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삶을 살 기회가 있고 도움을 주는 사회적 기반이 있어서 다시 일어설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는 덴마크 시민들. 그들이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새로운 삶을 살 기회가 있고 도움을 주는 사회적 기반이 있어서 다시 일어설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는 덴마크 시민들. 그들이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 KBS


"세월호 너무 정치적으로 변질된 거 아니야? 그냥 추모가 아니라 정치적이라서 싫더라, 나는"

누군가의 가방에 달린 노란 리본을 보며 친구는 말했다. 세월호가 정치적이어서 싫다고. 옳고 그름을 떠나 정치적인 것이 왜 나쁜지 묻고 싶었지만 언쟁을 하고 싶지 않아 말을 아꼈다. 사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정치는 정치인들의 전유물이고 우리 삶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박혀 있는 듯했다.

지난 9일 방송된 KBS 스페셜 '행복의 나라 덴마크를 만나다'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덴마크의 정치제도에 대해 다뤘다. "정치는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었다. 덴마크는 어떻기에, 국민 입에서 "행복하다"는 말이 쉽게 나오는 국가가 된 걸까.

특권의식 버리고 국민들 곁으로 향하는 정치

 덴마크 정치인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언제든지 방문을 두드리고 의원들을 만나고 취재할 수 있다. 또 대다수의 국회의원들은 경차를 타고 다닌다.

덴마크 정치인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언제든지 방문을 두드리고 의원들을 만나고 취재할 수 있다. 또 대다수의 국회의원들은 경차를 타고 다닌다. ⓒ KBS


다큐는 덴마크의 출근 모습을 가장 먼저 보여준다. 한 남성은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타고 국회의사당으로 향한다. 국회에 방문한 시민일까? 아니다. 그는 초선 국회의원인 라스무스 노어퀴스트씨다. 그 말고도 국회의원 전체의 3분의 1 정도가 자전거를 타고 출근한다. 자동차에 기사까지 대동해 출근하는 한국의 모습과는 영 딴판이다.

덴마크 국회는 크리스티안보르 궁전 안에 있다. 1849년 의회가 시작된 후 왕이 국민에게 궁전을 돌려주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덴마크는 지금도 여왕이 존재하지만, 국회를 중심으로 정치가 이뤄진다.

덴마크 국회의 모습은 인상 깊다. 13개의 정당, 179명의 의원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들은 하루 평균 12시간을 일하지만, 특권은 거의 없다. 사무실 가구는 자비로 마련하고, 비서는 의원 두 명당 한 명이 배치된다. 더욱 인상 깊은 건, 이들의 의정활동 내용을 인터넷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회에 참석하지 못할 경우에는 휴가 기간을 표시하고, 대리인을 표시하게 돼 있다.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모두 확인할 수 있는 홈페이지는, 국민이 언제든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처럼 보였다.

더 놀라운 건, 이다음이다.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의 교육 지원을 촉구하는 집회가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국회를 비롯해 여러 지역에서 집회를 금지하고, 불법이라 하는 한국과는 대조적이었다.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놀랍다. 대부분 초등학생들이다. 이들은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그림으로 그려 표현하기도 한다.

그들의 모습을 보니 세월호 서명운동을 하러 서울을 돌아다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서울 곳곳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했다. 어르신들은 내게 "학생이 공부를 해야지 이런 거나 하고 말이야"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공부도 하면서 하고 있다고 말을 했지만,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세월호가 남의 일이 아닌데, 이거야말로 나나 학생들이 나설 일이 아닌가?' 하지만 이 말은 입 밖으로 쉽게 나오지 못했다. 사회를 비판하고 집회에 참여하고 정치를 이야기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시선들이 나를 짓눌렀다.

또, 정치인을 만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세월호 유가족들이 특별법 제정을 이야기하고 단식농성을 하고, 국회 앞에서 노숙농성을 할 때도 대통령이나 여당 정치인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선거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생들이 교육 관련 공약에 대해 여론을 모으고 후보들에게 간담회를 요청했지만, 그 요청을 받아들인 후보는 드물었다. 정치인들과 국민 사이에 안 보이는 벽이 크게 자리하고 있는 듯 했다.

집회에 참석하길 요구하자 총리가 직접 나와서 초등학생들과 시선을 맞추고 소통하는 모습은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그 낯선 느낌은 이내 슬픔과 부러움으로 다가왔다. 다큐를 찍고 있기 때문도 아니었다. 수년간 집회가 열릴 때마다 총리가 참석해 소통해왔다고 한다.

덴마크 정치는 가까움이 돋보였다. 그들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언제든지 방문을 두드리고 의원들을 만나 취재할 수 있다. 또, 대다수의 국회의원은 경차를 타고 다닌다. 국민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산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필요한 일이 아닐 때는 경호원도 대동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시민들과의 만남과 소통은 당연한 일이고, 또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런 덴마크 정치의 모습은 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200년 전, 덴마크는 전쟁으로 인해 가난과 고통이 가득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그룬투트비는 계몽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 싶어 가장 먼저 특권을 버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이 복지국가 덴마크의 시작이었다. 그는 "부자가 적고 가난한 사람이 더 적을 때 사회는 풍요로워진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검소한 덴마크 의원들의 모습과 어울리는 말이다. 정치인들이 일반인들과 다르지 않다는 믿음, 그리고 그들이 국민의 행복을 원한다는 믿음이 있기에 덴마크 정치는 시민들의 삶과 더 가까워 보인다.

국민행복을 기준으로 삼고, 타협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

 "덴마크 정치인들은 어느 정당 소속인지를 불문하고 국민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정치인들의 중요한 목표이고 해야 할 일입니다. 선거 때 공약을 100% 성공시킬 수는 없지만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피터 스쿠업 의원의 말은 당연한 일이지만 감격스럽게 다가온다.

"덴마크 정치인들은 어느 정당 소속인지를 불문하고 국민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정치인들의 중요한 목표이고 해야 할 일입니다. 선거 때 공약을 100% 성공시킬 수는 없지만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피터 스쿠업 의원의 말은 당연한 일이지만 감격스럽게 다가온다. ⓒ KBS


덴마크의 정치인들이 국민과 소통만 잘하는 건 아니다. 일도 정말 잘한다. 타협을 전제로 한 대화가 덴마크 정치의 가장 중요한 점이다. 덴마크 코어곱 자유학교(고등학교 졸업 후 진로를 결정하는 교육기관. 시험이나 성적 평가가 없는 것이 특징)를 다니는 한 학생의 말이 인상적이다.

"의견이 다른 사람도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하고, 그들을 초대해 대화하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내면 서로 좋은 친구가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하기는 어렵다.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도 의견이 갈리는 내용이 나오면 언쟁을 피하고 말을 아낀다. 서로 감정이 상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우리 일상만 그런 것도 아니다. 한 국회의원은 "몸싸움을 해서라도 노동개혁법을 통과시켰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너무 원통하다"는 말을 선거 유세 중에 했다. 의견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단으로 의회에 불참하거나 서로 욕을 하는 장면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만나 서로를 벽으로 칭하며 아무런 타협도 이뤄내지 못하는 일도 흔하다. 일상뿐 아니라 국회에서도 공존의 가치를 잃은 듯하다.

덴마크에서는 어릴 때부터 경청하는 습관을 교육시킨다. 자기 의견이 강해 대립해도,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서로 맞추며 중간지점을 찾는 연습을 한다. 이는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나가서도 그 효과를 발휘한다. 국회의원들은 정부에 연간 만 개가 넘는 질의를 보내고 정부는 성실하게 답변한다. 그 과정에서 수정이 필요한 법안을 발견했을 경우, 장관을 만나 절충안을 만들고 진행한다. 경청과 타협이 익숙한 이들은 이상적인 정치를 해나간다.

"새로운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일치점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국회는 싸우는 곳이 아닙니다. 서로 동의할 수 있는 수준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상임위 의원들은 서로 타협해 모두가 만족할 만한 절충안을 만들어낸다. 자기 의견만 내세우지 않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반영하는 일은 어렵다. 그럼에도 모두가 노력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덴마크의 정치 제도가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국회의원이 국민의 행복을 원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항상 국민의 행복을 생각하고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그들의 신념이 타협의 정치를 가능하게 한다. 

"덴마크 정치인들은 정당 불문하고 국민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정치인들의 중요한 목표이고 해야 할 일입니다. 공약을 100% 성공시킬 수는 없지만, 노력하고 있습니다."

피터 스쿠업 의원의 말은 당연하지만 감격스럽게 다가온다. 부러운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나도 모르게 피했던 언쟁들은 사실 언쟁이 아니라 소통할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기회들을 피해왔다. 사이가 멀어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정치'를 누군가와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누군가가 내게 "정치하고 싶어서 저래"라고 이야기할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건 아마 정치인들이 깨끗하지 못하다는 생각, 누구도 그 자리에 오르면 부패하게 된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사실 그런 생각들이 정치를 더욱 밀실로, 우리와는 먼 이야기로 만들고 있었던 게 아닐까. 지금이라도 당당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덴마크에 부정부패는 존재하지 않아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덴마크 의원들, 그리고 시민들처럼 우리도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면. 정치도 다시 우리 삶으로 돌아올 것이다.

덴마크가 특별한 나라라 국민이 행복하고 정치가 신뢰받는 건 아니다. 정치란 국민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국민과 함께 해나가야 한다는 믿음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것은 우리에게도 가능하다.

세월호 덴마크 정치 행복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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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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