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관해 궁금증을 가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 멀리 끝까지 바라보았습니다'로 시작되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詩) '가지 않은 길'은 이러한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노래했다. 덕분에 동·서양을 불문, 많은 독자의 공감을 얻어냈다.

자신이 '가지 않은 길'을 간접경험 하거나 대리체험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그중 가장 흔하게 선택되는 것은 독서와 영화 관람이 아닐까. 책을 읽으며 만나게 되는 여러 사람의 다양한 삶은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인생'의 대리체험 교과서로 역할 한다. 영화 관람 역시 이와 유사하다.

관객들이 궁금해 하는 '영화 속 직업'은 뭘까

 부장 역을 맡은 정재영(좌)과 수습 여기자 역의 박보영. 현실에도 저런 기자가 존재할 수 있을까?

부장 역을 맡은 정재영(좌)과 수습 여기자 역의 박보영. 현실에도 저런 기자가 존재할 수 있을까? ⓒ New


만약 책과 영화가 없었다면 보통의 삶을 사는 인간이 어떻게 마피아(코사 노스트라)와 카모라, 야쿠자와 폭력조직 칠성파에 속한 사람들의 생을 피상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을까. <대부> <고모라> <소나티네> <친구> 등의 영화는 이들 소수 조직폭력배의 일상과 심리를 다수 관객에게 드라마로 엮어 보여준다. 물론, 그 영화적 완성도 면에서는 편차가 있지만.

영화관객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이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직업은 어떤 것일까. 영화는 대중의 기호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문화 장르다. 혁명가와 정치인, 예술가와 기인(奇人)을 다룬 영화가 적지 않을 걸 보면 이들의 삶이 궁금한 관객이 많은 모양. 여기에 더해 '기자의 생활' 또한 적지 않은 이들의 궁금증을 부르는 것 같다.

당장 떠오르는 것만 열거해 봐도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 <대통령의 음모>, 제목부터가 이탈리아의 전설적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의 이름인 <오리아나>, 패션잡지 기자의 악전고투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몇 해 전 개봉됐던 한국영화 <모비딕>까지 모두 기자가 주인공인 영화다.

수십 명의 기자가 등장하는 영화, 그러나 '진짜 기자의 삶'은...

 수십 명의 기자가 등장하는 영화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하지만, 거기 진짜 기자의 모습은 담기지 않았다.

수십 명의 기자가 등장하는 영화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하지만, 거기 진짜 기자의 모습은 담기지 않았다. ⓒ New


그렇다면, 기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최근 개봉한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의 감독 정기훈은 '기자의 삶과 생활'을 알고 싶어 하는 관객들의 요구에 충분히 답하고 있을까? 내 의견을 미리 내놓자면 '글쎄요...'다.

물론 영화가 현실을 그대로 화면에 옮겨올 필요는 없다. 그건 다큐멘터리 방식이지 극영화의 미덕은 아니므로. 하지만 스크린 앞에 앉은 관객을 설득시키고,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선 최소한의 현실성과 핍진성은 갖춰야 한다.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는 초현실적 사건을 다룬 미스터리영화도, SF영화도 아니니까.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의 비현실적이고, 핍진성 없는 장면을 여기서 일일이 거론하는 건 스포일러 행위다. 그렇기에 에피소드 몇 가지만 짧게 거론하려 한다.

부서 기자들을 앞에 놓고 온종일 쌍시옷으로 시작되는 육두문자를 큰소리로 내뱉는 부장? 현실에서의 존재 가능성은 0에 가깝다.

갓 들어온 수습 여기자를 성추행하는 국장? 성희롱하면 전직 국회의장도 패가망신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그런 멍청한 사람이 국장까지 승진했다고? 이것 역시 현실성이 0이다.

수백억 원이 걸린 송사로 발전할 수 있고, 동시에 회사의 사활까지 결정될 중요한 기사 작성을 수습을 갓 뗀 병아리 기자에게 믿고 맡긴다?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설정인지.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에 '기자의 삶'은 없다

 박보영 주연의 영화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포스터. 그러나 박보영이 경험하는 수습 연예 기자의 삶은 실제 기자의 삶과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

박보영 주연의 영화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포스터. 그러나 박보영이 경험하는 수습 연예 기자의 삶은 실제 기자의 삶과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 ⓒ New


이 영화가 묘사하고, 재현하는 기자의 모습에 '2015년의 현재성'은 담기지 못했다. 전두환의 제5공화국을 전후해서는 기자들의 모습이 이랬을까?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그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시 하는 이야기지만, 영화가 현실을 그대로 재현할 필요는 없다. 이 명제로 보자면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는 웃고 즐기며 시간을 보내기엔 나쁘지 않은 영화다. 오달수(국장 역)와 정재영(부장 역)의 코믹연기는 물이 올랐고, 어리벙벙한 수습 여기자에서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깨달아가는 도라희 기자(박보영 분)의 눈물겨운 성장기는 일부 관객들에겐 감동도 줄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유의하자.

자신이 '가보지 못한 길' 중 '기자의 길(삶과 생활)'이 궁금해서, 그 일부분이나마 대리체험 해보고 싶었던 관객이라면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는 피해 가는 게 좋다. 실망할 가능성이 100%에 가깝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 정기훈 박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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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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