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충격적인 사건이 알려져 큰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가톨릭 보스턴 교구 소속 여러 사제가 수십 년간 아동들을 성추행해왔고, 가톨릭 교회가 이를 묵인해왔다는 사실을 보도한 곳은 미국 유력 일간지 중 하나인 <보스턴 글로브> 내에서도 탐사보도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스포트라이트' 팀.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이 놀라운 진실을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해 전투적으로 취재에 매달렸던 스포트라이트 팀의 당시 일화를 화면으로 재구성한다.

간결한 시작, 진술을 통해 담담히 접근하다

 '스포트라이트' 팀은 가톨릭 교회와 맞서기 시작한다.

'스포트라이트' 팀은 가톨릭 교회와 맞서기 시작한다. ⓒ (주)더쿱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시작은 비교적 간결하다. 새로 부임한 편집국장 마티 배런(리브 슈라이버 분)의 지시 때문에 보스턴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취재하는 '스포트라이트'팀이 구성되고, 소속 기자들은 기사 작성에 필요한 자료를 찾기 위해 사건에 관련된 피해자들과 변호사들을 차례대로 만난다.

하지만 당시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들은 물론, 피해자들까지 쉽게 입을 열지 않는다. 취재에 응한다고 한들, 자신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들이 맞서 싸워야 하는 이들은 미국 내에서도 엄청난 힘을 가진 가톨릭 교회다. 수많은 신도의 '믿음'을 기반으로 각계각층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철옹성 종교를 정면으로 비판한다는 것은 미국 유력 일간지도 쉽게 나설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보스턴 글로브> '스포트라이트'는 수많은 압박을 뒤로하고, 보도를 결정했으며, 그 결과 교회 내부에서 쉬쉬했던 비밀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질 수 있었다.

언론인으로서 투철한 사명감이 있는 기자들의 노고 덕분에 꽁꽁 감쳐져 있던 스캔들이 세간에 드러나는 과정을 다룬 영화는 많았다. 국내에서도 <모비딕>(2011)이 있었고, <제보자>(2014)도 있었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는 기존의 탐사보도를 다룬 영화들과 다르게 느껴지는 극적 전략을 취한다.

우선 <스포트라이트>는 성범죄에 연루된 신부들을 다루면서도, 오직 기자들의 취재 과정에만 집중한다. 관객들에게 신부들이 저지른 범죄의 추악성을 실감 나게 전달하기 위해 회상 신을 통해 신부가 아동을 성추행하는 장면이 나올 법도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이를 철저히 배제한다. 대신 극 중 피해자들의 육성 진술을 통해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한다.

그런데도 관객들은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고통스러워하는 피해자들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건의 심각성을 몸소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수십 년 이상 베일에 싸여있던 진실을 수면 위로 끄집어 올리기 위해 갖은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언론의 본질이다.

취재 과정에서 어느 정도 사건의 윤곽이 드러나는 와중에도 스포트라이트 팀은 기사화하는 데 있어서 신중을 기한다. 그들이 싸워야 하는 상대가 워낙 센 탓도 있지만 <보스턴글로브>는 독자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을 자극적인 이야기가 아닌, 사제들의 아동 성범죄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가톨릭 교회 전체에 화살을 돌린다. 그래서 해당 스포트라이트 팀의 보도는 몇몇 신부들의 개인적 일탈이 아닌, 가톨릭 교회 전체에 경종을 울리는 엄청난 사건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우리는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기자는 무엇을 위해 일해야 하는가.

기자는 무엇을 위해 일해야 하는가. ⓒ (주)더쿱


스포트라이트 팀의 취재를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미 지난 일이라고. 그러니 더는 잡음을 만들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가 목격한 사건들은 지난날 사제들이 벌인 잠깐의 일탈이 아닌, 지금까지도 지속하고 있는 문제이고, 그 때문에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피해자들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스포트라이트 팀이 사건 취재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 중에는, 더는 이와 같은 범죄가 지속하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는 언론인의 사명감에 앞서, 한 가족의 아버지로서,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민주사회의 일원으로서 이들은 눈앞에 보이는 부당한 현실과 용감하게 맞서 싸운다.

영화 <스포트라이트>가 주목하는 것은 사제들의 아동 성범죄 기사를 보도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조사하는 기자들의 모습이다. 취재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기자들의 동선을 따라다니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취재에 임하는 기자들의 현 상황에 집중한다. 그들이 가톨릭 교회를 둘러싼 비리를 취재하기 전 혹은 스포트라이트 팀에 들어오기 전 있었던 과거 이력은 특별히 언급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지금 그들이 기자로서 무엇을 어떻게 취재하고 있고, 이를 공론화시키기 위해 벌이는 노력이다.

2001년 당시 시점에서 수십 년 전 있었던 사건들을 남아있는 자료만 보고 역추적 해야 했던 이들의 취재는 사건 보도를 막으려는 외부의 움직임을 제외하더라도 수많은 난관에 부딪힌다. 하지만 이들은 우직하게 취재에 임했고, 보도를 위해 외압에도 굴하지 않았던 이들의 노력은 사건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소정의 결실을 거둔다. 하지만 이들은 기자로서 엄청난 특종을 이뤘다는 성공에 고무되지 않고, 오히려 조금이라도 빨리 이 사건을 보도하지 않았던 자신들의 무심함을 질책한다.

"우린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과거 부당한 사건에 의해 희생당한 이들을 위해, 그리고 더 이상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려고 운 좋게 살아남은 자로서의 책무를 다하고자 하는 사람들. 자극적인 시각효과에 사로잡히지 않아도, 되풀이되면 안 되는 범죄의 심각성과 제 역할을 다하는 언론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사회고발영화의 모범으로 꼽힐 만하다.

영화 <스포트라이트> 포스터  기자의 삶을 조명한 여러 영화 중에서도, 손에 꼽힐만한 수작이다.

▲ 영화 <스포트라이트> 포스터 기자의 삶을 조명한 여러 영화 중에서도, 손에 꼽힐만한 수작이다. ⓒ (주)더쿱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진경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neodol.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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