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토요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뉴욕 양키스의 대결. 올 시즌 볼티모어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 무대에 진출한 김현수의 활약을 직접 보기 위해 미국 북동부의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로 향했다.

인터넷으로 예매하고 야구장으로 출발하는 것이 편하지만, 김현수가 확실한 주전으로 자리 잡지 못했기에 그럴 수 없었다. 만약 김현수가 선발 출전하지 못한다면 야구장 대신 볼티모어 시내 구경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차를 타고 볼티모어로 향하던 중 스마트폰으로 김현수가 2번 타자 겸 좌익수로 선발 출전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개막 초반에는 출전 기회조차 잡지 못하던 김현수가 최근 좋은 활약을 펼친 덕분에 상위 타선을 맡게 됐다.

김현수의 선발 출전 소식에 마음이 급해졌다. 좀 더 속도를 내서 경기 시작 1시간 전쯤 마침내 볼티모어의 홈구장 오리올 파크 앳 캠든 야즈에 도착했다. 야구장 인근 호텔과 민간 주차장들은 야구팬을 위해 20~30달러의 정액 주차권을 판매하고 있었다.

역시 '야구의 나라' 미국이었다

 길고 거대한 연갈색 건물 뒤로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홈구장이 숨어있다.

길고 거대한 연갈색 건물 뒤로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홈구장이 숨어있다. ⓒ 윤현


20달러짜리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야구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길고 거대한 연갈색 건물 뒤로 야구장이 숨어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철도회사 건물로 1970년대 이후 거의 비어있었고, 야구장 건설 당시 시야를 가린다는 이유로 철거하자는 여론이 높았다.

하지만 건설사는 그대로 놔두고 야구장을 만들기로 했고, 지금은 오히려 오리올 파크 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야구단 사무실과 매표소, 기념품 상점, 편의점 등으로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전설적인 3루수 브룩스 로빈슨 주니어의 동상.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전설적인 3루수 브룩스 로빈슨 주니어의 동상. ⓒ 윤현


미국에서 정식 프로야구가 출범한 것이 1901년이니, 1894년 창단한 볼티모어는 메이저리그의 원년 멤버다. 밀워키와 세인트루이스를 거쳐 1954년 볼티모어를 연고지로 정착했고, 메릴랜드 주의 상징인 찌르레기(꾀꼬리)를 뜻하는 오리올을 마스코트로 삼았다.

야구장 주변은 볼티모어를 빛낸 레전드 선수들의 동상들이 세워져 있다. 사진에 나온 브룩스 로빈슨 주니어는 볼티모어에서 데뷔해 은퇴할 때까지 22년(1955~1977) 동안 메이저리그 최고의 3루수였다. 골든글러브를 16회나 수상했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야구장에 입장하는 팬들.

볼티모어 오리올스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야구장에 입장하는 팬들. ⓒ 윤현


 볼티모어 오리올스 홈구장의 기념품 상점.

볼티모어 오리올스 홈구장의 기념품 상점. ⓒ 윤현


 야구장 주변 술집들도 엄청난 사람들로 발들일 곳조차 없다.

야구장 주변 술집들도 엄청난 사람들로 발들일 곳조차 없다. ⓒ 윤현


야구장은 인산인해였다. 입구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고, 주변 술집은 야구를 보러왔거나 입장권이 없어도 그저 맥주와 함께 TV로 경기를 보며 야구장 분위기를 느끼려는 팬들로 가득 찼다. 다양한 기념품은 지갑을 열게 하는 마법을 부렸다.

우리는 경기가 잘 보이는 내야석이 아닌 김현수가 잘 보이는 좌측 외야석을 목표로 삼았고, 다행히 꽤 앞쪽 좌석을 구입할 수 있었다. 입장권까지 사고나니 비로소 핫도그 굽는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있었단 걸 알아챘다. 세계 어디를 여행하든 길거리 음식은 진리다.

핫도그와 감자튀김, 맥주로 간단히 배를 채웠다. 이날 우리가 쓴 돈은 입장권 4장 130달러, 주차비 20달러, 간식비 50달러 등 총 200달러(약 23만 원)에 달했다. '야구의 나라' 미국에서도 메이저리그 경기를 직접 관람한다는 것은 서민들의 여가가 아닌듯하다.

혹시나 돌아볼까 "김현수 파이팅!" 외쳤지만

 볼티모어 오리올스 야구장 주변의 노점.

볼티모어 오리올스 야구장 주변의 노점. ⓒ 윤현


 노점에서 구입한 핫도그와 감자튀김. 맛이 뛰어나다.

노점에서 구입한 핫도그와 감자튀김. 맛이 뛰어나다. ⓒ 윤현


1992년 개장한 오리올 파크는 4만8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천연 잔디 야구장이다. 고풍스러운 외관과 구조로 지어지며 이후 메이저리그 야구장 건설에 '복고풍'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찰리 쉰 주연의 야구영화 <메이저리그2>의 배경이 이곳이다.

경기에 앞서 3일 타계한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를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든 관중이 기립해 묵념하고, 미국 국가를 불렀다. 곧이어 양 팀 선발 선수가 소개되고 마침내 김현수가 우리 눈앞에 등장했다.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를 추모하는 관중들.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를 추모하는 관중들. ⓒ 윤현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좌익수로 선발 출전한 김현수.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좌익수로 선발 출전한 김현수. ⓒ 윤현


 관중석을 돌아다니며 맥주를 파는 아저씨.

관중석을 돌아다니며 맥주를 파는 아저씨. ⓒ 윤현


김현수가 소개될 때 우리가 유독 큰소리로 환호하자 주변 관중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자 알겠다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이라도 봐주길 바라며 크게 "김현수 화이팅!"을 외쳤지만, 경기에 몰입했는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이날 볼티모어는 경기 초반 7실점을 하며 부진했다. 답답한 마음에 연신 맥주를 들이켰다. 관중석을 돌아다니며 맥주를 파는 아저씨는 동양인의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는지 우리의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다. 어려 보인다니 기분 좋았다.

볼티모어는 7회 말 공격 때 홈런 3개로 대거 6득점을 올리는 저력을 발휘하며 경기장을 뜨겁게 달궜다. 비록 아쉽게 6-8로 패했지만, 7회 말의 강렬했던 공격과 흥분 덕분에 비싼 입장권이 아깝지 않았다.

김현수도 첫 타석에서 2루타를 터뜨렸지만, 더 이상 안타를 기록하지 못했다. 하지만 볼티모어가 최근 김현수의 활약을 주목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김현수가 더 잘해서, 더 많은 박수를 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야구장을 나섰다. 오는 가을, 볼티모어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최고의 무대에 서는 김현수를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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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티모어 오리올스 김현수 메이저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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