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이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낙지를 구매했다. 그는 낙지에 '사무엘'이란 이름을 붙였다며 애완 낙지라고 소개했다.

지난 15일, 코난이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낙지를 구매했다고 밝혔다. 그는 낙지에 '사무엘'이란 이름을 붙였다며 '애완 낙지'라고 소개하며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 @teamcoco


"낙지가 나보다 먼저 헬조선을 탈출하는구나."

지난 15일, 미국 유명 토크쇼 진행자 코난 오브라이언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코난은 방한 첫날 노량진 수산시장을 방문했고 낙지 한 마리를 구매했습니다. 자신의 SNS 계정에 익살스러운 '인증샷'을 올린 그는 "애완 낙지를 샀다, 이름을 사무엘로 붙였다"라고 적었습니다. 누리꾼들은 '수산물을 애완용으로 키우겠다'는 코난의 글에 폭소했습니다.

다음날인 16일, 급기야 사람들이 낙지를 부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코난 오브라이언이 '낙지를 데리고 출국 수속을 밟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 볶음 먹고 싶다'며 패러디를 이어가던 누리꾼의 반응이 바뀐 것도 보도 이후였습니다. '코엑스 아쿠아리움 측의 도움을 받아 출국 준비 중이다'라는 구체적인 소식까지 나오자, 마침내 사람들은 탄식했습니다.

"사무엘, 너라도 나 대신 꿈을 이뤄주렴. 헬조선을 떠나라."
"나도 낙지로 태어나서 한국을 떠났으면 좋았을걸."
"낙생역전. 낙지 팔자 상팔자네."

트위터를 비롯한 SNS에서는 '부럽다'는 누리꾼들의 글이 이어졌습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헬조선' 담론과 엮이면서 낙지 '사무엘'은 국내에서 드물게 '탈조선'을 이룰 해양 생물로 대중에게 인정받는 듯했습니다.

'낙생역전', 낙지의 행보에 사람들이 집중하기 시작했다

 와인을 마시던 중 애완낙지 '사무엘'과 사진을 찍은 코난.

와인을 마시던 중 애완낙지 '사무엘'과 사진을 찍어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업로드한 코난. ⓒ @teamcoco


코난이 와인을 마시면서 사무엘과 함께 찍은 사진이 SNS에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누리꾼은 이를 공유하며 '축하'와 '질투'가 담긴 글을 적었습니다. 상반된 반응의 밑바닥에는 대부분 '부러움'이 자리 잡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도대체 어떤 이유일까요.

<레이트 나잇 쇼>와 <투나잇 쇼> 등 미국에서 인기 프로그램 진행자로 알려진 코난 오브라이언의 '낙지 입양' 소식. 여기에 사람들이 반응한 지점은 크게 두 가지로 보입니다. 외롭게 차가운 시장 바닥을 떠돌던 '해양 생물의 삶'에 감정을 이입하고, 낙지가 답답한 '현실 탈출'에 성공할 것처럼 보이자 이에 대리만족한 것이죠.

한국이 살기 팍팍하다는 '헬조선' 담론과 이에 맞물리는 '탈조선' 로망. 낙지 사무엘이 인터넷 공간에서 화제가 된 배경도 이와 고스란히 겹칩니다. 인생역전, 혹은 현실도피를 꿈꾸는 많은 사람에게 사무엘은 그 꿈을 대신 이뤄준 대상으로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영화 <올드보이> 스틸컷.

영화 <올드보이> 스틸컷. 대부분의 낙지는 이렇게 사람의 입으로 들어갈 운명이었겠지요. ⓒ CJ엔터테인먼트


한국인이라면 '낙지 볶음'이란 말만 들어도 많은 사람이 군침이 도는 것을 느낄 겁니다. 노량진 수산시장을 떠돌던 사무엘은 아마 '안주'로 생을 마감할 처지였겠죠. 우연히 코난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말입니다. 시간의 문제였을 뿐, 머지않아 사무엘은 초장 찍힌 채로 누군가의 입안으로 넘어갈 운명이었을 겁니다. 여기까지 설명하는 순간, 영화 <올드보이>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을 것 같은데요. 오대수(최민식 분)가 산 낙지를 우걱우걱 씹어 삼키던 그 장면 말입니다.

고시생과 수험생이 공부하며 살아가는 지역인 '노량진'에서 사무엘은 코난을 만났습니다. 도마 위에서 겪을 '고난'이 아니라 구원자 '코난' 오브라이언을 만난 셈이죠. 사무엘은 덕분에 '술안주'가 아니라 친구 같은 존재로, 와인을 마시는 코난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괜히 뭉클한 순간이었습니다. 낙지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둘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니요. 이를 보고 누군가는 김춘수의 <꽃>을 패러디해서 사무엘에게 시를 바치기도 했습니다.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나는 다만 안줏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나를 사무엘이라 불러 주었을 때, 나는 그에게로 가서 애완 낙지가 되었다."

'아쿠아리움 기증'으로 끝난 '미국행'의 꿈

 코난 오브라이언은 지난 17일 자신의 SNS 계정에 '애완낙지 사무엘'을 아쿠아리움에 기증했다고 밝혔다.

코난 오브라이언은 지난 17일 자신의 카카오스토리 계정에 '애완낙지 사무엘'을 아쿠아리움에 기증했다고 밝혔다. ⓒ @conanobrien


낙지 사무엘에 주목한 사람들이 다시 한 번 탄식한 것은 지난 17일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부러움이 아니라 안타까움이었죠. 이날 코난 오브라이언이 '사무엘을 서울 아쿠아리움에 기증했다'는 글을 SNS에 썼기 때문입니다.

동물을 데리고 비행기에 탑승하는 일은 까다롭습니다. 한국 공항을 떠나서 미국에 입국하기까지, 낙지와 함께하려면 아마도 매우 어려운 절차를 겪어야 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낙지에 '한국(혹은 현실) 탈출의 꿈'을 투영했던 사람들은 순간 좌절했습니다. 어느 누리꾼은 "그래도 노량진을 떠나 강남구(코엑스 아쿠아리움)로 이사하지 않았느냐, 이 정도면 출세한 셈"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어찌 보면 사실이지만, 한 편으로는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쉽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3일이라는 길고도 짧은 시간, 낙지 사무엘을 둘러싼 '작은 소동'은 이렇게 마무리됐습니다. 이후 코난 오브라이언은 JYP 사옥을 방문해서 박진영씨와 다음 일정을 조율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제 사무엘은 한국에 남고, 코난은 다시 미국에서 쇼 사회자로 활동하기 위해 떠나야겠죠. 비록 둘은 헤어지지만, 코난과 사무엘의 만남은 앞으로도 아쿠아리움을 방문할 많은 한국인의 뇌리에 오랫동안 기억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잠시나마 웃음을 주고, '헬조선 탈출'의 대리만족을 줬던 사무엘. 그에게 '거위의 꿈'을 개사한 '낙지의 꿈' 가사 일부를 바치며, 이 기사를 끝맺으려 합니다.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어항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 저 국경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어항도 나를 묶을 순 없죠. 내 빨판 끝에서 나 웃을 그 날을 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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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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