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에티오피아의 하다르에서는 스물이 갓 넘은 도널드 요한슨의 탐사대가 2년째 발굴을 진행 중이었다. 이곳은 진화학자인 찰스 다윈과 동물학자인 토머스 헉슬리가 최초 인류의 거주지로 예언한 곳이었다. 그해 11월, 그들은 드디어 최초의 직립 인류로 알려졌던 유인원의 화석을 찾아내게 된다. 때마침 라디오에선 비틀즈의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블루다이아몬드'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발굴팀은 그녀에게 '루시'라는 이름을 붙인다.

영화 <루시>의 상상력, 알파고라면 말 된다

 영화 <루시>에서 루시(스칼렛 요한슨 분)는 뇌의 활용도를 100%까지 넓혀간다.

영화 <루시>에서 루시(스칼렛 요한슨 분)는 뇌의 활용도를 100%까지 넓혀간다. ⓒ 유니버설 픽처스


뤽 베송 감독은 영화 <루시>(2014)에서 인류의 또 다른 진화를 언급하며 스칼렛 요한슨에게 '루시'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영화에서 루시는 범죄 집단에 납치되어 뇌의 기능을 극대화하는 약물을 운반하다가, 뜻밖의 사고로 약물에 과다 노출된다. 약물은 그녀의 몸 안에서 뇌의 활용도를 점점 확대하고, 그녀는 점차 새로운 인류로의 진화 과정을 순식간에 통과한다.

통상적으로 알려진 것에 따르면, 인류는 평균적으로 10% 정도의 뇌를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그의 뇌를 15%까지밖에 활용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약물에 의해 활성화된 그녀의 뇌는 활용도를 점차 높여가면서, 신체 기능을 완벽하게 통제 (24%)하게 되고, 모든 상황을 제어(40%) 하게 되며, 타인의 행동을 컨트롤(62%) 하게 될 뿐 아니라, 결국은 인류의 기원에 대한 비밀을 깨닫게 된다(100%).

지난 한 주간 가장 큰 이슈는 '알파고'라는 이름의 인공지능 시스템과 바둑 챔피언인 이세돌 9단의 대결이었다. 총 다섯 번의 대국 중, 세 번을 이기고 한 번을 진 알파고의 기세에 온 인류는 기대와 우려를 같이 내비치며 긴장하고 있다.

알파고라고 이름 붙여진 인공지능 시스템은 인간의 의사결정 과정을 모사한 탐색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최적의 위치를 선정할 뿐만 아니라,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하여 지속적인 학습을 수행함으로써 선정에서의 오류를 최소화한다. 이번 이세돌 9단과의 대결을 통해서도 확인된 바와 같이, 알파고에겐 실수도 없고 흔들림도 없었다. 그저 기존의 데이터베이스, 혹은 그 전의 대국을 통한 학습 결과에 따라 최적의 위치를 선정할 뿐이다.

1988년 IBM은 세상에 '딥 소트 (Deep Thought)'라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선보였다. 딥 소트는 당시 체스의 고수였던 벤트 라슨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로부터 10년 후, '딥 블루 (Deep Blue)'라는 개선된 인공지능이 당시 세계 체스 챔피언이었던 카스파로프에게 승리를 했음에도, 체스에 비해 훨씬 더 복잡한 게임인 바둑에 대한 도전은 요원한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정확히 28년 후, 구글의 알파고는 세계 챔피언과의 대국에서 세 번의 승리를 거두었다. 아직 인간의 '감정'은 따라할 수 없다며 위안하고는 있지만, 초기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인 '신경망 회로 (Neural Network)'를 전공한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어쩌면 10년이내'면 감정까지 따라하지 않을까, 하는 잠정적인 결론을 (우리 마음대로) 내렸다.

영화 <그녀>, 인간 감정 흉내내는 인공지능 그려

 영화 <그녀> 역시 인공지능에 대한 소재를 다룬 영화다.

영화 <그녀> 역시 인공지능에 대한 소재를 다룬 영화다. ⓒ 위너브라더스


인간은 루시처럼 불법적 약물을 활용하는 위험성을 대신해, 외부에 인간의 뇌를 모사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용량의 지능을 보유하게 되었다. 인간이 '외부의 두뇌'로 개발해 놓은 인공지능 시스템은 스칼렛 요한슨이 목소리로만 출연했던 <그녀>(HER, 2013)에서의 운영체계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에서 인공지능 운영체계인 '그녀'는 인간의 감정을 궁금해하고 흉내냈으며, 주인공은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루시가 뇌의 활용도를 확장할수록 통제 불가능한 초인적 능력을 지닌 '또 다른 인류'로 진화했는데, 인공지능이 '외부의 두뇌'로써 인간을 통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자, 이제 우리에겐 '선택'이 남았다. 인간보다 똑똑한 인공지능은 인간이 수행하고 있는 많은 '노동'의 영역을 대체하게 될 것이 거의 분명하다. 지금까지는 '기계가 수행하는 작업에 대한 오류'를 우려하며 제한적인 적용을 허용해 왔으나, 이번의 승리는 '지능화된 시스템'이 인간의 노동보다 우월할 수 있다는 증거로 활용되기에 충분하다.

또한, 네트워크의 급속한 보급으로 확보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는 인공지능을 점점 더 인간답게 변모시킬 것이다. 결국, 인간이 생활의 편리함을 위해 네트워크에서 검색하는 정보들은 기계가 '똑똑해 지는 것'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자원'일 뿐이다. 흡사, <매트릭스>(1999)에서 보았던 고치에 갇힌 채 에너지를 생산하던 인간의 모습과 비슷하다.

이렇게 된다면, 매우 빠른 시일 내에 인공지능이 탑재된 '지능형' 로봇은 대량생산이 필요한 수많은 제조 공장에서의 노동력을 대체할 것이고, 서비스 대상의 취향까지 파악함으로써 서비스 산업의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대체하게 될 것이다.

이는 인류의 선택에 따라 너무도 명확하게 예상되는 미래이다.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면, 현대자동차에는 최상위 경영자만 인간으로 남아 있고, 제조·영업·판매의 모든 영역이 로봇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인간의 노동력 없이도 부가가치가 창출된다면 그것을 어떻게 분배할 것이며, 노동력이 필요 없는 세상에서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알파고의 바둑실력은 무엇을 의미하나

<세기의 대국> 이세돌 9단과 알고리즘 이세돌 9단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구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5번기 제3국 맞대결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캐논 1DX 2회 다중촬영.

▲ <세기의 대국> 이세돌 9단과 알고리즘 이세돌 9단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구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5번기 제3국 맞대결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이날 이세돌은 알파고에 패배했다. ⓒ 연합뉴스


알파고의 승리를 예상하지 못해 점심 내기에서 졌다.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차 한잔 하는 동안 일행 중 한 명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이제는 인공지능의 시대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미 그런 시대가 와 버렸다. 거의 모든 일자리는 인공지능이 대체하게 될 것이다…. SF영화에서 보지 않았나, 두뇌에 통신장치를 끼운 채 살면서 정보가 전달될 것이며 교육도 필요 없게 될 것이다."

선배의 얘기에 토를 다는 것은 자제하라고 주의를 받는 편이라 조용히 구석에 앉아 있었는데, 슬슬 입이 근질거렸다. 최대한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웃음 가면'을 쓴 채 질문을 했다.

"그렇게 살고 싶으세요?"
"아니, 그렇게 바뀌는 중이라고 얘기하는 거잖아."
"우리가 협의해서 선택해야죠. 무엇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허용하지 않을지…. 어떤 규제를 만들어야 할지."
"그런거야 지도자가 하는거고. 우리는 정하는 대로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

더는 참지 못하고 폭발해버렸다.

"지도자요? 투표를 통해 선출된 대표자가 지도자인가요, 회사의 경영자라면 지도자인가요? 우리가 뽑은 사람인데, 그 사람의 결정에 무조건 따라야 하나요? 나는 그렇게 (머리에 칩을 밖은 채) 살고 싶지 않다면, 그것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 얘기를 시작해야죠, 지금부터라도."

거기까지 얘기하고 있자니 고참이 슬며시 자리를 뜬다. 어쩌면, 지금 알파고라는 최첨단 인공지능 시스템의 '장쾌한' 승리가 겁이 나는 이유는,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저런 식의 주장 때문이다. 인간보다 똑똑한 지능이 '고비용·저효율인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것'이 효율적인 선택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텐데, 이러한 주장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인간과 기계의 능력치를 직접적으로 대결하는 세상은 불길하다. 이는 기존의 수많은 '디스토피아'를 묘사한 컨텐츠가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요즘 친구들과 농담처럼 "구글이 <터미네이터>(1984)의 스카이넷"이 될 것이라고 얘기한다.) 우리 사회의 준비가 너무 부족한 것은 아닌가 걱정되어 두렵다.

늦었을 수도 있지만, 인공지능이 탑재된 '지능형 로봇'의 적용에 대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자율적인 학습 기능을 허용하면서도, 인간의 통제가 가능한 범위인가에 대해 항상 의문을 가져야 하며, (쉽지는 않겠지만)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운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규제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 사회 전체가 같이 논의할 필요가 있으며, 불법적인 활용에 대해서는 제한할 수 있는 법적인 제도를 마련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사회적인 협의를 통해 전략적으로 결정될 이슈들이다. '지도자'에 의해 독단적으로 결정되거나, 공동체의 '이기심'에 의해 악용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러니, 우리 이제 이 문제에 대해 얘기하자.

애석하게도 루시는 뇌의 활용도를 100%로 확장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상실했고, 몸을 잃어버렸으며, 결국 <그녀>에서 나올 법한 인공지능 운영체제로써 또 다른 차원으로 사라졌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의 여주인공이었던 스칼렛 요한슨은 어디론가 사라진 후, 외계의 존재가 되어 인간세상으로 돌아온다-<언더 더 스킨>) 성큼 다가와버린 인공지능의 세상, 우리는 분명 역사적인 사건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두려움만으로 피해다닐 수는 없다. 힘내라, 인간! 힘내세요, 이세돌 9단!

오늘날의 영화읽기 인공지능의 미래 루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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