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했던 음주와 사생활 문제가 원인이었다. 특히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본선에서는 7전 전패로 농구대표팀이 역대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표팀 후배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하여 대회 기간 중 술자리를 벌인 사실이 교민들을 통하여 폭로되며 영구제명을 당했다.

훗날 징계가 해제되며 1999년에 마지막으로 대표팀에 복귀하기는 했지만, 유독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의 농구대표팀 경력은 겉보기의 화려함에 비하여 실속이 떨어졌고 수많은 구설수로 얼룩졌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대표팀에서는 유독 성적을 내지 못했던 허재

하지만 허재와 대표팀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은퇴 후 지도자의 길에 입문한 허재는 2009년 KCC에서 프로무대 첫 정상을 맛보며 감독으로서도 상종가를 달렸고 프로 우승팀 감독의 자격으로 농구대표팀의 지휘봉까지 잡게됐다. 현역 은퇴 후 정확히 10년 만의 대표팀 귀환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금의환향은 하지못했다. 2009년 아시아선수권에서 허재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레바논과 대만에 잇달아 패하며 대회 역사상 최악의 성적인 7위에 그치는 '텐진 참사'를 당했다. 한국농구가 아시아선수권에서 3위밖으로 밀려난 것은 처음이었다. 한국농구의 국제대회 '암흑기'의 절정을 찍은 사건으로 회자된다.

허재 감독은 2년 뒤 우한에 열린 2011 아시아선수권에서도 다시 한 번 지휘봉을 잡으며 명예회복을 노렸지만 준결승에서 중국에 패해 3위에 만족해야했다.

허재 감독은 현역 시절부터 유독 중국과는 악연이었다. 선수 시절에는 중국의 벽에 막혀 번번이 아시아 정상에 오르는데 실패했다. 특히 한국의 에이스였던 허 감독은 중국 수비의 집중 표적이되어 경기내내 거친 파울을 당하며 신경전에 얽히기 일쑤였다. 공교롭게도 지도자가 되어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치른 두 번의 아시아선수권도 모두 중국에서 열린 대회였다. 허 감독은 대회 내내 개최국 중국의 지나친 홈 텃세와 부실 운영, 판정 문제 등에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했고 이 과정에서 중국 언론과도 갈등을 빚었다.

이제는 허 감독의 대표 어록으로 남은 '욕설'사건도 여기서 나왔다. 2011년 우한 대회 준결승에서 중국에 패한 이후 기자회견에서 상식 이하의 질문으로 도발을 일심는 중국 기자들의 태도에 격분한 허재 감독은 육두문자와 함께 "뭔소리야,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짜증나게"하는 일침(당시 통역은 그냥 노코멘트라고만 전달했지만 중국 기자들 대부분은 모두 한국 욕을 알아들었다)을 날리고 퇴장해 버렸다. 이후 중국 언론과 스포츠계의 비매너 행태가 거론될 때마다 허재 감독의 어록은 지금도 패러디의 대상으로 소환되곤 한다.

한편으로 허재 감독이 KCC 사령탑에서 물러나 프로무대를 떠나게된 것도 간접적으로 대표팀과 관련이 있다. 2014년 대표팀에 합류 중인 KCC 김민구가 외박기간 중 음주운전 사고를 저지르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는 대표팀은 물론 당시 우승후보로 거론되던 KCC에게도 큰 타격이 된 사건이다. 전력구상에 큰 차질을 빚게된 KCC는 결국 그해 플레이오프에 오르지 못했고 허재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사퇴하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김민구의 스승인 허재 감독도 음주운전으로 실형을 받는 등 농구인생 내내 술 때문에 숱한 사건사고로 물의를 일으킨 전적이 있으니,진정 지은 '업보'대로 돌려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올만 했다.

대표팀 감독으로서 허재 감독의 성과를 두고는 평가가 엇갈린다. 허 감독이 처음 지휘봉을 잡던 시기는 한국농구계와 대표팀 운영을 둘러싼 각종 구조적인 문제점들이 봇물터지듯 쏟아져나오며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갑작스럽게 지휘봉을 물려받아 KCC 사령탑과 대표팀을 겸임해야 했으며, 충분한 시간도, 제대로 된 지원도 받지 못했던 허재 감독에게만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는 지적이 있다.

물론 그에 대한 반론으로는 그 뒤을 이은 유재학 감독이 같은 조건에서도 농구월드컵 본선출전과 아시안게임 우승 등 더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는 점을 지적할 수도 있다. 허재 감독은 두 번의 아시아선수권을 치르는 동안 중국, 이란, 레바논 등 아시아의 강팀들을 한 번도 제대로 이겨보지 못했고 전술적으로도 여러 가지 단조로운 한계를 노출했다. 다만 이번에는 전임감독으로서 오직 대표팀에만 올인할 수 있게된 만큼 허재 감독의 지도자로서의 국제적 역량이 진정한 시험무대에 오르는 상황이다.

농구 대표팀 전임 감독, 새로운 도전 나선다

현실적으로 허 감독이 전임 감독으로 선임되었다고는 해도 환경이 예전보다 좋아진 것은 아니다. 지난해 아시아수권의 부진과 그 과정에서 드러난 농구협회의 총제적 운영 부실이 알려지며 대표팀의 위상은 땅바닥에 떨어졌다. 양동근, 김주성, 문태종 등 노장들의 자리를 대체하는 세대교체도 대표팀의 시급한 화두로 떠올랐다. 허 감독이 KCC 사령탑에서 물러난 이후 1년여 간의 현장 공백을 잘 극복할 수 있을지도 변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시스템의 확립이다. 2008년 김남기 전 감독이 국가대표팀 전임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협회의 미약한 지원과 개인 사정으로 인하여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프로 감독으로 자리를 떠나며 전임 감독제가 흐지부지된 아픈 전례가 있다. 8년 만에 부활한 전임 감독제에서 허재 감독도 모든 것이 불확실한 대표팀의 운영 시스템을 바닥부터 다지고 구축해 나가야 할 어려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재 감독이 이끌어갈 대표팀의 미래가 상당히 흥미진진해질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일단 '허재'라는 이름값만으로 농구팬들의 시선을 한 번 더 모으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허 감독을 연결고리로 엮인 각종 인연도 흥미롭다. 방열 농구협회 회장과는 과거 기아자동차에서 감독과 선수로서 고의 태업 파문으로 악연을 맺은 바 있는데, 세월이 흘러 협회의 수장과 대표팀 사령탑으로 다시 한 배를 타게 됐다.

허 감독의 친아들인 허웅와 허훈은 이번 국가대표 발탁에서 보듯, 어느덧 한국농구에서도 손꼽히는 잠재력을 지닌 선수들로 성장했다. 아무래도 친아버지가 감독이다보면 대표팀 발탁에 대한 삐딱한 시선이 나올 수도 있지만 허웅과 허훈은 이미 각각 프로와 대학 무대서 충분히 그 실력을 인정받은 선수들이다보니 이번 대표팀 발탁도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허 감독은 "아들이라도 대표팀에서는 그저 선수와 감독일뿐"이라며 분명히 선을 긋겠다는 입장이다. 코트에서 선수들이 해이한 플레이를 펼칠 때 강렬한 '레이저'를 쏘는 것으로 유명한 허재 감독의 눈빛이 친아들을 가르칠 때는 어떤 모습일지도 흥미롭다.

또한 허 감독이 향후 대표팀을 이끌고 국제대회에 나서게 되면 오랜 악연인 중국 대표팀이나 중국 언론과의 피할 수 없는 재회도 언젠가 겪어야할 일이다. 한국농구는 최근 국제무대에서 그 위상이 많이 하락한 상황이고 국내에서의 인기도 많이 떨어졌다. 이럴 때일수록 대표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국 농구의 위상을 중흥시키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다. 농구계에서 그야말로 영광과 오욕의 산전수전을 다 겪은 허재 감독이 다시 한번 한국농구를 구원할 농구대통령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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