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바람에 나뭇잎 떨어지는 요즘, 첼로의 따뜻한 선율과 부드러운 화음이 그립다. 첼로 소리는 우아하다. 생상스의 <백조>는 첼로로 연주해야 제격이다. 첼로는 생김새부터 사람 몸을 닮았다. 앉아서 끌어안고 연주하는 모습은 편안하게 대화하는 느낌을 준다.

첼로의 4줄(C-G-D-A) 중 3번째 현인 G 선의 소리는 푸근한 남성의 목소리와 흡사해 친숙감을 더한다. 오펜바흐가 작곡한 '재클린의 눈물'이 가을에 가슴을 푹 적시는 애수 어린 선율이다. 재클린 뒤 프레의 첼로 소리에 귀 기울이면, 오펜바흐가 그녀를 위해 작곡한 음악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밝고 재능 있던 그녀, 병마가 그녀를 덮쳤다

 세계 첼로계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재클린 뒤 프레(1945~1987)는 26살 때 다발성 경화증에 걸려 연주활동을 중단하고 만다.

세계 첼로계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재클린 뒤 프레(1945~1987)는 26살 때 다발성 경화증에 걸려 연주활동을 중단하고 만다. ⓒ 위키피디아

이 곡의 제목에 나오는 재클린은 어릴 적부터 천재 첼리스트로 온 세상의 기대를 받던 영국의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1945~1987)다. 그녀는 젊었고, 첼로 세계의 미래는 그녀의 것이었다. 유망한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과 결혼하여 개인적으로도 행복했다.

그녀는 항상 웃음을 간직했고, 자신감이 넘쳤으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활달한 성격이었다. 그러나 불행은 예기치 않게 다가오는 법. 그녀는 26살 때인 1971년에 다발성 경화증에 걸렸고, 신경이 마비되어 연주할 수 없게 됐다. 아직 철부지였던 남편 바렌보임은 그녀 곁에 머물지 않았다.

젊은 그녀가 느꼈을 절망과 고독, 그 깊이를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그녀는 첼로 교본을 쓰고 후배들을 가르치는 등 첼로에 대한 열정을 불사르다가 1987년, 42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렇다면 자크 오펜바흐(1819~1880)는 누구를 위해 이 곡을 쓴 걸까? 영원한 미스터리일 뿐이다. 그는 독일 태생의 프랑스 작곡가로, 원래 이름은 야콥(Jacob)이지만 프랑스식 이름인 자크(Jacques)로 개명하여 파리에서 주로 활동했고, <호프만의 이야기> <지옥의 오르페우스> 등 100편가량의 오페레타를 남겼다.

9살부터 첼로를 연주한 신동이었으니 아름다운 첼로 곡을 작곡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즐겁고 경쾌한 오페레타만 쓰던 그가 어떤 사연이 있었기에 이토록 슬픈 곡을 썼을까?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에 홀로 눈물 흘리며 작곡한 걸까? 홀로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 있었기에 발표조차 안 한 채 남겨 놓았을까?

100년 가까이 잠들어 있던 곡, 다시 생명을 얻다

 젊은 시절 첼리스트로 주목을 받았던 자크 오펜바흐(1819~1880)

젊은 시절 첼리스트로 주목을 받았던 자크 오펜바흐(1819~1880) ⓒ 위키피디아

슬픔이 슬픔을 위로한다. 가슴 저미는 슬픔으로 시작해 하염없이 노래하는 중반부로 접어들 무렵부터 따뜻한 위안을 느끼게 한다. 작곡자의 서랍 속에서 100년 가까이 잠들어 있던 이 곡은 재클린 뒤 프레의 연주로 다시 생명을 얻었다. 음악 한 곡에 이토록 절절한 사연이 묻어 있다는 게 새삼 놀랍다.

작년 이맘때 서울첼로오케스트라의 연주회에서 첼리스트 홍성은씨가 연주한 이 곡을 듣고 깊은 감상에 사로잡힌 게 떠오른다. 2013년에 창단한 서울첼로오케스트라는 모두 첼로로만 이뤄진 특별한 악단이다.

첼로는 현악기 중에서도 유난히 음역의 폭이 넓어서 고음, 중음, 저음을 모두 낼 수 있고, 첼로만으로 멋진 앙상블을 들려줄 수 있다. '베를린 필 12 첼리스트'를 비롯해 첼로로만 이뤄진 악단이 꽤 많이 있다.

서울첼로오케스트라는 올가을에도 정기연주회를 연다고 한다. 바쁜 일상을 잠시 벗어나 가을의 시정이 듬뿍 담긴 첼로의 선율에 한 번쯤 마음을 맡겨도 좋지 않을까.


○ 편집ㅣ이언혁 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참여연대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참여사회>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쓴 이채훈 시민기자은 MBC 해직 PD입니다.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했습니다. 저서로는 <클래식, 마음을 어루만지다>, <클래식 400년의 산책> 등이 있고, 현재는 국민라디오에서 <클래식의 첫날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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