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객 섭은낭 한 때는 정혼자였으나 서로에게 칼을 겨누게 된 전계안(장첸 분)과 섭은낭(서기 분).

▲ 자객 섭은낭 한 때는 정혼자였으나 서로에게 칼을 겨누게 된 전계안(장첸 분)과 섭은낭(서기 분). ⓒ 영화사 진진


자객이란 몰래 사람을 죽이는 자를 일컫는 말이다. 몰래 죽이려 한다는 건 대놓고 죽이기 어려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인물은 호위가 치밀하게 마련이니 암살 후 자객이 목숨을 보전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예양, 형가, 고점리 등 역사에 이름을 남긴 자객도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자객 섭은낭>의 주인공 섭은낭도 자객이다. 중국 대중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여성 자객들과 마찬가지로 어린 나이에 무예가 뛰어난 도사의 문하에 들어 검술 등 무예를 익혔다. 자객으로 활약할 나이가 되자 스승의 명에 따라 악명 높은 권력자를 암살하기도 했지만 여린 마음 탓에 어린아이를 둔 권력자를 베지 않고 돌아와서 스승에게 명을 따르지 못했음을 고하기도 한다.

좀처럼 자객의 냉엄한 마음을 갖지 못하는 은낭에게 스승은 이루기 어려운 명 하나를 내린다. 고향인 위박으로 가 과거 정혼자였던 절도사 전계안을 암살하라는 것이다. 영화는 은낭이 쉽지 않은 임무를 띠고 수년 만에 고향 땅에 돌아가 겪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로부터 감독 허우 샤오시엔은 대표작인 <비정성시> 이후 꾸준히 이어져 온 특유의 주제의식, 즉 격동의 역사 가운데 끼여 망가진 개인의 삶을 자객이란 색다른 설정을 통해 조명해나가기 시작한다.

너도 나도 외로운 사람들

자객 섭은낭 마경소년 역을 맡은 츠마부키 사토시. 일본인으로선 이례적으로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작품에 캐스팅됐다.

▲ 자객 섭은낭 마경소년 역을 맡은 츠마부키 사토시. 일본인으로선 이례적으로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작품에 캐스팅됐다. ⓒ 영화사 진진


어린 나이에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타지로 보내져 자객으로 길러진 은낭에게 스승의 명령은 가혹하기만 하다. 수년 만에 만나본 부모에게, 또 한때의 정혼자에게 은낭이 어떤 존재로 남아있는지를 확인하는 건 참으로 먹먹한 일이다. 누군가는 생이별한 자식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지나간 추억으로 그녀를 기억하는데 정작 위박에는 돌아온 그녀가 머물만한 자리가 없다.

은낭이 지닌 뛰어난 무예라면 전계안의 목 정도야 쉽게 취할 것도 같지만,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암살 그 자체보단 은낭과 전계안, 그들을 둘러싼 많은 인물의 삶에 주목한다. 은낭은 좀처럼 암살을 위해 칼을 빼 들지 않는다. 전계안 역시 그녀를 적극적으로 막아서지 않는다. 그 사이 영화가 비추는 건 어린 나이에 부모의 품에서 떠나 자객으로 길러진 은낭의 사연, 홀로 남아 위박을 지켜야 하는 전계안의 부담감, 계안의 아내와 첩, 그리고 은낭의 부모가 마주한 아픔과 같은 것들이다.

이들 모두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하나같이 외롭다는 것이다. 외로움은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정서다. 각자 서 있는 위치는 다르지만, 그리하여 서로에게 칼을 겨누기도 하지만 너도나도 외로운 사람임을 드러내는 게 허우 샤오시엔의 목적이 아니었을까 생각될 만큼 영화는 외롭고 공허하다. 위박을 지키려는 자와 위박을 향해 칼을 드는 자, 위박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차지하려는 자들이 한 데 뒤엉키지만, 그 과정에서 부각되는 건 욕망보다는 외로움과 공허함이다.

자객에서 협객으로 운명을 개척하는 섭은낭

자객 섭은낭 롱숏으로 잡은 영화의 한 장면.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인물을 관조하는 듯한 롱숏과 롱테이크를 즐겨 사용한다.

▲ 자객 섭은낭 롱숏으로 잡은 영화의 한 장면.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인물을 관조하는 듯한 롱숏과 롱테이크를 즐겨 사용한다. ⓒ 영화사 진진


위박에서 은낭이 칼을 빼 드는 건 상대를 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나 다른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다. 칼을 찔러 상대를 죽이는 대신 그렇게 해야 할 이유를 찾는 은낭에게선 자객이라기보단 무사, 나아가 협객의 인상이 강하게 풍긴다. 계안과 그를 둘러싼 환경을 목격한 은낭이 마침내 스승의 명을 거부하는 건 그래서 자연스럽다. '왜 죽이지 않았느냐'는 스승의 말에 "그가 없으면 위박이 위태롭다"고 답한 은낭은 더는 자객이 될 수 없다.

모든 면에서 절제하고 있는 영화답게 결말에 대한 해석 역시 제각각일 것이다. 명에 따를 수 없다며 예를 올리고 떠나는 은낭에게 칼을 들어 공격하는 스승의 행동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드라마에 대한 이해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명에 따르지 않는 은낭의 태도에 스승이 분개한 것으로 본다면 스승이 무예가 뛰어난 은낭을 어찌하지 못하고 놓아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스승은 조정의 편에서 위박을 무너뜨리려다 제자에게 칼까지 겨눈 인물이 되고 영화에 등장하는 다른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역사에 따라 비틀린 운명을 살아가는 비운의 캐릭터가 될 것이다.

반면 은낭이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일부러 이루지 못할 임무를 맡긴 것으로 이해한다면 스승의 공격은 은낭을 다시 돌아오지 않게 하려는 결단으로 바라볼 수 있다. 스승이 처음부터 은낭이 자객이 될 수 없음을 알아차리고 그가 자신과 같은 불행한 삶을 살지 않게 하려고 위박으로 보낸 것은 아닐까?

영화엔 오래 두고 생각해봐도 어느 한 가지를 확신하게 할만한 증거가 부족하다. 드라마를 포함해 모든 것이 절제된 작품이기에 인물의 사연과 행동 역시 그저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은낭을 대하던 스승의 태도와 돌아서던 은낭의 모습에서 나는 후자가 더욱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명감독 허우 샤오시엔은 그 자신에게도 낯설었을 무협의 영역에서 기존 장르의 틀을 깨는 작품을 빚어냈다. 감독 스스로 즐겨 읽었다고 밝힌 당나라 때의 소설집 <전기(傳奇)>에 실린 짤막한 이야기를 원작으로 타의에 의해 원치 않는 삶을 살게 된 자객의 이야기를 찍어낸 것이다.

영화엔 격렬하고 속도감 넘치는 액션보다는 지루하게까지 느껴지는 롱숏·롱테이크 화면을 주로 사용하고 복잡하게 얽힌 인간사와 대비되는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집중적으로 담아내는 등 허우 샤오시엔 영화가 지닌 매력이 한껏 담겨있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 개성을 잃고 전형적인 공식을 따라가는 영화가 판을 치는 요즘, 제 색깔을 내는 작가의 작품이란 것만으로도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하겠다.

<자객 섭은낭> 포스터 감독의 스타일이 잘 묻어났다는 것만으로도, 한 번쯤 볼 가치가 있는 영화이다.

▲ <자객 섭은낭> 포스터 감독의 스타일이 잘 묻어났다는 것만으로도, 한 번쯤 볼 가치가 있는 영화이다. ⓒ 영화사 진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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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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