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도>에서 영조 역의 배우 송강호가 16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작품 개봉일인 16일 오후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송강호는 왕이 아닌 아버지의 감정을 강조했다. 그는 '영조 대왕이 왜 그래야 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며 몰입했다고 했다. ⓒ 이정민


 영화 <사도>에서 영조 역의 배우 송강호가 16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무리 왕이라지만 영조 대왕 역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왕이 됐고, 마음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도를 보며 '내가 이렇게 고통스럽게 외롭게 왕좌를 지키고 있는데, 너만은 좋은 환경에서 완벽한 왕이 돼야 하지 않겠니'라는 생각을 했을 거다." 송강호는 자신이 분한 영조 역을 말할 때 꼭 "영조 대왕"이라고 표현했다. ⓒ 이정민


임오화변을 소재로 한 영화 <사도>에서 자식을 죽인 영조는 분명 공분을 살만한 캐릭터다. 역사적 평가는 차치하고서라도, 관객 입장에선 권력에 의해 죽임 당한 사도(유아인 분)에 감정이입할 여지가 크다. 영조 역을 맡은 송강호는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작품 개봉일인 16일 오후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송강호는 왕이 아닌 아버지의 감정을 강조했다. 그간 드라마 등에서 무수히 다뤄졌던 사도세자 이야기는 노론과 소론의 당파싸움 중심이었다. 영조는 그 안에서 노회한 정치인이자 권력욕에 눈 먼 야심가로 그려지기 일쑤였다. 송강호는 '영조 대왕이 왜 그래야 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며 몰입했다고 했다.

'인간 영조'의 복원

 뒤주에 사도를 가둔 영조.

영화 <사도> 속에서 영조가 뒤주에 사도를 가두는 장면. 송강호는 '영조 대왕이 왜 그래야 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며 몰입했다고 말했다. ⓒ 쇼박스

따지고 보면 영화로 사도세자 이야기가 등장한 건 60년 만이다. 1956년 안종화 감독의 <사도세자> 이후 제대로 영조와 사도를 조망한 영화는 없었다. 송강호가 처음으로 접한 사도세자 관련 작품은 목화극단의 연극 <부자유친>(1987)이었다. "이후 사도세자 이야기가 쏟아졌으나, 제대로 바라보진 않고 변주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그가 운을 뗐다.

이준익 감독의 연출 소식에 시나리오를 읽고 출연을 결정한 것은 결국 제대로 두 부자의 심리에 집중해서였다. '나랏일이 아닌 집안일의 이야기'이라는 영화의 관점을 따라 송강호는 "아버지로서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음을 말하려는 게 <사도>"라고 해석했다.

이를 위해 그는 영조의 외로움을 깊게 파고들었다.

"아무리 왕이라지만 영조 대왕 역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왕이 됐고, 마음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도를 보며 '내가 이렇게 고통스럽게 외롭게 왕좌를 지키고 있는데, 너만은 좋은 환경에서 완벽한 왕이 돼야 하지 않겠니'라는 생각을 했을 거다. 사료를 보면 자기 관리가 참 철저한 분이었다. 상차림도 매우 소박했고, 몇 십 년 간 한 벌의 의복만으로 지냈을 정도다. 이복 형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혹과 무수리 출신 후궁의 자식이라는 시선에서 해방되고 싶었던 거지.

거기서 오는 외로움을 표현할 수만 있다면, 제대로 영조 대왕을 그리는 거라 생각했다. 여기에 더해 (자신보다 총명한) 사도를 보면서 남자로서 열등감도 있었을 거다. 그래서 기이할 정도로 야단을 치고 신하들 앞에서 무안도 주었던 거겠지."

기존 작품에서 거세된 부정을 표현하는 게 송강호의 몫이었다. 대왕대비인 인원왕후(김해숙 분)에게 투정을 부린다거나, 신하들 틈에서 장난을 거는 모습 등으로 그는 영조의 인간미를 채워나갔다.

 영화 <사도>에서 영조 역의 배우 송강호가 16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외로움을 표현할 수만 있다면, 제대로 영조 대왕을 그리는 거라 생각했다. 여기에 더해 사도를 보면서 남자로서 열등감도 있었을 거다." 송강호에게 영조 역할의 핵심 키워드는 '외로움'이었다. ⓒ 이정민


세대 간 화해

 영화 <사도>에서 영조 역의 배우 송강호가 16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말미, 사도의 죽음을 보며 하는 내 대사가 뭉개진 장면이 하나 있다. 원래 정확한 대사는 '아이고 이놈아, 너는 어찌 이 늙은 애비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하느냐'였다." 송강호는 비록 이 대사가 영화에서는 뭉개졌지만, 영조의 심리를 표현하는 핵심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 이정민

역사와 영화 속 영조와 사도는 파국으로 달려갔지만, 송강호는 이 안에서 세대 간 화해와 소통의 정서도 읽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경제 발전이란 미명 아래 부모 세대와는 갈수록 단절돼 온 요즘의 우리에게 충분히 반면교사가 될 작품이라는 뜻이다. 그는 "40년 전 우리 부모 세대도 출세를 그렇게 강조했는데, 250년 전 유교 사상이 지배하던 조선은 어땠겠나"라며 "게다가 궁궐 안 서로 다른 거처에서 살았던 영조 대왕과 사도는 공간적인 면에서도 화해나 소통에 제약을 받았을 것"이라 말했다.

"영화 말미, 사도의 죽음을 보며 하는 내 대사가 뭉개진 장면이 하나 있다. 원래 정확한 대사는 '아이고 이놈아, 너는 어찌 이 늙은 애비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하느냐'였다. 대사가 잘 들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준익 감독이) 감정 자체를 관객에게 잘 전달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거 같다. 나도 동의한다. 비극의 상황에서 정확한 대사를 치는 것 자체가 어색하지.

사료를 보니 정신적으로 황폐해지고 기행을 일삼는 사도를 영조 대왕이 따로 불러서 타이른 적이 있더라. 마음 속 울화가 있어서 그렇다는 사도의 말에 영조 대왕은 '그래? 내가 널 서운하게 했구나, 앞으로 잘 하마'라고 답했다. 아마 말만 그렇게 하고 똑같이 행동하신 듯 하다. 물론 노력은 했겠지. 나 역시 아들이 있지만 실제로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곤 한다. 내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라 그런지 아버지로서 그렇게 살갑진 않은 거 같다(웃음)."

이 지점에서 송강호는 역사에 대한 흥미를 드러냈다. 근 3년 간 그가 택한 작품을 봐도 유추할 수 있다. 영화 <관상>(2013), <변호인>(2013), <사도>(2015)를 비롯해 현재 촬영 중인 <밀정>까지 역사와 시대를 넘나드는 과거 인물들이다. 가상의 관상가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조선의 왕을 지나 독립투사로 분한 그다.

송강호는 "다시 대학을 간다면 역사를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어떤 의무감이나 특별한 사명감 때문은 아니고 우리가 지나온 과거에 대한 호기심이 크다"며 "굵직한 사건보단 소소한 일들에 관심이 크다"고 덧붙였다.

"굵직한 사건보단 소소한 일들에 관심"

말을 다소 아끼는 모습이었지만, 역사에 대한 관심은 그가 연기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어 보였다. 평소 후배들이 고민을 털어놓거나 조언을 구할 때 그는 '시행착오를 인정하라'는 말을 종종 한다. "완벽함은 있을 수 없으니, 중요한 건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는 긴장의 끈"이라고 그가 설명했다.

"배우라는 직업이 뭐냐고 묻는다면 보여주는 직업이라고 말하곤 한다. 사람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감정과 인생의 결정적 순간을 영화를 통해, 연기를 통해 보여주는 거다. 잠시 잊고 살았던 그 느낌. 진심을 상기시키는 게 연기의 본질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특별히 역사적 사실이나 어떤 특정 배우에게 자극을 받거나 각성을 느끼진 않는다. 근데 이걸 바꿔 말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에 자극을 받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자극을 잘 표현했을 때 희열을 느낀다. 그 희열 때문에 계속 연기한다."


 영화 <사도>에서 영조 역의 배우 송강호가 16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사도>에서 영조 역의 배우 송강호가 16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송강호 사도 유아인 영조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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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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