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우려했던 시나리오가 발생했다. 리우올림픽 본선 티켓을 확정짓고 축제 분위기로 마감할수 있었던 대회가 마지막날 흥이 깨졌다. 그것도 절대 지고 싶지 않았던 상대에게, 가장 기분나쁜 방식으로 패배를 당한 것은 오랫동안 자존심에 상처로 남을 만한 경기였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 대표팀이 31일 오전 카타르 도하의 압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과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2-3으로 역전패했다.

한국은 전반 20분 권창훈의 선제골과 후반 2분 진성욱의 추가골로 2-0까지 앞서나가며 우승을 눈앞에 두는 듯 했으나 후반 22분부터 약 15분 사이에 내리 3골을 허용하며 어이없는 역전패를 당했다.

최종예선 34경기 무패행진... 일본전에서 마감

 30일 오후(현지시각) 카타르 도하 압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대한민국 대 일본 결승전. 2대3 한국의 패배로 경기가 끝난 후 한국 선수들이 아쉬운 표정을 지은 채 돌아서고 있다. 2016.1.31

30일 오후(현지시각) 카타르 도하 압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대한민국 대 일본 결승전. 2대3 한국의 패배로 경기가 끝난 후 한국 선수들이 아쉬운 표정을 지은 채 돌아서고 있다. 2016.1.31 ⓒ 연합뉴스


이로서 한국은 1992 바르셀로나 대회부터 이어온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부터 이어온 무패행진을 34경기로 마감했다. 이미 결승전 결과와 상관없이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확정짓기는 했지만, 새로운 역사를 수립한 곳에서 또 하나의 역사가 중단되는 아픔도 겪어야했다.

공교롭게도 한국의 최종예선 무패행진이 처음 시작된 경기도 일본전이었고 이를 마감시킨 것도 일본이다. 한국은 일본과의 역대 23세 이하 올림픽팀간 상대 전적에서도 6승 4무 5패로 좁혀졌다.

한국은 결승을 앞두고 한일전 필승에 대한 강력한 의욕을 드러냈다. 2010년대들어 A대표팀이 일본과의 상대전적에서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올림픽팀만큼은 런던올림픽과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연이어 승리를 거두며 우위에 있다는 자신감도 이번 대결에 대한 기대를 키웠던 이유다.

신태용 감독은 올림픽 본선행 확정과 별도로 "한일전은 무조건 이겨야하는 경기"라며 전의를 불태웠다. 소속팀 복귀로 결승전에 합류하지 못한 황희찬이 '위안부 할머니'문제를 언급한 것은 양국의 신경전에 불을 지폈다. 일본 언론에서는 황희찬의 발언을 문제삼으며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신태용호는 말만 앞세우다가 본전도 못 건진 꼴이 됐다. 일본은 당초 본선행만으로도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한국이 먼저 한일전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고 집착하는 듯한 모습을 드러내면서 불필요하게 상대를 자극했고 긴장감만 높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2013년 당시 A대표팀은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이란과의 최종전을 앞두고 최강희 감독이 "이란에게 아픔을 주고 싶다"고 도발했다가 오히려 이란의 설전과 언론플레이에 말려 역공을 당했다. 최종예선 탈락위기에 있던 이란은 최감독의 발언을 악의적으로 확대 왜곡하며 내부 단합을 이끌어내는 빌미로 활용했다.

비기기만 해도 자력으로 월드컵행을 확정지을 수 있었던 경기에서 한국은 지나치게 승리를 의식하여 무리한 공격일변도로 나가다가 수비실수에 이은 이란의 역습 한방에 0-1로 무너졌다. 경기 후에는 최강희 감독이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감독에게 '주먹감자' 조롱을 당하는 희대의 굴욕을 겪기도 했다. 골득실차이로 우즈벡에 앞서 간신히 본선행에서는 성공했지만 쓸 데 없는 '설레발' 때문에 하마터면 월드컵을 망칠뻔한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신태용호, 너무 일찍 단꿈에 취해버린 걸까

 신태용 올림픽 축구 대표팀 감독이 29일 오전(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알 사드 메인미디어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6.1.29

신태용 올림픽 축구 대표팀 감독이 29일 오전(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알 사드 메인미디어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6.1.29 ⓒ 연합뉴스


이번 한일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골을 앞서나갈 때만 해도 주도권은 일방적일 만큼 한국이 쥐고 있었고, 완승도 가능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거의 우승이 눈앞에 와있는 섣부른 안도감과 자만이 오히려 선수들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공격에서는 템포 조절이 되지않고 무리한 개인플레이가 나오는가 하면 수비는 적극성을 잃고 안이하게 움직이다가 일본이 역습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고 기세를 살려주는 패착을 저지르고 말았다. 

일본의 만회골과 동점골이 잇달아 터지며 2점차 리드가 순식간에 날아가기까지 시간은 1분이 채 되지 않았다. 후반 35분 아사노 다쿠마가 위험지역에서 한국 수비진의 어설픈 볼처리 실수를 놓치지 않고 1대 1 찬스에서 역전골을 꽃아 넣는 장면은 정확히 2013년 이란전에서 결승골을 헌납했던 장면의 재림이었다. 이번 대회 들어 한번도 상대에게 리드를 허용해본 적이 없었던 신태용호는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어떤 면에서는 올림픽 본선행 확정 이후 너무 일찍 단꿈에 취해버린 신태용호의 교만에 내리는 쓰디쓴 회초리이기도 했다. 일본전 역전패의 원인은 알고보면 이번 대회 내내 신태용호가 안고있던 고질적인 불안요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한국은 이번 대회 매 경기 선제골을 넣고도 고질적인 후반 체력과 집중력 저하로 어려운 경기를 펼치는 경우가 많았다. 냉정히 말해 결승까지 오는 데는 운도 많이 따라줬다. 조별리그 1차전 우즈벡전의 선제 페널티킥은 명백한 심판의 오심이었다. 요르단과의 8강전에서도 1-0으로 앞선 후반 상대의 정당한 득점 상황이 오프사이드 오심으로 무효화처리되는 행운이 따랐다.

종료 직전 동점골을 헌납했던 조별리그 최종전 이라크전(1-1), 준결승 카타르전(3-1), 결승 일본전까지 한국은 이번 대회 후반들어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동점이나 역전을 허용한 상황이 세 번이나 됐다. 요르단전에서도 사실상 상대의 정당한 득점이 인정받지 못한 것을 감안하면 4번이다.

단기전이 기세싸움, 한 골 싸움임을 감안할 때 이러고도 결승까지 올라왔다는 것은 상당히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매경기 전후반 극과 극의 모습을 보이던 롤러코스터 경기력은, 상대적으로 오히려 이번 대회 후반에 유난히 강한 면모를 보였던 일본과 대조를 이뤘다. 이번 결승전 역전패를 단순히 방심에 따른 이변이나 경험부족만으로 치부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올림픽팀은 이제 본선을 준비해야한다. 갑작스러운 감독교체와 1년이라는 짧은 시간, 선수구성의 어려움과 달라진 예선제도 등 여러 가지 악재를 극복하고 어쨌든 올림픽 본선행이라는 목표를 이뤄낸 것은 분명히 인정받아야한다.

하지만 이번 한일전의 뼈아픈 교훈에서 보듯, 한순간의 방심이나 자만으로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올림픽팀은 전히 다수의 선수들이 소속팀에서 꾸준한 경기감각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있으며 훈련시간 확보, 와일드카드 차출 문제까지 넘어야 할 벽이 많다. 이날 패배를 결과적으로 리우올림픽을 대비한 보약으로 삼아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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