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하루 1달러로 생활하기(Living on One Dollar)>의 화면 갈무리

다큐멘터리 <하루 1달러로 생활하기(Living on One Dollar)>의 화면 갈무리 ⓒ 리빙온원


참 쓸 돈도 많습니다. 매일 꼬박꼬박 나가는 교통비(3800원)와 식비(4700원)는 그렇다 쳐도, 저도 모르게 조금씩 쓰고 있는 통신비(1800원), 주거·수도·전기 및 가스(3000원)까지. 먹고 자고 싸기만 하면 다인가요? 한 주에 영화 한 편(오락문화 2000원)은 보고, 토익 학원 등록(교육 4000원)해 스펙도 쌓아야죠. 2015년 3분기 통계청 자료에 따른 1인의 하루 치 지출입니다.

혹시 식비 항목에서 갸우뚱하셨나요? '하루에 5000원도 안 쓴다고?' 저 수치는 마트 가서 장 보고 쓰는 돈 '식료품'에만 한정되는 것이고, 외식·숙박(4400원) 지출도 따로 있습니다. 분식집에서 떡볶이 1인분 사 먹는 것도 외식이니 먹는 것에 꽤 많은 돈을 쓰는 편이네요. 게다가 이 통계는 2인 이상의 가구를 대상으로 한 수치입니다. 당연히 1인 가구는 식비나 주거비 부문에서 더 많은 돈을 쓰겠죠.

 다큐멘터리 <하루 1달러로 생활하기(Living on One Dollar)>의 화면 갈무리

다큐멘터리 <하루 1달러로 생활하기(Living on One Dollar)>의 화면 갈무리 ⓒ 리빙온원


그래서일 겁니다. 제가 넷플릭스에서 <하루 1달러로 생활하기(Living on One Dollar)>란 제목만으로 이 다큐멘터리에 끌린 것이. 과자 한 봉지면 다 써버릴 돈으로 어떻게 하루를 지낼까 궁금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알겠지만 <만 원의 행복>처럼 돈을 최대한 아끼면서 사는 수준은 아닙니다. 국제개발을 전공하는 크리스는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들을 '직접' 배우고자 합니다. 전 세계 11억 명이 하루 1000원도 안 되는 돈으로 산다고들 하는데 진짜 그들의 삶은 어떤가를 직접 가서 보고 싶다는 거죠.

단돈 천 원으로 생활 수준이 2배가 된다면?

 다큐멘터리 <하루 1달러로 생활하기(Living on One Dollar)>의 화면 갈무리

다큐멘터리 <하루 1달러로 생활하기(Living on One Dollar)>의 화면 갈무리 ⓒ 리빙온원


 다큐멘터리 <하루 1달러로 생활하기(Living on One Dollar)>의 화면 갈무리

다큐멘터리 <하루 1달러로 생활하기(Living on One Dollar)>의 화면 갈무리 ⓒ 리빙온원


그들이 선택한 곳은 과테말라의 한 시골 마을 '페나 블랑카'입니다. 인구 300여 명의 이 마을에서 크리스와 그의 친구인 자크, 그리고 영화 제작을 하는 션과 라이언 등 4명이 56일 동안 살게 됩니다. 단순히 하루 1000원으로 사는 것도 아닙니다. 페나 블랑카 사람들은 대부분 일용 노동자라 수입이 일정하지 않습니다. 정규직은 마을에서 단 1명입니다.

크리스 일행은 그들의 삶을 최대한 따라 하기 위해 규칙을 하나 더 정합니다. 0달러부터 9달러까지 적힌 종이를 모자에 넣고 매일 아침 제비뽑기를 합니다. 일행 4명은 거기서 나온 금액으로 생활하는 겁니다. 음식, 비누, 장작, 교통비 등 모두 이 돈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콩밥만 먹고 버티다 보니 하루 900㎈밖에 섭취하지 못합니다. 불순물이 섞인 물을 먹다가 몸 안에 기생충이 생겨도 치료하지 못합니다. 약값만 2만5000원이니까요.

그래도 이들 일행은 마을 사람 대부분보다 잘 먹는 편입니다. 마을 아이들은 먹고사는 게 바빠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합니다. 밭일하느라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는 아이가 40% 정도입니다.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는 물음에 재차 물었을 땐 프로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처음 물었을 때는 '농부'라고 답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아이들입니다.

 다큐멘터리 <하루 1달러로 생활하기(Living on One Dollar)>의 화면 갈무리

다큐멘터리 <하루 1달러로 생활하기(Living on One Dollar)>의 화면 갈무리 ⓒ 리빙온원


 다큐멘터리 <하루 1달러로 생활하기(Living on One Dollar)>의 화면 갈무리

다큐멘터리 <하루 1달러로 생활하기(Living on One Dollar)>의 화면 갈무리 ⓒ 리빙온원


꿈이 무기한 유예되면서 생긴 응어리는 쉽게 닳아 없어지지 않습니다. 톡 건드리면 금방 터질 정도로 부풀어 오르기도 합니다. 로자 코흐 보첼의 꿈도 그렇습니다. 성인이 된 그녀는 어릴 적부터 간호사가 되고 싶었지만 6학년 때부터 학교를 그만두고 밭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그때의 감정을 기억합니다. 초라한 자신에 비해 좋은 옷과 신발을 갖춘 또래 아이들이 부러웠다고, 그래서 너무 슬펐다고.

하루 벌어 하루 먹다 보니 목돈이 필요한 일이 생겨도 참고 버텨야 합니다. 그런데도 꼭 써야 하는 목돈이 필요하기에 공동체 내에서 조달해 해결하기도 합니다. 마을 사람 12명을 모아 12달러씩 모으고 추첨으로 1명을 뽑는 식입니다. 일종의 '계'인 거죠. 하지만 이런 공동체가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다큐멘터리 <하루 1달러로 생활하기(Living on One Dollar)>의 화면 갈무리

다큐멘터리 <하루 1달러로 생활하기(Living on One Dollar)>의 화면 갈무리 ⓒ 리빙온원


은행 대출은 꿈도 못 꿉니다. 단돈 40만 원(3000퀫잘레)을 빌리기 위해 전기세 영수증, 세금증명서, 각종 청구서, 보증인 2명을 구해야 합니다. 전기도 끊긴 집에 영수증이 있을까요? 세금증명서 떼는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무엇보다 수입 증명을 해야 하는데 정규직이 1명뿐인 이 마을에선 불가능한 일입니다.

결국, 다른 방법을 구해야 합니다. 그중 하나가 그라민 은행입니다. 무함마드 유누스가 세운 소액대출 은행으로, 신분증만 있으면 100~300달러(12만 원~36만 원) 정도를 빌릴 수 있습니다. 이 은행 덕분에 유누스는 2006년에 노벨평화상까지 받습니다. 로자는 그라민 은행에서 200달러를 빌려 뜨개질을 시작했고, 그 수익으로 학비를 모으고 있습니다. 양파 판매업을 시작한 주민도 있고, 가게를 연 주민도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하루 1달러로 생활하기(Living on One Dollar)>의 화면 갈무리

다큐멘터리 <하루 1달러로 생활하기(Living on One Dollar)>의 화면 갈무리 ⓒ 리빙온원


크리스 일행은 무 재배를 시작해 하루 2달러를 쓸 수 있게 됐습니다. 고작 하루에 천원 더 쓸 수 있게 된 것이지만, 그들의 생활 수준은 2배가 된 것이죠. 크리스는 이내 고민스러워집니다. 2조5000억 달러에서 3조 달러(2700조~3300조 원)를 국제개발에 쏟아 부었는데도 효과는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200~300달러의 대출이 생활 수준을 2배로 향상한 겁니다. 개인으로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밤새 토론한 까닭입니다.

우리는 영웅이 될 수 있다

 다큐멘터리 <하루 1달러로 생활하기(Living on One Dollar)>의 화면 갈무리

다큐멘터리 <하루 1달러로 생활하기(Living on One Dollar)>의 화면 갈무리 ⓒ 리빙온원


그들은 답을 내진 않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단 한 가지의 답은 없다고. 그라민 은행처럼 부분적으로나마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여럿 있을 뿐이라고. 그래도 지금 시대는 가난한 사람보다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으니, 가난하지 않은 '우리'는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크리스 일행이 페나 블랑카를 떠나는 날, 그들과 친해져 함께 먹고 자고 지냈던 안소니가 한 말은 결국 크리스 일행이 가장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겁니다.

 다큐멘터리 <하루 1달러로 생활하기(Living on One Dollar)>의 화면 갈무리

다큐멘터리 <하루 1달러로 생활하기(Living on One Dollar)>의 화면 갈무리 ⓒ 리빙온원


"페나 블랑카에 있는 우리를 잊지 말아줘요. 우린 생활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싸울 뿐만 아니라 단지 생존을 위해 싸우고도 있어요."

물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개인 차원에서 그쳐선 안 됩니다. 각 국가와 정부에서도 노력해야 하고, 세계적으로도 더 고민해야 합니다. 하지만 크리스가 개인을 강조한 건, 거대한 규모의 지원으로는 미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걸 몸소 체험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지원은 실제 삶을 영위하는 곳까지 온전히 도달할 수 없다는 걸 봤기 때문일 겁니다.

 다큐멘터리 <하루 1달러로 생활하기(Living on One Dollar)>의 화면 갈무리

다큐멘터리 <하루 1달러로 생활하기(Living on One Dollar)>의 화면 갈무리 ⓒ 리빙온원


크리스의 말처럼 '작은 변화가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들처럼 직접 현지에 가 다큐멘터리를 찍어 문제를 부각할 수도 있습니다. 저처럼 '필'을 받아 글을 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조그만 변화도 효과적입니다. 빈곤층을 위해 매달 천 원씩 기부해도 좋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충분히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조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mewcra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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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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