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한 중국인 청년이 인천공항에 등장하자 그를 보러온 한국인들로 출국장이 일시 마비된 일이 있었다. 한국 나이로 올해 23세인 그 청년의 이름은 쉬웨이저우(许魏洲). 최근 중국 현지에서 인기를 모은 웹드라마 <상은>(上癮)에서 주인공을 맡은 배우다.

<신화망>(新華网) 등 중국 언론은 "쉬웨이저우를 배웅 나온 한국인들로 통로가 막혀 결국 VIP통로를 이용해 비행기에 올랐다"며 한국 반응을 전했다. 웹드라마 한 편으로 이제 막 중화권에서 이름을 알린 청년이 한국에서 이같은 환영세례를 받는 모습이 중국 언론에 생경한 모습으로 비춰진 것이다. 

그의 출연작 <상은>은 총 18편의 시리즈물로 1회당 약 20분 분량으로 만들어진 소규모 작품이다. 소재는 소수 마니아층에게나 어필할 만한 남자 고등학생의 '동성애'. 드라마 규모나 소재 모두 소위 '마이너'지만 올 2월부터 중국 동영상사이트 아이치이(爱奇艺)와 QQ비디오(v.qq.com)에서 인기를 모으더니 그 열기가 바다를 건너오는 데 불과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중국 정부는 이 작품의 소재가 건전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후반 3회분(16~18회) 방영을 금지하는 등 규제에 나섰지만 되레 작품의 이름을 더 널리 알려 도움을 주는 꼴이 되기도 했다.

국내 시청자 관심 증폭, 중드 촬영지 관광도

 최근 한국 네티즌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중국 웹드라마 <상은>. 오른쪽이 지난달 인천공항에서 한국 시청자로부터 환영 세례를 받은 주연 배우 쉬웨이저우다.

최근 한국 네티즌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중국 웹드라마 <상은>. 오른쪽이 지난달 인천공항에서 한국 시청자로부터 환영 세례를 받은 주연 배우 쉬웨이저우다. ⓒ 북경봉망문화전파유한공사


한국 시청자들은 동영상사이트 유투브에 <상은> 한글자막 버전을 올리며 적극적인 시청 열기를 보였다. 현재 편당 조회 수는 약 6만 건에 달한다. 중국드라마, 일명 '중드'열기는 비단 인터넷 환경에 그치지 않는다. 케이블TV와 IPTV 등에서 중화권 드라마의 시청률이 오르면서 자연스레 편성 비율도 늘고 있다.

최근 대표작은 드라마 <랑야방 : 권력의 기록>(아래 <랑야방>)이다. 중국 베이징위성TV(BTV)가 방영한 것을 CJ E&M 계열 중화TV가 들여와 지난해 9월부터 방영했는데 0.6%대 시청률을 돌파했다. 채널 개국 이후 역대 최고 시청률이다.

과거 <판관 포청천>(1994) <황제의 딸>(1998) 등 일부 작품이 국내에서 크게 히트한 적은 있었지만 이후 큰 사랑을 받은 중국 드라마는 찾기 어려웠다. 이런 가운데 최근 시청률 효자상품으로 떠오른 <랑야방>은 그동안 명맥이 끊긴 '중드 열풍'에 다시 숨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랑야방>의 이같은 인기는 한국 시청자를 아예 중국 현지로 끌어당기기에 이르렀다. 중국 유력 일간지 북경청년보(北京靑年報)는 드라마 랑야방을 본 한국인들이 지난 2월 중국 저장성 샹산(象山)에 있는 촬영장을 찾았다고 전했다.

국내 지상파 방송사도 '중드' 주목... 리메이크 제작 불붙어

 중화TV가 방영한 중국 드라마 <랑야방 : 권력의 기록> 한 장면.

중화TV가 방영한 중국 드라마 <랑야방 : 권력의 기록> 한 장면. ⓒ 중화TV


제2 '중드 붐'의 서막이 오르면서 방송가에서는 중국 방송콘텐츠를 전문으로 한 TV 채널이 추가 개국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국내 주요 방송사와 연예제작사들은 중국 드라마의 달라진 위상을 일찌감치 주목하고 관련 콘텐츠 제작에 나섰다. 시작은 중국 드라마를 리메이크하는 방식이다.

SBS는 중국 후난위성TV가 2011년 방영한 인기 드라마 <보보경심>(步步惊心)을 리메이크 한 <보보경심:려>를 올 하반기 방영할 예정이다. 이준기, 아이유, 남주혁, 강하늘 등 국내 스타 배우가 대거 출연을 확정했다. KBS는 2004년 중국 현지에서 큰 인기를 모은 드라마 <중국식이혼>(中国式离婚)을 리메이크하기로 했다. 특히 <보보경심:려>는 <태양의후예>처럼 전체 분량을 사전 제작한 뒤 중국과 한국에서 동시 방영하는 것도 계획하고 있다.

중국 수억 명 시청자가 동영상사이트 아이치이를 통해 <태양의 후예>를 시청한 것처럼 한국 네티즌도 유튜브는 물론 한국과 중국의 포털, 동영상사이트를 통해 중국 현지 드라마를 시청하는 모습이 늘고 있다.

실제로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중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기 위해 중국어 공부에 나선 학습자가 늘어난 모습. 대형 어학원들은 중국 드라마를 활용한 중국어 교육콘텐츠 개발을 강화하는 추세다. 

촌스러움 벗고 세련미 입은 '중드', 시청자 기호 충족

 SBS가 리메이크 제작을 예고한 중국 최고 인기 드라마 <보보경심>.

SBS가 리메이크 제작을 예고한 중국 최고 인기 드라마 <보보경심>(步步?心) ⓒ 후난위성TV


그동안 중화권 드라마가 베트남,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에서 영향력을 넓히면서도 한국 시장에 제대로 진입하지 못한 것은 한국 시청자의 까다로운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탓이 컸다. 중국 드라마 대부분이 당-송 시대나 청나라 말기를 배경으로 왕실 암투와 무관의 영웅담을 그렸고, 현대물은 한국의 1970·1980년대를 보는 듯 촌스럽다는 인상이 강해 한국 시청자의 입맛을 맞추지 못했던 것.

하지만 최근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힘입어 드라마 역시 도시적이고 세려된 분위기를 담고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시청자를 공략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온라인에서 드라마를 적극 소비하는 바링허우(八零後․1980년대 출생)나 주링허우(九零後·1990년대 출생) 세대를 겨냥한 작품을 대거 생산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과 일본 시청자의 기호를 충족시키시기에 무리가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는 해석이다.

여기에 중국 드라마 제작산업 전반이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몸집을 불리면서 <랑야방>처럼 대규모 스케일로 무장한 작품도 쏟아지고 있다. 웹드라마 제작시장도 덩치를 키워 한해 제작 편수가 2013년 200여 편에서 지난해 805편으로 4배나 성장했다. 한중콘텐츠연구소에 따르면 최근 동영상사이트 아이치이와 유쿠투도우(优酷土豆) 등이 웹드라마 작가와 감독 발굴을 위해 기금을 조성하기도 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중국 웹드라마는 그동안 전통 매체가 다루지 못한 스릴러나 SF, 동성애 등으로 장르와 소재를 넓히면서 한국의 10~30대 시청자까지 끌어당기고 있다. 특히 <STB초급교사>(STB超级教师) <총총나년>(匆匆那年) 등 청소년들의 우정과 사랑, 학교 폭력 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국내 시청자들의 관심을 얻는 데 성공했다.

한류(韓流) 역습? '동반성장'으로 세계시장 공략 기회

 중국 동영상사이트 소후TV(sohu)에서 방영돼 한국 네티즌의 관심을 모은 웹드라마 <총총나년>.

중국 동영상사이트 소후TV(sohu)에서 방영돼 한국 네티즌의 관심을 모은 웹드라마 <총총나년>. ⓒ 소후TV


물론 중국 드라마 시장의 이 같은 성장세는 향후 한류(韓流)에 대한 '역습'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드라마 한류가 <별에선 온 그대>와 <태양의 후예>로 연속 홈런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중국 시장의 반격을 준비해야 하는 것은 썩 반갑지 않은 일일 것이다.

다만 중국과 한국의 경제·문화 교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일방적인 문화콘텐츠 수출을 욕심부릴 수는 없는 일. 오히려 한국과 중국이 서로 드라마를 활발히 유통하면서 영상콘텐츠 제작산업을 동반 성장시키는 것이 전략적 돌파구이지 않을까. 동북아 내에서의 경쟁보다는 세계시장 공략에 나서는 것이 한국과 중국 모두의 공통의 과제일 것이기 때문이다.

한때 직장인이나 대학생들이 모여 앉으면 <프렌즈> <프리즌 브레이크> <섹스 앤 더 시티>와 같은  일명 '미드'(미국 드라마)를 단골 화젯거리로 올리던 시기가 있었다. 이제 지난밤 중국 드라마의 줄거리가 티타임 화젯거리로 오를 날도 곧 오지 않을까. 호기롭게 용트림을 시작한 중국 드라마 시장에 일찌감치 교감 신호를 보내보는 건 어떨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강훈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 <차이나스타리포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중국드라마 중드 중국웹드라마 차이나스타리포트 이강훈기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