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 1화 비하인드컷

▲ <송곳> 1화 비하인드컷 이수인은 조직적으로 군대 내에서 따돌림을 받는다. 그 혼자서 어찌할 수 없는 '정의'였다. ⓒ JTBC <송곳> 페이스북


JTBC 주말드라마 <송곳>이 지난 24일, 그 막을 올렸다. 이 드라마는 방영 전부터 제2의 <미생>으로 불리며 큰 화제를 몰고 다녔다. 드라마가 방영된 지난 주말엔 기사 발생률, 댓글반응 등을 토대로 한 온라인 화제성 지수(다음 소프트 기준)에서 1, 2위를 오르락내리락했다. 시청률 역시 2% 선(닐슨코리아 기준)을 기록해 종합편성채널 드라마치고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지난 두 편의 분량에서는 주인공 이수인 과장(지현우 분)이 푸르미 마트 정민철 부장(김희원 분)의 직원 해고 지시를 거스르고, 갸스통 점장(다니엘 분)으로부터 공개모욕을 당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정민철 부장의 '괴롭혀서 쫓아내라'는, 사직을 가장한 해고 지시에 이수인을 포함한 과장들은 최초에 함께 반발했다. 노동조합 가입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노동조합에 실제로 가입한 사람은 이수인뿐이었다.

이후 다른 과장들은 이수인을 멀리했다. 상사인 정 부장의 괴롭힘도 노골화되어갔다. 예상된 일들이다. 여기에 더해 점장까지 가세해 고객과 부하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이수인에게 '헤드록'을 걸며 망신을 줬다. 이 장면은 사실상 공개처형에 가깝다. 부하 직원들은 과장인 이수인 때문에 자신들의 앞길이 꼬였다며 이수인을 미워한다. 상사, 동료, 부하의 온 힘을 다한 왕따. 이수인이 정의의 편에 선 결과이다.

온힘을 다한 따돌림

드라마 <송곳>의 한 장면 주인공 이수인(지현우 분)의 거수 장면

▲ 드라마 <송곳>의 한 장면 주인공 이수인(지현우 분)의 거수 장면 ⓒ jTBC <송곳> 공식 페이스북


이수인은 어릴 적부터 '송곳'처럼 튀는 인물이었다. 항상 누군가의 걸림돌이었다. 고교 시절엔 촌지를 요구하는 선생님에게 매타작을 당하며 몸으로 맞섰다. 육군사관학교 시절엔 특정 후보를 찍으라는 고위간부의 회유를 정치개입이라며 3성 장군이 보는 앞에서 들이받았다. 그리고 도망치듯 군에서 나와 들어간 곳인 지금의 회사에서 다시 부당한 해고 지시에 맞서 정의의 편에서 고난을 자초한다.

사실 이수인이 학교, 군대, 회사를 거치며 한 선택들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들이다. 거창하게 정의라고 할 것까지도 없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을 그대로 실천하면 이수인처럼 담임의 촌지 요구를 들어줄 수 없게 된다.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라는 생도들이 수천, 수만 번씩 외치는 사관생도 신조를 현실에 옮기면 군의 선거개입을 묵과할 수 없게 된다.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라는 대한민국 헌법의 내용을 가슴에 새긴 이라면 (굳이 노동법까지 갈 것도 없이) 부당한 해고 지시를 따를 수 없게 된다.

이수인은 극 중 자신의 말처럼 "배운 대로 행"했다. 그런데 왜 배운 대로 행한 이수인에게 돌아오는 것은 매번 자학에 가까운 후회와 동료들의 따돌림인가.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글로 배우는 가르침과 몸으로 익혀야 할 처세가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알아차리며 컸다. 우리는 교과서의 여러 페이지에 걸쳐서 정의와 평등, 우정과 민주주의 등의 가치를 글자를 통해 배웠다. 하지만 친구들과의 시험 경쟁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무조건 이겨야 함을, 강자의 편에 서서 약자를 함께 짓밟아야 나의 안녕도 잠시나마 보전할 수 있음을, 인생살이의 긴요한 장면에서 몸을 통해 익혔다.

이러한 상황은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Gregory Bateson:1904∼1980)이 제시하는 '이중구속(Double bind)'의 상태와 흡사하다. 이렇게 하라고 하면서 동시에 하지 못하게 하는 상황. 베이트슨에 따르면 이 같은 상황은 개인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고 결국 조현병을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정의를 따르라고 하면서도 동시에 비겁과 굴종을 가르치는 현실에서, 후자의 처세법에 몸을 맡긴다.

해법

드라마 <송곳> 공식 포스터 드라마 <송곳> 공식 포스터

▲ 드라마 <송곳> 공식 포스터 드라마 <송곳> 공식 포스터 ⓒ jTBC <송곳> 공식 페이스북


몇 년 전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라는 도입으로 시작되는 낯 뜨거운 이야기 시리즈들이 유행했다. 요즈음 들어서는 아예 극우성향의 패륜·엽기 사이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욕망의 배설이 차고 넘치는 세상이다. 정의나 민주주의란 단어는 자주 조롱의 대상이 된다. 많은 이들이 속물이 되어서 느낄 자괴감보다 무능력자로서 겪게 될 자살 충동을 더 두려워하는 듯하다.

우리는 그 같은 두려움을 전부 이겨내고 모두 다 이수인이 되어야 하는 걸까? 이런 물음은 극 중 군의관의 말처럼 "대한민국을 너무 우습게" 보는 주장일 수 있다. 우리 사회가 학교, 군대, 회사 등의 단계를 거치며 사회화란 이름으로 주입한 강자 중심의 이데올로기는 생각보다 훨씬 공고하다. "대한민국을 너무 우습게" 본 자에게 가할 탈락과 배제의 기요틴은 언제나 서슬 퍼렇게 우리 목 뒤를 노리고 있다.

정의를 택한 다음 단계는 이수인이 드러내 보이듯 가시밭길이다. 실제로 웹툰 <송곳>의 원작자 최규석은 이수인과 구고신(안내상 분)의 이름이 두 주인공의 미래와 과거를 암시한다고 밝혔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하종강의 노동학개론>에 출연한 자리였다. 수인(囚人)은 옥에 갇힌 사람을, 고신(拷訊)은 고문을 뜻하는 말이다.

개인에게 감옥에 갈 각오를 하고 정의의 편에 서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수 있다. 더 현실적이면서도 본질적인 해법은 노동조합 조직과 가입 등 사회 차원의 연대이다. 사실 연대 이전에 정의, 아니 우리 헌법 정신이 보장하는 최소한의 상식을 개인이 선택할 때 해를 입게 되는 사회 분위기라도 우선 바꿔나가야 한다. 이를 위한 문화 차원의 재사회화, 재교육이 필요하다. 드라마 <송곳>에 기대를 거는 이유이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송곳 이수인 지현우 구고신 안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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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노무사. 반려견 '라떼'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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