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에이스 한 명의 존재가 어떻게 야구 경기를 지배할 수 있는지 보여준 승부였다.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가 지난 2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NC 다이노스를 7-0으로 제압하고 시리즈 전적을 2승 2패로 만들었다. 삼성이 기다리고 있는 한국시리즈 상대팀은 오는 24일 마산구장에서 열리는 최종 5차전에서야 판가름 나게 됐다.

양팀의 이번 플레이오프 시리즈는 선발 싸움에서 계속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1~4차전에서 모두 선발 투수들(두산: 더스틴 니퍼트, NC: 손민한, 재크 스튜어트)이 승리를 따냈다.

3일 만에 등판한 니퍼트, 무실점 역투

 휴식 3일 만에 다시 올랐음에도 4차전에서 7이닝을 2안타 6탈삼진 무실점의 역투를 거듭하며 팀을 위기에서 또 한 번 구해낸 니퍼트.

휴식 3일 만에 다시 올랐음에도 4차전에서 7이닝을 2안타 6탈삼진 무실점의 역투를 거듭하며 팀을 위기에서 또 한 번 구해낸 니퍼트. ⓒ 연합뉴스


그중에서도 군계일학은 단연 니퍼트다. 지난 1차전에서 무려 114구를 던지며 9이닝을 3피안타 2볼넷 6탈삼진 무실점으로 막고 완봉승을 달성했던 니퍼트는, 불과 휴식 3일 만에 다시 올랐음에도 4차전에서 7이닝을 2안타 6탈삼진 무실점의 역투를 거듭하며 팀을 위기에서 또 한 번 구해냈다.

두산은 3차전에서 NC에 2-16으로 완패하며 마운드가 거의 초토화 당하는 피해를 겪었다. 한 번만 지면 탈락하는 상황에서 당초 최종전으로 예상된 니퍼트의 등판 시점을 이틀이나 앞당길 수밖에 없었던 데다, 불펜의 지원도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 최상의 시나리오는 니퍼트가 오랜 이닝을 버텨주면서 완투하거나 불펜 소모를 최소화하며 마무리 이현승에게 직접 바톤을 연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일어났다. 니퍼트의 역투가 더욱 빛났던 것은 효율적인 투구 수 관리 덕분이었다. 3일만에 등판한 니퍼트의 한계 투구 수는 많이 잡아봐야 80~90개 내외였다. 이날 니퍼트가 7이닝을 끌고가는 동안 기록한 투구 수는 불과 86개. 가장 이상적인 이닝과 투구 수였다. 만일 점수차가 근소한 상황이었다면 무리해서라도 니퍼트를 완투까지 시켜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이날 리퍼트는 최고 구속이 154Km에 이르렀고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등 변화구의 제구력도 거의 완벽했다. 7회에 마운드에 올라 NC 나성범과의 승부에서 타자의 배트를 두 번이나 부러뜨리는 장면은 경기 마지막 단계에서도 니퍼트의 체력과 구위가 전혀 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그야말로 '일당백'이라는 표현이 딱 맞아떨어지는 활약이었다.

니퍼트는 올해 정규 시즌 부상여파로 20경기에 등판해 6승 5패, 평균자책점 5.10이라는 저조한 성적에 그쳤다. 니퍼트의 KBO 데뷔 이래 최악의 성적이었다. 더 이상 예전의 니퍼트가 아니라는 지적에서부터 다음 시즌 재계약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많았다.

하지만 포스트시즌 들어 니퍼트는 말 그대로 전성기의 '갓퍼트', '니느님'으로 화려하게 귀환했다. 장원준-유희관 등 토종 에이스들을 제치고 포스트시즌 팀 1선발로 낙점 받은 니퍼트는 넥센과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7이닝 2실점, 플레이오프 1, 4차전 합계 16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가을야구에서만 3경기 2승 평균자책점 0.78의 아트 피칭을 선보이며 경탄을 자아냈다. 그에게서 포스트시즌에 혼자 힘으로 팀에 우승컵까지 안긴 고 최동원이나 메디슨 범가너(샌프란시스코)의 데자뷔가 느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두산은 경기 종반 승기를 잡자 점수 차가 약간 여유 있는 상황에서도 마무리 이현승을 8회부터 투입하는 강수를 뒀다. 지난 14일 넥센과 준플레이오프 4차전 등판 이후 8일 만의 등판인 데다, 5차전까지 가더라도 23일은 하루 쉴 수 있기에 2이닝 이상을 던지는 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현승은 3안타를 허용하며 경기 내용에서는 조금 불안했지만, 그래도 끝내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넥센과 준플레이오프를 포함하여 4경기에서 1승 2세이브, 평균자책점 0으로 두산 불펜 중 가장 믿음직한 활약을 보였다. 두산은 2, 3차전에서 연달아 무너졌던 불펜에 휴식을 보장하면서, 마지막 5차전에서 총력전을 걸어볼 수 있는 여력까지 비축했다.

느슨해진 NC에 '정신력'으로 승리한 두산

 지난 22일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NC에 7-0으로 승리한 두산베어스.

지난 22일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NC에 7-0으로 승리한 두산베어스. ⓒ 연합뉴스


배수의 진을 치고 나온 두산은 전반적으로 이날 3차전 완승 이후 다소 느슨해진 NC보다 정신력에서 앞선 모습이었다. 두산은 니퍼트의 역투 외에도 부상 중이던 포수 양의지(4타수 2안타)가 4차전에서 선발로 복귀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플레이오프 들어 부진한 모습으로 집중적인 비난을 받았던 김현수(3타수 2안타 2볼넷)와 오재원(4타수 2안타 2타점 1득점)의 부활도 돋보였다.

전날 3차전에서 두산은 NC에게 마지막 3이닝 동안 11점을 허용하는 굴욕을 당했지만, 4차전에서는 두산이 6회 이후 3이닝간 7점을 몰아치며 받은 만큼 되돌려줬다. 큰 경기 경험이 풍부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두산다운 저력이 발휘된 장면이다.

반면 NC는 다분히 5차전을 의식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NC 선발 에릭 해커 역시 1차전에 이어 휴식 3일 만에 등판했지만, 구위는 니퍼트에 크게 못미쳤다. 5회까지는 무실점으로 버텼으나 이미 몇 차례 위기를 허용했고, 결국 6회에 뚜렷한 체력 저하를 극복하지 못하고 오재원에게 결승타를 허용하며 무너져내렸다.

해커가 NC 선발진의 에이스이고 1차전(4이닝 6피안타 2홈런 6탈삼진 4실점)에서 적은 이닝만을 소화했다고 하지만, 가뜩이나 포스트시즌 들어 부진하던 해커를 무려 93구까지 던지게하며 근근이 끌고간 판단은 결과적으로 현명하지 못했다. 투수력 소모가 두산보다 적었던 NC는 이민호, 김진성, 이재학 등 컨디션이 좋은 필승조들이 충분히 대기하고 있었음에도 과감하게 교체하지 못했다. 이것이 뼈아픈 결과로 돌아왔다.

정규시즌에서 다승왕(19승)에 오르며 맹활약했던 해커는 정작 포스트시즌에서는 유난히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LG와 준플레이오프 2차전까지 포함하면 포스트시즌에만 3경기에 선발 출전해 3패를 기록했고, 자책점은 7.11이다. 이 또한 포스트시즌 들어 명예 회복하고 있는 라이벌 니퍼트와는 정반대 행보다.

전날 19안타 16득점을 몰아쳤던 NC 타선은 4차전에서 다시 5안타 무득점으로 싸늘하게 식었다. NC는 3차전을 제외하면 3경기에서 영봉패 두 번에 2득점만 기록하며 두산 선발진의 구위에 철저하게 눌리고 있다. 5차전 선발인 장원준에게도 2차전에서 7이닝 무실점으로 묶인 데다, 유사시에는 두산이 니퍼트까지 불펜으로 구원 등판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니퍼트 공포증과 맞바꿔 불펜 소모를 아낀 것이 5차전에서 NC에겐 득이 될까, 독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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