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철학적으로 혹은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 프레스콜 지난 3월 24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열린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의 프레스콜 현장 사진.

▲ 이영미 마리아 지난 3월 24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열린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의 프레스콜 현장에서 마리아 역의 이영미 배우가 열창하고 있다.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의 주인공 막달라 마리아는 주변의 남성적 시선에 갇힌 인물이다. ⓒ 곽우신


남성주의적 시각에서 여성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성녀·창녀 콤플렉스는 오랫동안 인류의 절반을 억압해왔다. 역사를 통틀어, 이 프레임에 갇힌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가 바로 막달라 마리아이다. 갈릴래아 막달라 지방에서 태어난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인 동정녀 성모 마리아와 동명이인으로,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마리아 중 하나이다. 본래 몸 파는 여인이었던 그는 예수를 만나 회개하며, 이후 그의 죽음을 곁에서 지킨다. 이후 회개한 죄인들의 수호성녀로 추앙받는다.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아래 <마리아>)는 바로 이 막달라 마리아가 주인공인 창작극이다. 2003년 초연 이후 여러 번 다시 올라온 작품이지만, 작품의 저작권이 이리저리 넘어가면서 그간 공중에 떠 있었다. 2016년, HJ컬쳐가 이 극을 인수하여 대대적 수정작업을 거친 뒤 지난 3월 22일부터 관객을 맞고 지난 17일 폐막했다.

프레임 깨기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 프레스콜 지난 3월 24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열린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의 프레스콜 현장 사진.

▲ 시장판이 된 성전 김신의 배우의 예수 그리스도. 장사치의 소굴이 된 성전을 보고 분노하는 예수의 모습에서 이 작품의 지향하는 종교적 색채가 강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그 색깔이 비종교인에게 불편하게 다가올 정도로 일방적인 묘사는 아니다. ⓒ 곽우신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 프레스콜 지난 3월 24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열린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의 프레스콜 현장 사진.

▲ 예수와 제사장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는 이스라엘 땅에서 일어난 정치적 갈등을 극에 녹여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기득권을 상징하는 제사장과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예수의 갈등은 상당히 임팩트 있게 그려졌다. ⓒ 곽우신


뮤지컬 <팬텀>이 <오페라의 유령>과 비교당할 수밖에 없듯, <마리아> 역시 태생적으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아래 <지크슈>)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관련 기사 : '나를 죽인 건 예수' 의문을 품고 죽은 남자). 같은 시기, 같은 인물들의 같은 사건을 그리다보니 데자뷰처럼 겹쳐 보이는 장면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아무도 나를 믿지 않네 Reprise'를 듣다가 '겟세마네'를 떠올리지 않는 팬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지크슈>의 방점은 예수의 인간적 고뇌와 이를 바라보는 유다 사이의 갈등에 찍혀 있다. <지크슈>는 배덕자 유다 이스카리오테를 재해석하는 데 많은 공을 쏟는다. 이 과정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별 비중이 없는, 평면적인 캐릭터로 전락한다. <마리아>의 가장 큰 포인트는, 당시 사건을 막달라 마리아의 시점으로 바라보며 마리아 내면의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는 데 있다.

<마리아>는, 비록 완전히 성공적이지는 않으나, 전통적인 성녀·창녀 콤플렉스를 깨려고 시도한다. 마리아는 끊임없이 자신을 창녀로 규정하는 (다수가 남성인) 주변인들과 싸운다. 지난 3월 24일 프레스콜 현장에서 마리아 역할에 더블캐스팅된 배우 소냐는, 이전 시즌과 이번 2016 <마리아>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마리아라는 캐릭터의 변화를 꼽았다. 생계를 위해 몸을 팔아야 했던 마리아는 성전에 소속되어 노래하고 춤추는 무희로 설정이 바뀌었다.

노예의 신분이지만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사는 그녀는 자유에 목말라 있다. 정치적 지배자인 로마와 종교적 지배자인 대제사장의 권력 다툼 사이에서,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유혹하여 그의 인기를 떨어뜨리라는 명령을 받는다. 자유라는 대가에 마음이 빼앗긴 그는 예수를 타락하게 하고자 하지만, 여의치 않다. 오히려 희생양으로 몰려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예수는 "너희 중 죄 없는 자만이 그를 돌로 치라"며 마리아의 목숨을 구해준다. 그리고 그녀의 극적인 변화가 시작된다.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 프레스콜 지난 3월 24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열린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의 프레스콜 현장 사진.

▲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지나 예수는 마리아를 향해, 그녀가 어떤 사람이라고 명명하거나 규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음모에 빠트리려고 했던 인물에게 구원받은 후, 마리아는 왜 삶의 태도를 바꾸게 됐을까. 전통과 관습을 배제하고,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만의 길을 가고자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태도가 마리아에게 옮겨진 건 아닐까. ⓒ 곽우신




"이젠 쇠사슬에 묶인 채 살겠지. 여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죽음이 내 앞에 있어 선택해야 해.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나, 다시 한 번 생각 해. 여기를 벗어나 날 수 있을까? 죽음이 눈앞에 있어 선택은 하나.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나, 맞서겠어 저들과. 저들의 강요에서 벗어나, 사슬에서 벗어나, 물러나지 않겠어, 난!" -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 1막 No.19 '사슬에서 벗어나' 중에서

1막이 끝나면서 마리아는 자신을 억압하고 규정하는 사슬로부터의 해방을 선언한다. 그녀의 몸은 성전의 노예로 묶여있을지 모르지만, 그녀의 마음은 아무도 묶을 수 없다. 마리아를 규정하는 건 마리아 자신일 뿐이다.

누가 나를 규정하는가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 프레스콜 지난 3월 24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열린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의 프레스콜 현장 사진.

▲ 마리아 식대로 성전 노예 신분인 마리아는, 로마에서 이스라엘에 파견 나온 안티바스 장군을 환영하는 무대에 무희로 첫 등장한다. 그녀는 이미 많은 부를 거머쥐었으며, 제사장의 지시에 따라 정치적 도구로 활용된다. 기능적으로만 움직이던 그녀의 캐릭터는 예수를 만나 극적으로 변화한다. 진짜 '마리아 식대로'는 그때부터이다. ⓒ 곽우신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 프레스콜 지난 3월 24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열린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의 프레스콜 현장 사진.

▲ 예수를 사랑하는 막달라 마리아 1막과는 달리 하얀 옷을 입고 등장하는 마리아. 창녀에서 성녀로 바뀐 듯한 이미지이지만, 극 중에서 그녀를 제대로 인정해주는 건 예수밖에 없다. 그녀는 남자들에게 제대로 대접받기 위해 옷을 바꾼 게 아니다. 그저 삶의 태도를 바꿨을 뿐이다. ⓒ 곽우신


1막의 마리아가 붉은 혹은 검은 옷을 입고 등장하는 데 반해 2막의 마리아는 흰 옷을 입고 등장한다. 언뜻 보면 창녀 취급을 받던 마리아가 예수를 만나 회개하고 성녀로 전환되는, 전통적인 막달라 마리아 해석을 그대로 따라가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1막의 마리아가 흔히 오해받는 '창녀'가 아니었듯, 2막의 마리아 역시 '성녀'가 아니다. 마리아의 변화를 이해하고 안아주는 건 예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변화한 그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똑같이 욕하고 침 뱉는다. 로마의 장군도, 성전의 제사장도, 경비대장도 심지어 예수의 열두제자들도. 마리아는 자신을 욕하는 사람들에게 소리친다. 자신을 노예와 창녀로 규정하는 건 당신들일뿐이라고. 그녀 자신은 그런 틀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스스로 정의내리기 시작한다.



"이전에 모습으로 난 살 수 없어요. 날 잡고 있는 것 아무것도 없어요. 당신 앞에선 그저 길 잃은 양일뿐, 몸 열어서 웃음 파는 그런 여자 아니죠. 더 이상 숨길 것도 없고, 더 이상 꾸밀 것도 없고, 이 모습 이대로 난 마리아죠." -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 2막 No.23 '나의 남자' 중에서

누군가 다른 누군가를 규정할 때, 그 프레임 안에서 칭찬을 듣는 쪽으로 움직이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리아는 창녀에서 벗어나 성녀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신, 마리아가 되고자 했다. 나를 어떤 사람으로 규정할 수 있는 건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나 자신의 잣대뿐이다.

가만히 있는 나를 멋대로 만든 잣대 속에 우겨넣는 꼰대가 차고 넘치는 세상이다. 20대는 개새끼고, 여자는 김치녀 아니면 개념녀란다. 극중에서 마리아가 굴레를 벗고 전진할 때 우리가 희열을 느끼는 건, 아마도 그런 세상에서 우리도 그 프레임을 깨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 프레스콜 지난 3월 24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열린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의 프레스콜 현장 사진.

▲ 두 사독 지난 3월 24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열린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의 프레스콜 현장. 사독 역할의 배우 서승원과 김경수가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이번에 새로이 추가된 사독이라는 캐릭터는 조금 더 보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단 등장하는 비중과 대사가 적어서 그의 전사와 성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는 왜 1막에서 기득권의 편을 들고, 왜 흔들렸으며, 2막에서는 왜 더 맹렬히 예수를 탄압하는가? 더 다듬어야 제 매력이 발할 수 있는 캐릭터이다. ⓒ 곽우신


뮤지컬 <마리아>는 몇 가지 큰 단점들이 있다. 예컨대 몇몇 넘버에서 지나치게 직설적인 가사가 극의 몰입을 방해한다든가, 사독 캐릭터의 부족한 설명 등을 꼽을 수 있다. 사건 위주의 서사보다는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며 극을 묘사하는 HJ컬쳐 특유의 장점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은 점도 아쉽다.

또한 프레스콜 현장에서 서승원 배우가 말했던 것처럼, 이 작품에는 분명 종교색이 있다. 인간의 아들이자 신의 아들이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고뇌, 그가 건설하고자 했던 세계관이 들어있다. 하지만 작품 창작을 함께 한 제작자와 배우들이 여러 번 말하듯이, 이 작품은 그저 종교적인 메시지를 동어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성경의 구절을 무대에 재현하는 대신,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공감하고 울림을 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뮤지컬 <마리아>가 그리 멀지 않은 시점에 조금 더 완성형이 되어 돌아오기를 바란다. 나를 오롯이 나만의 방식으로 규정하는 세상은 아직 요원해보이니까.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 포스터 지난 3월 22일 개막하여 17일 종연한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의 포스터. 국내 창작뮤지컬계 스테디셀러였다가 공중에 뜬 이 작품을 HJ컬쳐가 의욕적으로 가져왔다. '올 뉴! 2016 메이크업'이라는 설명에 맞게 여러가지 변화의 시도를 보여줬다. 다소 부족한 부분들이 눈에 밟혔지만, 다음 공연을 기대하게 만드는 매력포인트가 있다. <마리아 마리아>는 아직 진화 중이다.

▲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 포스터 지난 3월 22일 개막하여 17일 종연한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의 포스터. 국내 창작뮤지컬계 스테디셀러였다가 공중에 뜬 이 작품을 HJ컬쳐가 의욕적으로 가져왔다. '올 뉴! 2016 메이크업'이라는 설명에 맞게 여러가지 변화의 시도를 보여줬다. 다소 부족한 부분들이 눈에 밟혔지만, 다음 공연을 기대하게 만드는 매력포인트가 있다. <마리아 마리아>는 아직 진화 중이다. ⓒ HJ컬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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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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