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세계화를 위해 기획된 대표적 국제대회로는 2006년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주관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하 WBC)이 있었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끝으로 야구가 올림픽 종목에서 빠지는 등 세계적인 관심도가 다소 떨어지자 세계 야구-소프트볼 연맹(이하 WBSC)에서는 올림픽 종목 부활을 목표로 '프리미어 12'를 기획했다.

사전적 의미 그대로 이 대회는 국제 야구 연맹(IBAF) 랭킹 12위 이내의 국가들만 참여할 수 있는 고품격 대회인 것처럼 보였다. 미국·일본·대한민국·도미니카 공화국·베네수엘라·푸에르토리코·멕시코·대만 등 국제 야구 대회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였고, 유명한 선수들을 많이 배출했던 국가들이 참가 대상이었다.

별로였던 점 1.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비협조적인 모습

프리미어 12는 각국의 시즌이 종료되자마자 바로 치러졌다. KBO 리그는 팀당 128경기에서 144경기로 확대된 첫 시즌이었는데, 프리미어 12를 준비하고자 잔여 경기를 최소화하기 위해 8월부터 주말 우천순연 경기는 바로 다음 월요일로 앞당겨 치르는 등 일정 장기화를 방지하는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이는 시즌 도중 인천 아시안 게임이 열렸던 2014년에도 임시로 시행한 제도인데, 향후 정례화될 가능성이 크다.

메이저리그 각 구단에서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차출로 인하여 선수들이 부상을 당할 것을 우려했다. 안 그래도 스프링 캠프 시기에 열리는 WBC 차출도 구단들은 주저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WBC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주관하는 대회였다. 그래서 구단들은 선수들의 WBC 출전을 아예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몇몇 선수들이 불참을 선언하는 모습에서 구단들이 크게 환영하지는 않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결국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는 구단별로 40인 로스터에 등록된 선수들은 프리미어 12 참가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아 버렸다. 이에 대한민국에서는 메이저리그 계약 상태였던 류현진(로스앤젤레스 다저스)과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 그리고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 등이 대회에 참가할 수 없게 됐다. 결국 이대호(FA)와 이대은(지바 롯데 마린즈) 등 일부 NPB 출신 선수들과 KBO 리그 선수들로 대표팀을 꾸렸다.

물론 야구 종주국이라는 미국 역시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출전할 수 없게 됨에 따라 트리플A나 더블A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을 위주로 대표팀이 구성됐다. 또한 다수의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배출한 도미니카 공화국이나 베네수엘라, 푸에르토리코, 멕시코 등도 전력이 크게 떨어졌다. 결국 이번 프리미어 12에서 미국에서 중계진을 파견한 방송국은 그리 많지 않았고, 경기 시청률은 일본과 대한민국에 집중되었다.

별로였던 점 2. 대진표와 일정에서 드러난 일본의 꼼수

 지난 8일 오후 일본 훗카이도 삿포로돔에서 열린 2015 WBSC 프리미어 12 한국-일본 개막 경기. 6회 초 2사 때 한국 김현수가 삼진아웃을 당한 후 고개를 숙인 채 더그아웃으로 들어오고 있다.

지난 8일 오후 일본 훗카이도 삿포로돔에서 열린 2015 WBSC 프리미어 12 한국-일본 개막 경기. 6회 초 2사 때 한국 김현수가 삼진아웃을 당한 후 고개를 숙인 채 더그아웃으로 들어오고 있다. ⓒ 연합뉴스


프리미어 12는 야구 세계화 및 올림픽 종목 부활을 목표로 나름대로 홍보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었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은퇴)도 이 대회의 홍보대사로 활동했으며, 특히 제1회 대회 공동 개최국 중 한 나라였던 일본은 공식 개막전을 일본에서 시작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그러나 일본은 대회의 흥행을 목적으로 빅 매치를 많이 만들어내기 위해 일본이 배정된 B조에 대한민국, 미국, 도미니카 공화국, 베네수엘라, 멕시코 등 상위 랭킹의 국가들을 집중하여 배치했다. 미국이 제1회 WBC에서 상대하기 유리할 것으로 보이는 대진을 짰다면, 일본은 흥행을 위한 빅 매치를 의도적으로 B조에 몰리도록 대진을 짰다.

게다가 일본은 도쿄 돔에서 치러도 충분했을 대회 개막전을 삿포로 돔으로 변경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삿포로 돔은 다목적 경기장이었기 때문에 개막전 전날 J리그 경기까지 있었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장소를 선정했다. 게다가 개막전 선발로 오타니 쇼헤이(니혼햄 파이터스)가 등판하면서 이러한 논란이 더 거셌다. 오타니의 홈 팀인 니혼햄 파이터스의 홈 경기장이 삿포로 돔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개막전 한 경기를 제외한 모든 조별 리그 경기는 대만에서 치러졌기 때문에, 이들은 개막전을 치르자마자 바로 다음 날 삿포로에서 대만까지 이동해야 했다.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가 끝나는 날까지도 8강전 경기장과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을 정도로 대회 운영 이곳저곳에서 허술한 점이 드러났다.

결국 조 편성부터 전력 차이가 너무 크게 났던 까닭에 대부분의 경기 관심은 B조에 집중되었다. 물론 흥행을 위해서는 개최국들이 선전해야 할 필요는 있었지만 A조의 흥행이 B조에 미치지 못했다. 심지어 A조에 배정된 또 다른 개최국 대만은 조 4위에도 들지 못하며 2라운드 진출에도 실패했다. 조별 전력 차가 불균등했다는 점은 8강전에서 B조 소속 국가들이 모두 승리했던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원래 4강전도 2경기 모두 20일에 낮 경기와 밤 경기로 각각 치러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중계방송 편성 문제라는 터무니없는 이유를 들어 일본이 4강전에 진출할 경우 일본의 경기만 19일로 앞당겨 치른다는 내용을 대회 중간에 발표했다. 게다가 비행기 배정마저 일본은 저녁 비행기로 배정했지만, 대한민국 대표팀에게는 아침 비행기가 배정되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8강전이 끝난 바로 다음 날 새벽 3시부터 짐을 싸서 대만 숙소를 떠나야 했다.

별로였던 점 3. 심판진의 편파적 편성과 일관성 없는 판정

심판들의 구성과 판정에서도 문제가 드러났다. 대표적으로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미국과의 경기나 4강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심판들의 일관성 없는 판정 등으로 힘든 경기를 펼쳐야 했다.

우선 미국과의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부터 들여다보자. 승부치기는 국제 대회에서 경기 소요시간 단축을 위해 2008년 베이징 올림픽부터 도입되었던 제도이다. 이닝이 시작될 때 1루와 2루에 주자 2명을 놓고 공격을 시작하는 룰로, 무사 득점권 상황에서 이닝을 시작하기 때문에 선수들의 집중력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승부가 결정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대한민국은 연장 10회 초에 선두 타자를 내야 땅볼로 유도했다. 그리고 곧바로 야수 선택을 감행하여 선행 주자 2명을 아웃 처리했다. 득점권의 주자들은 사라지고 순식간에 2사 1루가 된 상황이었다.

그러자 미국은 1루 주자가 도루를 시도했고, 대한민국의 배터리는 이를 저지하려 했다. 중계 화면으로 봐도, 선수들이 봐도, 심판들이 봐도 명백한 아웃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대만 출신의 2루심은 명백한 아웃임에도 불구하고 세이프 판정을 내렸다(참고로 이날 주심은 일본 출신이었음). 그리고 이어진 적시타로 인하여 오심 주자가 홈을 밟으며 대한민국은 아쉬운 패배를 당했다.

국제 대회에서 중립적인 심판 구성이 필요한 상황인데도, 4강전이었던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심판진 구성은 논란의 정점을 찍었다. 이날 외야 선심으로 일본인 심판이 배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WBSC 측에서는 주심을 포함한 내야 4심은 중립국 심판이 배정되지만 외야 선심은 경기 해당 국가 출신 제한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게다가 이날 미국 출신의 주심도 스트라이크 존 판정에서 편파적인 판정을 내렸다. 일본 선발투수 오타니에게 있어서 지나치게 후한 스트라이크 존 판정을 내리면서 오타니는 7이닝 1피안타 11탈삼진의 투구를 기록하게 됐다.

반면 대한민국 투수들에게는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 판정에 인색한 모습을 보이면서 이대은은 급격히 투구 수가 불어나서 긴 이닝을 소화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판정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배터리는 경기 후반 철저하게 몸쪽 코스를 공략하는 등 위기를 극복해냈다. WBSC에서는 미국 출신의 심판을 결승전 3루심으로 배정하며 또 논란을 빚었다. 다만 결승전에서는 3루심이 승부에 변수를 부르는 결정적 오심은 없었다.

별로였던 점 4. 패배 후 결승전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

일정까지 앞당긴 일본의 꼼수. 하지만 4강전에서 대한민국이 9회 초 기적 같은 4득점 대역전승을 만들어내면서 이러한 일본의 의도를 무너뜨려 버렸다. 일본이 만들어 놓은 휴식일로 대한민국은 선발투수 이대은을 제외한 다른 투수들이 모두 등판할 수 있는 휴식시간을 얻었다.

일본은 당초 결승전 선발투수까지 4강전 경기 전에 미리 예고했다. 결승전 당일에 예정 선발투수를 장원준(두산 베어스)에서 김광현(SK 와이번스)으로 교체하는 등 신중하게 판단했던 대한민국과는 다른 행동이었다. 게다가 일본이 진출할 줄 알았던 결승전의 티켓도 4강전이 열리기도 전에 상당히 많이 판매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패하자마자, 일본에서는 이미 결승전 티켓을 샀던 사람들이 개인 판매를 통해 되팔이하고, 남은 티켓들은 대폭 할인 판매하는 등 태도를 돌변했다. 일본 관중들이 21일 낮에 열렸던 순위 결정전에서는 상당히 많은 자리를 채운 것과 달리 결승전에서는 군데군데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대회 주최국으로서 모든 경기에 대한 생중계를 책임져야 할 일본 방송국들도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 당초 마지막 날 중계를 담당했던 아사히 TV는 21일 낮에 열렸던 순위 결정전 경기는 예정대로 생중계했다. 당연히 저녁에 열리는 결승전 경기도 생중계를 해야 했다.

아사히 TV는 결승전 생중계를 돌연 취소했다. 그리고 기존에 방송하고 있던 프로그램들의 정상 방송을 편성했다. 결승전 내용은 일부 편집을 거쳐 1시간에서 2시간 사이 분량으로 줄인 뒤 22일 새벽 3시대로 녹화 중계한다고 밝혔다.

새벽 3시대는 매니아 층이 아니면 웬만해서는 대다수 사람들이 굳이 밤을 새우면서 본방송을 사수하지는 않는 심야 중의 심야 시간이다. 한국인 팬들이 밤을 새가면서 한국인 선수들이 출전하는 메이저리그 경기를 사수할 정도의 열의를 보인다고 해도 피로한 상황에서 중계를 제대로 즐길 수 없을 정도의 시간대에 억지로 편성한 모습이 보였다.

훌륭했던 점 1. 특급 선수 발굴, 괴물 투수 오타니

대한민국 타선을 괴롭힌 참으로 얄미운 선수지만, 일본의 프로 3년 차 투수 오타니는 누가 봐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뛰어난 구위를 지녔다. 1994년 7월 5일생의 오타니는 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투수와 야수로 모두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특히 하나마키히가시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인 이와테 대회에서는 일본 아마추어 야구 역사상 최초로 최고 구속 시속 160km를 찍을 정도로 위력적인 속구를 지녔다. 그뿐만 아니라 낙차 큰 포크볼이 시속 140km대 중반에 형성되면서 포크볼보다는 스플리터에 가까운 구속을 보일 정도로 타자들을 현혹했다.

당시 오타니는 일본의 프로야구 구단들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 구단들도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오타니는 당장은 마이너리그부터 시작할지 몰라도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그 직후 니혼햄 파이터스에서는 오타니를 지명했고, 고교 출신 아시아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서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점(정영일, 이대은 등)을 들어 오타니를 설득했다.

그리고 오타니는 다르벳슈 유(현 텍사스 레인저스)가 사용했던 등번호 11번까지 보장받으면서 니혼햄에 입단했다. 프로팀에 입단해서도 오타니는 투수와 야수를 병행하며 투수로 등판하지 않는 경기에서는 우익수 또는 지명타자로 출전하기도 했다.

오타니는 프로 2년 차인 2014년에는 투수로 두 자릿수 승수(11승 4패 평균 자책점 2.61)를 기록함과 동시에 타자로도 두 자릿수 홈런(10홈런 31타점 타율 0.274)을 기록하는 등 투타에서 모두 위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FA 자격일수 7년을 채워야 하는 KBO 리그의 규정과는 달리 NPB에서는 소속 팀에서 허락만 하면 언제든지 메이저리그 포스팅 시스템에 도전할 수 있다. 다만 NPB 출신의 메이저리그 포스팅 시스템에서는 협상에 필요한 낙찰 금액이 최대 2000만 달러로 한정되어 있으며, 최대 낙찰 금액을 써낸 구단들은 모두 자유롭게 협상할 수 있다.

오타니가 고교 졸업 당시부터 메이저리그에 가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기에 언젠가는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설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문제는 니혼햄이 오타니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언제쯤 허락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또한 NPB에서 투타 겸업을 하는 오타니가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떠한 선택을 할지도 주목되는 상황이다.

훌륭했던 점 2. 대회 첫 MVP 김현수의 맹활약

2015년 시즌을 마치고 KBO 리그 FA 자격 연한 9년을 채운 김현수(두산 베어스)는 KBO 리그 사무국에 FA 신청을 한 상태다. FA 자격이기 때문에 원소속 팀인 두산과의 우선 협상 기간이 끝나면, 다른 모든 구단과도 자유롭게 협상할 수 있게 된다. 윤석민(KIA 타이거즈)의 경우처럼 해외 구단과도 자유로운 협상이 가능하다.

김현수는 일단 프리미어 12에 집중하면서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한 언급을 아꼈다. 대회에서 주전 좌익수로 활약하며 모든 경기에 출전했고, 33타수 11안타 4사사구 13타점 4득점(타율 0.333)으로 맹활약했다.

김현수가 타점을 올린 순간에는 결정적인 순간들이 많았다. 특히 21일에 있었던 결승전에서도 김현수는 2개의 2루타를 기록했는데, 이 2루타가 모두 승리에 기여한 클러치 히트였다. 3회 초 무사 1루에서 1타점 2루타를 기록했으며, 4회 초 1사 만루에서도 2타점 2루타를 기록하며 굳이 홈런이 아니더라도 중요한 순간에 적시타를 뽑아내는 클러치 능력을 선보였다.

이러한 활약으로 김현수는 프리미어 12 1회 베스트 11 외야수 부문에 선정되었으며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김현수는 수상 인터뷰에서 기회가 주어지고 조건이 맞는다면 메이저리그에서 뛸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KBO 리그 FA 신청이 승인된 김현수는 일단 귀국하여 원소속 팀인 두산과 28일까지 협상에 들어간다.

김현수는 메이저리그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KBO 리그나 NPB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열어 둔 상태이다. 이 때문에 두산이 김현수를 만족하게 할 수 있는 대우를 먼저 제시할 경우 원소속 팀인 두산과 재계약 할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역대 FA 야수 최대 규모였던 최정(SK 와이번스, 4년 86억 원)의 기록을 뛰어넘을 수도 있는 분위기이며, FA 사상 최초로 100억 원 대의 계약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훌륭했던 점 3. 메이저리그 도전 선언한 이대호와 박병호의 결정적 활약

 21일 오후 일본 도쿄돔 구장에서 열린 2015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대회 결승전 대한민국과 미국의 경기. 4회초 2사 주자 2, 3루 때 대한민국 박병호가 좌월 3점 홈런을 친 뒤 더그 아웃에 들어와 관중석을 향해 두 주먹을 쥐며 포효하고 있다.

지난 21일 오후 일본 도쿄돔 구장에서 열린 2015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대회 결승전 대한민국과 미국의 경기. 4회초 2사 주자 2, 3루 때 대한민국 박병호가 좌월 3점 홈런을 친 뒤 더그 아웃에 들어와 관중석을 향해 두 주먹을 쥐며 포효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회 전에 메이저리그 선언을 공식화했던 선수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이번 대표팀에는 포스팅 시스템을 통하여 1285만 달러를 제시한 미네소타 트윈스와 협상에 들어간 박병호(넥센 히어로즈)와 대회 중 포스팅 시스템을 신청한 손아섭(롯데 자이언츠), 재팬 시리즈 MVP에 선정된 뒤 FA를 신청한 이대호(소프트뱅크 호크스)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손아섭과 소속 팀이 같은 까닭에 동시에 포스팅 시스템을 신청할 수 없고 대기 상태에 있는 황재균(롯데 자이언츠)도 있었다.

먼저 이대호는 대표팀 지명타자로 출전하며 27타수 6안타(타율 0.222) 1홈런 7타점을 기록했다. 타율은 저조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의 타점이 많았다. 특히 일본과의 4강전 9회초 상황에서 이대호는 승부를 뒤집는 2타점 적시타를 날리며 이 날 경기의 수훈 선수가 되었다. 비록 결승전에서 무안타로 침묵했지만 그의 존재만으로도 대표팀 타선의 무게가 실렸다는 것은 충분했다. 이 점이 인정되어 이대호는 대회 베스트 11 지명타자 부문에 선정되었다.

박병호는 이번 대회에서 8경기 29타수 6안타(타율 0.208) 2홈런 4타점을 기록했다. 역시 타율이 저조했지만 박병호는 여러 가지 힘든 요소를 안고 대회에 참가했다. 정규 시즌을 치르면서 발가락, 어깨, 손목 등에 잔부상이 있었고, 이로 인하여 정규 시즌 막판에 홈런 페이스가 떨어지며 이승엽(삼성 라이온즈)의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2003년 56개)을 경신하는 데 실패하기도 했다.

게다가 박병호는 포스팅 시스템으로 미네소타 트윈스와 협상 과정이 진행 중이었다. 물론 소속 팀인 넥센 히어로즈와 KBO 리그 사무국,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자신의 에이전트가 함께 처리하는 일이지만 선수 자신의 진로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 중압감이 컸다. 그러나 박병호는 결승전 4회 초 2사 2,3루 상황에서 승부에 사실상 쐐기를 박는 대형 스리런 홈런(비거리 130m)을 작렬하며 가장 중요한 결승전에서 한 몫을 해냈다.

손아섭도 쏠쏠한 활약을 했다. 4강전에서 9회 초 무사 1루 상황에서 안타로 기회를 살렸고, 대회 12타수 4안타(타율 0.333)를 기록하는 등 자신의 기량을 충분히 선보였다. 손아섭의 포스팅 시스템 협상이 불발될 경우 바로 포스팅 시스템 신청을 할 수 있는 황재균도 대회 29타수 8안타(타율 0.276)에 2홈런 3타점을 기록하며 대회 베스트 11 3루수 부문에 선정되었다.

훌륭했던 점 4. 슈퍼 에이스 없이도 이뤄낸 팀 ERA 1.93

이번 프리미어 12에서는 대한민국 대표팀에 꼭 필요한 슈퍼 에이스급 투수들이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류현진(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은 어깨 부상 재활로,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는 무릎 부상 재활로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서 잠시 빠져 60일 부상자 명단에 등록되어 있던 상황이라 대표팀에 소집될 수 없었다. 현재 류현진과 강정호는 60일 부상자 명단에서는 해제되어 40인 로스터에 다시 들어가 있다.

제1회 최동원 상을 수상했으며 2015년 정규 시즌 평균 자책점 타이틀 1위를 차지했던 양현종(KIA 타이거즈)과 제 2회 최동원 상을 수상했던 2015년 다승왕 유희관(두산 베어스), 끝판대장 오승환(한신 타이거즈)도 경미한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대표팀에서 제외되었다. 게다가 포스트 시즌이 진행되는 도중 삼성의 일부 선수들이 해외 원정 도박에 연루되어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라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 등은 한국 시리즈 엔트리와 프리미어 12 소집 대상에서도 빠졌다.

이번 대회에서 선발투수로는 김광현(SK 와이번스), 장원준(두산 베어스) 그리고 이대은(지바 롯데 마린즈)이 기용되었으며, 소속 팀에서 선발로 활약하며 탈삼진 타이틀을 차지했던 차우찬(삼성 라이온즈)은 롱 릴리프로 활약했다. 기타 구원투수로 정대현(롯데 자이언츠), 이현승(두산 베어스), 정우람(SK 와이번스), 심창민(삼성 라이온즈), 임창민(NC 다이노스), 우규민(LG 트윈스) 등도 기용되었다.

결국 대한민국 투수진은 선동열과 송진우 두 투수코치의 한 박자 빠른 투수 교체 타이밍 운영을 통하여 상대 팀의 타격 타이밍을 끊는 작전으로 진행되었다. 위기 상황이 올 때 앞 투수의 힘이 떨어졌다 싶으면 바로 다음 투수가 등판하여 위기에서 팀을 구해냈다.

그 결과 대한민국 투수진은 대회 팀 평균 자책점에서 1.93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만들어냈다. 이번 대회에서 팀 평균 자책점이 가장 낮았던 국가는 1.83의 캐나다이고, 대한민국은 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4강전에 진출했던 국가들이 모두 B조 소속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캐나다의 평균 자책점과 대한민국의 평균 자책점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긴 어렵다. 대한민국은 죽음의 조라 불리었던 B조에서 일본과 미국에게 한 차례 씩 패하며 3위를 기록했으나, 일본과의 개막전 경기에서만 5실점했을 뿐 나머지 경기에서는 모두 3실점 이하로 완벽히 막아냈다.

선발에서는 장원준이 2경기에 등판하여 11.2이닝 3실점으로 평균 자책점 2.31을 기록하며 가장 고른 모습을 보였다. 이대은은 중요했던 4강전 선발로 등판하여 심판의 석연찮은 스트라이크 존 판정에도 불구하고 3.1이닝 3실점(1자책)으로 버텼다. 롱 릴리프로 등판하며 1+1 역할을 확실히 해낸 차우찬은 5경기에서 10이닝 14탈삼진을 기록하는 위력적인 구위로 올 시즌 탈삼진왕의 위력를 선보였다.

김광현은 조별 리그 2경기에서 7이닝 4실점 5.14로 다소 부진했고, 하필이면 김광현이 등판했던 2경기에서만 패했을 정도로 운이 없었다. 그러나 김광현은 자신을 결승전 선발로 낙점한 김인식 감독에게 보답하는 위력적인 투구를 했다. 그는 결승전에서 5이닝 5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승리투수가 됐다.

훌륭했던 점 5. 김인식 감독의 용병술과 대표팀의 책임감

이렇듯 대회 준비부터 끝까지 말이 많고 우여곡절이 많았던 프리미어 12였다. 현행 KBO리그에서는 이전 시즌 한국 시리즈 우승 팀의 감독이 대표팀 감독을 맡고, 차선책으로 준우승 팀의 감독이 대표팀 감독을 맡아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대회 준비를 위해 일정이 지나치게 빡빡했던 나머지 류중일(삼성 라이온즈) 감독과 염경엽(넥센 히어로즈) 감독이 대표팀을 맡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KBO리그 기술위원장이었던 김인식 감독이 중책을 맡게 되었다. 김 감독은 "태극 마크를 달고 나가는 데는 그 자체가 본인의 명예와 국가의 명예가 달렸다"고 주장하며 대표팀 선수들의 책임감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감독직을 수락한 뒤 각 팀을 돌며 선수단 구성에 총력을 기울였고, 집중적인 분석을 통해 몇 년 동안 감독직을 쉬었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용병술을 선보였다.

향후 대한민국 대표팀은 2017년 WBC, 2018년 아시안 게임, 2019년 프리미어 12 등 지속되는 국제 대회에 있어서 전임 감독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2013년 제 3회 WBC에서 1라운드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은 이후 이러한 주장이 점차 현실적으로 힘을 얻고 있는 추세에서 "국민 감독" 김 감독이 평상시는 리그 기술위원장을 맡으면서 국제 대회에서 전임 감독을 맡을 가능성도 있다.

이번 대회를 통하여 대한민국 대표팀은 상금으로 100만 달러를 받았다. 물론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주도하는 WBC에 비하면 상금의 규모가 현저하게 적다.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과는 달리 병역 혜택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대표팀은 초대 대회에서 챔피언에 오르며 역사에서 한 번 밖에 이룰 수 없는 하나의 타이틀을 얻었다. IBAF 랭킹 상위 12개 팀만 참가한 대회에서 챔피언이 되었다는 점도 또 하나의 프리미엄이다.

대표팀에 참가한 선수들은 대회에서의 활약으로 국가 대표 선수의 가치를 한껏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비록 병역 혜택은 없어도 선수들은 대표팀 소집일부터 해산일까지의 기간을 KBO리그 1군 등록일수에 반영할 수 있는 보상 혜택을 받았다. FA 자격 연한을 채우는 데 한 시즌 당 최소 145일이 필요한데, 부상 등으로 잠시 엔트리에서 빠진 공백을 이러한 대표팀 참가 기간으로 메울 수 있다.

이제 대표팀은 22일 하네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김포 국제공항으로 입국한다. 이후 공식 해단식을 통해 대표팀 일정을 모두 마무리한다. 김현수 등 FA 자격을 취득한 선수들은 곧바로 원 소속 구단과 협상에 들어가며, 일부 선수들은 팀 마무리 캠프에 합류하는 등 각자의 일정으로 돌아간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자랑스러운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올린 선수단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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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12 WBSC국제대회 대한민국우승 프리미어12MVP김현수 국민감독김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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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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