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라는 TV쇼가 인기 있던 적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일반 가요프로그램과는 무엇이 달랐기에 이렇게 열광적 인기를 얻었을까? 아마도 본무대의 전후를 보여주는 것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보통 가요프로그램에서는 볼 수 없는 선곡, 편곡 그리고 무대를 준비하는 가수의 심정 등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렇게 앞뒤 사정을 알고 보게 된 무대는 확실히 감정몰입 측면에서 달랐다.

영화 <동주>가 주는 감동도 이와 비슷한 측면이 있지 않을까. 우리는 윤동주라는 시인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안다. 그리고 그의 시도 너무나 잘 안다. 그러나 교과서에서 밑줄 치며 배운 그 시를 온전히 느낀다고는 할 수 없었다. 동주의 장면들, 특히나 그의 시가 내레이션으로 깔리는 장면들은 아름답고 울림을 준다. 이는 영화가 그 시가 나온 상황에 대한 이해를 관객에게 안겨줬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는 가수다>에서 무대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알고 무대를 보는 상황처럼 말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러 가기 전, 그의 시를 꼭 읽고 가기를 권하고 싶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접하는 그의 시도 분명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동주와 몽규, 두 청춘의 슬픈 초상

 영화 <동주>는 윤동주, 송몽규의 청춘을 그렸다.

영화 <동주>는 윤동주, 송몽규의 청춘을 그렸다. ⓒ 메가박스㈜플러스엠


누군가 내게 <동주>가 어떤 영화냐고 묻는다면 '청춘영화'라고 말해주고 싶다. 윤동주 그 역시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던 사람이었다. 입시에 좌절했고, '엄친아' 송몽규와 늘 비교당했다. 시대적 환경 덕분에 연애와 꿈도 포기했다. '헬조선'이 싫어 '탈조선'했다. 자신이 선택한적 없는 모든 것들에 짓눌려 답답해하던 청춘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 속에서 혁명가가 아닌 시인을 꿈꾸는 자신을 너무나 부끄러워하던 여린 사람이었다.

이 영화의 리뷰를 써야겠다 마음먹고 영화를 봤다. 그러나 나는 영화가 주는 아름다운 화면과 감정에 몰입되어 이 영화를 분석적으로 볼 수 없었다. 흑백영화가 주는 담백함이니 이런 말을 굳이 들먹이고 싶지는 않다. 영화가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는 창'이라면, 나는 <동주>를 통해 시대는 다르지만 같은 고민을 안고 살던 청년을 보았다. 당시의 암울함이 지금의 그것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물론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을 나라를 잃은 참혹함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들 역시 시대의 무게에 짓눌려 각자의 자리에서 허덕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감정도 예술도 사치라 생각하며 살고 있다. 시가 쉽게 쓰이는 것이 부끄럽다던 윤동주처럼 말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송몽규는 적극적으로 항일운동에 참여한 혁명가였다. 윤동주는 송몽규에 비해 적극적이지 못한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송몽규는 적극적으로 항일운동에 참여한 혁명가였다. 윤동주는 송몽규에 비해 적극적이지 못한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 메가박스㈜플러스엠


나도 내가 늘 부끄러웠다. 부모 인생의 짐짝 같은 나. 영화 표 얻겠다고 헌혈하는 나. 대기업 다니는 친구를 놀리면서도 부러워했던 나. 후임병에게 폭행과 욕설을 했던 나. 부족한 환경이라며 불평하던 나. 계약직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나. 면접장에서 내가 아닌 척하던 나. 쥐뿔도 없으면서 있는 척했던 나. 늘 웃던 사람을 울게 만들었던 나. 아버지 환갑에 50만 원밖에 못 주던 나. 진심 한 숟가락도 없는 자기소개서를 썼던 나. 등록금 인상을 함께 막자던 선배의 손을 뿌리쳤던 나. 주제 파악 못하고 후배에게 조언하던 나. 현실을 핑계로 내 감정을 숨겨온 나. 상처받기 싫어 먼저 사람들을 밀어냈던 나. 그리고 이런 나를 너무 부끄러워했던 나. 이런 모든 내 모습이 부끄러워 언제부턴가 숨기만 했다.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운 청춘이 있다면 이 영화를 보고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이 시대와 환경에 꽤 잘 적응하고 있고 잘 버티고 있다고. 그리고 "부끄러운 것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부끄러워할 줄 아는 괜찮은 인간이라고. 이는 싸구려 감상주의가 아니다. 영화 속 윤동주의 대사처럼 세상을 바꾸는 첫걸음일 수 있다. "예술을 통해 일어난 개개인의 변화가 모여" 거대한 물결을 이루는 것 말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살고 있는가? 혹 부끄럽게 살아야만 한다면, 부끄러운 줄은 알고 있는가? 일제치하를 살던 청년 윤동주가 201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동주 윤동주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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