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식의 계절이다. 언제나 그렇듯 각 방송사는 각자 자기 방송국만의 잔치에 이제는 '한류'라는 명목을 내세워 국외 손님들까지 끌어모으느라 분주하다. 지난 26일 KBS 연예 대상에서, 대상을 받은 이휘재는 수상 소감 첫 마디에서 기사 댓글을 걱정했다. 방송사 시상식은 해를 넘길수록 '그들만의 잔치'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개별 방송사의 '공로상'이랑 상관없이 올 한 해 예능 트렌드를 이끌어 왔던 인물에는 과연 누가 있을까?

김구라를 보면 예능의 트렌드가 보인다

 <마이 리틀 텔레비젼>의 한 장면. 김구라는 2015 예능 트렌드를 대표하는 대부분의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젼>의 한 장면. 김구라는 2015 예능 트렌드를 대표하는 대부분의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아래 <마이 리틀 텔레비전>), <복면 가왕>, <집밥 백선생> 모두 올 한해 시청자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은 프로그램들이다. 또한, 이 세 프로그램 모두 그 이전에 있었던 예능 프로그램들과 비교하면 신선하고 차별성 있는 콘텐츠로 대결했다.

그리고 이들 세 작품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세 프로그램 모두 김구라가 함께한다는 것이다. 올 한 해 예능 프로그램들은 여러 갈래로 접근해 들어갈 수 있다. 이른바 '먹방'으로 대변되는 요리 프로그램들의 범람이 그 예이다. 그런데 콘텐츠 상으로 접근해 들어가든 혹은 인물로 접근해 들어가든 교집합이 나온다. 바로 김구라이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섣부르게 올해 MBC 연예대상의 대상감으로 점쳐지기도 한다.

올 한 해 예능 프로그램의 대세는 요리 프로그램이었다. 요리 콘텐츠가 중심인 케이블 채널에서 요리를 선보이던 셰프들은, 그 영역을 점차 넓혀 종편으로 공중파로 그리고 광고까지 뻗어 나갔다. 먹방이 '지고 있다'는 말이 무색하게 분주한 활약을 보인다. 그중에서 가장 큰 성취를 보인 것은 역시나 백종원이다. 셰프라는 말보다는 요식업계의 큰손이 더 어울리는 백종원은 <음식 대첩> 등을 통해 보이던 그의 진가를 <마리텔>을 통해 대중에게 알렸다.

그리고 그런 백종원의 화려한 전성기를 여는 <마리텔>에서 프로그램의 정착을 위해 고군분투한 게 바로 김구라이다. <마리텔>에서 '깜냥'이 안 되는 적수로 만난 두 사람은, 이제 <집밥 백선생>을 통해 엄한 선생과 말 많은 제자로 변신하여 남성 시청자들조차 칼을 들게 만드는 요리 붐에 앞장섰다.

그렇게 쿡방의 대세 백종원과 함께하던 김구라는, 추석 특집으로 선보였던 <복면 가왕>이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되면서 예리한 감별력을 선보인다. 이미 <라디오 스타> 시절부터 스스로 팝 칼럼니스트 출신이라 자부하던 김구라다. 그의 음악 선구안은 마당발 인맥과 함께,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인물을 떠올려 내며 <복면 가왕>의 화룡점정이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트렌디한 프로그램을 함께하면서, 예능 대세가 된 김구라의 비결은 무엇일까? 2012년 총선 과정에서의 해프닝으로 뜻하지 않게 몇 개월 칩거를 한 김구라는, 마치 그 칩거로 그가 지난 시절 원죄처럼 짊어져 왔던 젊은 날의 막말 파동을 떨쳐버리기라도 한 듯 종횡무진 활약했다.

무엇보다 김구라가 예능 MC로서 대세가 된 데에는 그로 대변되는 보통 중년의 남자라는 콘셉트의 무난함이다. 종종 눈치 없이 자기 할 말만 하고, 낄 데 안 낄 데 눈치 없이 끼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어느 직장에서나 한 사람쯤 있을 법한 중년의 아저씨로서의 콘셉트. 이게 바로 무난한 예능 MC 김구라를 대변한다. <라디오스타>나 <동상이몽> 그리고 <호박씨> 심지어 영화 소개 프로그램 <무비 스토커>의 모습이 그렇다.

하지만 그런 것만은 아니다. 바쁜 와중에서도 측근인 봉만대 감독의 <떡국 열차>에 주연으로 열연(?)하는 모습에서도 보이듯이, 막말은 스스로 거세했을지언정 여전히 젊은 시절 그를 추동했던 기발한 에너지는 실험적인 프로그램들로 이어진다. <마리텔>을 비롯하여, <화성인 바이러스>를 이은 <공유 TV 좋아요> 그리고 <音담패설> 등으로 이어진 활약이 그것이다.

아마도 대한민국 종편에서 연예계 뒷말을 나누다가, 떡하니 자리를 바꿔 시사평론의 장에서 중심을 잡다가, 음악에도 한마디 거들고 그러다 가족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물감이 없다. 이런 MC는 김구라가 유일무이하다. 그가 2015년의 대세가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그가 트렌드가 된 데는 그의 트렌드에 대한 선구안도 작용했다. 하지만 올 한 해 그가 마구잡이로 출연했던 무수한 출연작의 타율이 높은 편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평가일지도 모른다.

무수한 잽들 속에 몇몇의 카운터 펀치

 <집밥 백선생>의 오프닝 화면 갈무리. 김구라는 '김구라스러움'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특유의 아저씨 캐릭터는 어떤 프로그램에도 녹아들지만, 시청자의 피로도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집밥 백선생>의 오프닝 화면 갈무리. 김구라는 '김구라스러움'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특유의 아저씨 캐릭터는 어떤 프로그램에도 녹아들지만, 시청자의 피로도 역시 무시할 수 없다. ⓒ tvN


그래서 김구라는 올 한 해 스테디셀러인 <라디오 스타>, <썰전>에서부터 신선한 콘텐츠로 부상한 <마리텔>, <집밥 백선생>, <복면 가왕>을 넘어, <무비 스토커>, <호박씨>, <결혼 터는 남자들>, <능력자들>을 통해 무수한 잽을 날렸다. 그리고 이제 2015년의 마지막 무렵 새로운 트렌드로 주목받는 '집방'의 <헌집 줄게 새집다오>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2016년의 활약은 이른바 '먹방'에 이은 '집방'의 트렌드화로 가능할까? <헌집 줄게 새집다오>의 성공 여부가 곧 김구라의 대세 유지 여부를 판가름하지는 않을 것이다. 2015년에도 그랬듯이, 김구라는 이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무수한 잽을 날릴 것이고, 그중 2015년처럼 시대를 잘 만난다면 <마리텔>이나, <복면가왕>, <집밥 백선생> 같은 카운터 펀치가 등장할 것이다.

오히려 김구라의 전성시대 복병은 바로 김구라 그 자신이다. 그가 음악 프로그램에 있건, 시사 토론 프로그램에 있건, 심지어 먹방이 되건, 집방이 되건, 어디서든 우리 회사 부장님 같은 '아저씨스러움'이 그의 친근함을 돋보이게 하는 카드이다. 하지만 동시에 어디서 그를 보아도 똑같이 진부한 '김구라스러움'이 그를 '진절머리'나게 하는 걸림돌이다. 결국, 그의 대세 유지는 대중의 '진절머리'의 유효기간에 달려 있을 것이다.

하나 더 있다. <마리텔>이나 <복면 가왕>이나 <집밥 백선생>까지 그가 대세의 프로그램을 이끈 것은 사실이지만, 막상 각 프로그램의 일등 공신이 그일까? 이 질문에는 고개가 갸우뚱해질 수밖에 없다. 그 예전 강호동이나, 유재석의 존재감에는 비견될 수 없다. 프로그램 성공에 빠질 수 없는 조미료이지만, '메인이 될 수 있는가'라는 점에서는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이휘재만큼은 아니지만, 역시나 '대상'이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좀 무색한 존재감이다. 어쩔 수 없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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