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구글 딥마인드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와 5번기 두번째 대국을 마친 이세돌 9단이 혼자서 대국을 복기하고 있다. 이 9단은 이날 전날 1국에 이어 연거푸 알파고에 불계패했다.

10일 구글 딥마인드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와 5번기 두번째 대국을 마친 이세돌 9단이 혼자서 대국을 복기하고 있다. 과연 알파고는 인간을 대체할까. ⓒ 구글 제공


교사인 친구가 전해준 말이다. 초등학교 1학년의 어떤 학생은 자기 집 식구를 소개할 때 꼭 다섯이라고 한단다. 친구가 기억하기엔 분명 부모님과 1학년 학생, 동생까지 이렇게 네 식구가 다인 거로 알고 있는데. 알고 보니 학생이 꼽은 가족에는 그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이 한 몫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제 애완견이 가족인 게 하등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 가족의 자리에 애완견처럼 로봇이 차지할 날이 머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15일 방영된 SBS의 2015 SDF(서울디지털포럼) 특집 다큐멘터리 <알파고와 어린 왕자: 관계를 바꾸는 기술>(아래 <알파고와 어린왕자>)은 알파고의 시대에 알파고의 공습으로 인한 공포 대신 인공지능에 대한 새로운 관계 모색을 시도한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내리 세 판을 이겨 버리자, 사람들은 충격에 빠져 버렸다. 알파고 쇼크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세상은 인간을 상대로 스스로 진화하여 승리를 이끌어낸 무시무시한 인공지능에 조만간 지배당할 것 같은 위기에 빠져 버렸다. 심지어 일부러 져준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조차 등장하기도 했다.

인공지능과의 관계 모색

 영화 <그녀>의 한 장면. <그녀>의 테오도르는 인공지능 사만다와 대화하며 점차 사랑에 빠진다.

영화 <그녀>의 한 장면. <그녀>의 테오도르는 인공지능 사만다와 대화하며 점차 사랑에 빠진다. ⓒ 워너브라더스


우리 사회 저변에 깔린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을 전제로, 다큐는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는 AI와의 진전된 '관계'를 모색하고자 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2014년 개봉한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그녀(her)>가 알파고 쇼크의 대척점에 놓여있다. 인공지능과의 사랑이라니 이 또한 사랑의 쇼크일까?

영화에서 등장했던 인공지능 운영 체제 '사만다(스칼렛 요한슨 분)'와의 사랑에 빠졌던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 분)가 그저 가상의 이야기가 아님을 다큐는 보여준다. 일본에서는 이미 여자친구 노릇을 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다큐에 등장한 일본 남자는 인공지능 여자친구와 함께 밥을 먹고 데이트도 한다. 여자 친구는 아니더라도, 낡은 기계의 부분조차 마치 늙어가는 모습으로 받아들이며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다.

일본처럼 시제품은 아니지만, 한국도 가족이 미처 하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주는 인공지능이 등장했다. 로봇 동아리 경험이 있는 부부는 자라나는 아이를 위해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었다. 영화 < AI >의 데이빗 같은 모양새가 아니라 그저 아이의 걸음마 보조용 손잡이와 바퀴가 달린 단순한 모양이지만, 아이의 성장에 따라 걸음마에서부터, "나 잡아봐라"까지 함께 하며 자란 로봇은 가족의 생각을 담은 플랫폼으로 가족의 구성원이 되었다. 심리학 연구는 인간이 로봇과 교감할 가능성을 증명한다.

이렇듯 현실의 인공 지능은 알파고처럼 인간과 대결을 하며 인간의 영역을 호시탐탐 엿보는 또 하나의 세력이 아니라, 인간 삶의 빈틈을 채워주는 '조력자'의 형태로 등장한다고 다큐는 밝힌다.

삶의 조력자로서의 로봇

 SBS 다큐 <알파고와 어린왕자>

SBS <알파고와 어린왕자>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를 어린왕자와 사막 여우에 비유한다. ⓒ SBS


전신마비 환자의 눈을 통해 그의 목소리와 발이 되어 세상과 소통시켜 주는 로봇, 반신불수 장애인의 발이 되기 위해 개발 중인 로봇, 바쁜 엄마를 대신하여 아이의 일정을 보살펴 주고 외국어까지 가르쳐 주는 학습 도우미 로봇, 최근 화제가 되는 무인 자동차, 시판 중인 VR(가상현실)까지. 다큐는 현실의 로봇은 인간과 힘겨루기를 하기보다 친구가 되어가는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처럼 인간 생활의 벗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며 그 관계를 재정립한다.

이세돌 9단을 이기는 알파고는 무시무시해 보였고, 소설까지 써내는 인공지능의 잠재력은 인간을 넘어선 듯 보였다. 언젠가 인공 지능이 써낸 소설이 자신의 소설보다 더 베스트셀러가 될 날이 올지 몰라도, 자신이 써내는 '인간의 향취'는 독보적일 것이라는 소설가 박범신의 소견은 자족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언젠가 사람 대신 로봇 친구와 로봇 아내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생길 그 날이 올지라도, 학자들은 여전히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그 존재의 DNA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 예견한다. 오히려 그런 위기보다는, 로봇 다리를 장착하고 십여 년 만에 일어선 장애인이 두 발로 서서 맡는 공기가 다르다고 감동하듯 로봇의 미래는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것에 주목한다.

물론 미래의 언젠가 진화한 로봇에게 자리를 빼앗긴 사람들이 로봇을 상대로 '러다이트 운동(기계 파괴 운동)'을 벌일지도 모를 일이다. 로봇이 사막여우와 같은 길들인 벗이 될지, 아니면 별을 갉아먹는 바오밥나무가 될지는 인간의 선택에 달려있다. '알파고 충격'을 다룬 SBS 스페셜 <알파고 쇼크, 그 실체는 무엇인가?>와 인공지능과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모색한 <알파고와 어린 왕자>는 우리 손에 놓인 양날의 검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알파고와 어린 왕자-2016 SDF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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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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