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점은 관중을 부르고 수비는 승리를 가져온다.'

농구계에서 오래도록 회자하는 유명한 명언이다.

최근 4·5년간 한국농구의 추세는 누가 뭐라고 해도 '수비'였다. 각 팀은 상대의 공격을 막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큰 장신선수를 선호했고, 다양한 수비전술을 통해 상대의 슛 실패를 유도했다. 물론 거기엔 선수들의 기량이 하향 평준화된 것도 한몫했다.

이렇게 수비중심의 농구가 되다 보니, 평균득점은 낮아져만 갔다. 팬들에게는 한국농구가 '저득점의 재미없는 경기'로 인식됐다.

그러나 다양한 제도 보완을 통해 절치부심한 2015~2016시즌은, 최근 몇 년간의 흐름과 달리 공격농구에 비중을 두는 팀이 나타나고 있다. 단신 공격수의 영입으로 10개 팀 평균득점이 79.1점으로 전년 대비 6점 가량 증가한 모습을 보인다. 팬들의 흥미 역시 조금씩 되찾아오고 있다.

단순히 득점만 많이 나온다고 해서 재밌는 농구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득점과 흥미의 상관관계를 무시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최근 몇 년간의 흐름을 깨고 다득점 경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화려한 공격진, 팀 득점과 성적 1위 동시에 노리는 고양 오리온

애런 헤인즈의 슛시도 지난 1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서울삼성 과 고양 오리온즈 경기에서 고양 오리온즈의 애런 헤인즈 가 슛을 시도하고 있다.

▲ 애런 헤인즈의 슛시도 지난 1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서울삼성 과 고양 오리온즈 경기에서 고양 오리온즈의 애런 헤인즈 가 슛을 시도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 시즌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손꼽히고 있는 오리온. 제2의 맥도웰로 불리며, 유니폼은 다르지만, 어느덧 한국생활 8년 차에 접어든 애런 헤인즈를 영입했다. 4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4쿼터만 되면 살아나는 '태종 대왕' 문태종도 불러들이며 오리온은 엄청난 화력을 예고했다. 그런 오리온이 이번 시즌 공격중심 농구의 선봉에 나서면서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현재(11월 1일 기준) 까지 오리온의 평균득점은 87.2득점으로 2005~2006시즌 대구 오리온스가 기록한 88.9득점 이후로 가장 높은 팀 평균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2팀으로 나눠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탄탄한 선수층의 깊이가 일조한다. 선수들의 체력을 비축해줌으로써 공격 성공률을 더 높이고 있다.

역대 공격농구를 표방하고 많은 득점을 올리는 팀들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했다. 많이 넣은 만큼 많은 득점을 허용했다. 이 부분 때문에 많은 공격 중심의 팀들이 끝내 '우승'이라는 두 글자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아직 리그 초반이긴 하지만, 오리온의 이번 시즌 기세는 우승을 넘어 통합우승까지 노리고 있다. 평균 실점이 78.4점으로 최소 4위에 올라와 있고 득실차액은 +10점에 가까울 정도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14승 2패로 단독선두를 달리고 있는 고양 오리온은, 2002~2003시즌 이후 13년 만의 우승에 한 걸음 더 다가서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주전의 줄부상과 같은 큰 악재가 생기지 않는 이상, 공격으로 관중들을 부르고 수비로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해 변화한 KBL, 그 선택의 결과는?

2014~2015시즌을 앞두고 쓰러져가는 KBL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10여 년 만에 다시 김영기 총재가 돌아왔다. 그는 다양한 제도변화를 통해 KBL의 부활을 모색했다.

그 다양한 제도변화의 대전제는 '득점력이 곧 팬들의 만족도'라는 논리에서 출발했다. 외국인 선수 선발제도변화와 출전 쿼터 확대는 모두 득점력 강화를 위한 시도였다.

처음엔 엄청난 비난 여론에 시달렸다. 외국인 선수의 출전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국내 선수들의 설 자리가 좁아진다는 뜻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장신 유소년 선수들의 인재풀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여론이 대다수였다.

또한, 단신 외국인 선수를 뽑기 위해 신장을 193cm로 제한한다는 내용의 제도변화는 실효성 논란에 직면했다. 과거 KBL을 호령했던 맥도웰 같은 언더사이즈 빅맨이 대세를 이루게 되면, 단신 득점자를 영입하면서 팬들에게 화려한 농구를 보여주기 위한 KBL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올해 7월, 이 제도가 적용되었던 첫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가 시행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펼쳐진 프로농구의 흐름을 보았을 때, KBL의 의도는 어느 정도 적중한 것으로 보인다.

모비스의 커스버트 빅터, KT의 마커스 블레이클리, 동부의 웬델 맥키네스처럼 언더사이즈 빅맨들이 호평을 받았다. 여전히 언더사이즈 빅맨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는 팀이 많지만, KCC의 안드레 에밋, 고양 오리온의 조 잭슨, 안양KGC의 마리오 리틀 등은 화려한 득점기술을 선보이면서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다만 조 잭슨 같은 경우는, 엄청난 탄력과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팀 내 다른 외국인 선수 애런 헤인즈가 워낙 존재감이 큰 탓에 출장시간이 적은 게 다소 아쉽다.

외국인 선수 출전 쿼터 확대는, 기대했던 대로 이번 시즌 득점력 강화에 큰 공을 세우고 있다. 애초 4라운드부터 2·3쿼터에 한해 외국인 선수 2인 출장으로 정해졌던 계획이, 이번 시즌 초 각종 악재와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인해 2라운드부터 당겨 시작됐다. 예고된 판도 변화는, 3쿼터의 중요성을 대두시켰다. 외국인 선수 두 명의 기량 차이가 크지 않고, 두 선수 간의 호흡이 뛰어난 팀은 3쿼터를 통해 추격의 기회를 살린다든가 승기를 굳히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줬다.

득점 또한 제도 시행 전 3쿼터 평균득점(38.2점)보다 7점 정도 늘어난 45점으로 외국인 선수의 동시투입이 득점력 향상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3쿼터에만 한해 시행되고 있는 외국인 선수 동시투입이 4라운드부터 2·3쿼터로 늘어나면 득점은 지금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다득점보다 중요한 팬들의 관심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득점력이 올라가고 단신 외국인 선수가 뛴다고 해서 KBL의 사라졌던 인기가 다시 돌아올까?'라고. 맞는 말이다.

이렇게 제도를 바꾸고, 공격농구를 도입하고, 명승부도 많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떠나간 팬들이 바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관중 수는 지난해와 비교하면 줄어들었다. 불법도박 혐의로 스타 선수들의 출전이 정지된 경기장은 다소 썰렁하다.

하지만 시즌이 거듭될수록 재미있는 농구, 화려한 농구를 보여준다면, 머지않아 배구에 빼앗겨버린 겨울스포츠의 대명사 자리를 다시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KBL이 이번 시즌을 앞두고 급하게 만든 캐치프레이즈, '깨끗한 승부, 진정한 농구'를 코트 안에서 구현해내는 것이다. 이를 빨리 실현하는 것이, 떠나간 팬들의 관심을 되찾아 올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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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태익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blog.naver.com/kti0303)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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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를 좋아하는 대학생입니다. 부족하겠지만 노력해서 좋은 내용 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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