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오피스> 세상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

▲ 영화<오피스> 세상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 ⓒ 영화사 꽃


영화 <오피스>를 보고 나오는 길에 가을이 묻은 바람이 불어왔다. 묘한 냉기와 함께 영화 속에서의 고아성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절망과 환희가 버무려진 표정. 집으로 향하는 많은 사람들을 태운 버스에 나도 몸을 구겨 넣는다. 내일 아침에 또 이 만원버스를 타야겠지. 또 한숨이 나온다.

회사 출근 카드를 찍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리는 이미례(고아성 분)는 식품으로 유명한 대기업 인턴사원이다. 정규직 전환만을 바라보며 잡다한 일들을 도맡아 하고, 알 수 없는 차가운 시선에도 꾸역꾸역 견디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녀의 부서에 낯선 이들이 찾아온다.

일과 가정밖에 모르던 김병국 과장(배성우 분)이 자신의 가족을 망치로 무참히 살해하고 종적을 감췄다. 그의 행방을 찾아 형사 종훈(박성웅 분)은 회사 동료들을 차례로 신문을 했지만, 이 사람들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CCTV에 찍힌 김병국 과장은 가족을 무참히 살해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오는 장면만이 찍혀 있고, 그 순간 회사는 엄청난 공포를 주는 장소로 바뀐다. 사람들이 영혼이 있든 없든 매일 출근을 하고 밥벌이의 지겨움을 견디며 살아내고 있는 바로 그 일상적이며 현실적인 공간으로서의 사무실이 말이다.

범행을 저지르기 전 김병국 과장은 반복되는 일과처럼 지하철을 타고 계단을 오르고 담담하게 가족들과 식사를 한다. 그가 회사에서 돌아갈 곳은 집이었지만, 자신이 더 이상 가정을 지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 현실에 부딪히자, 그는 자신이 일하는 이유이기도 한 가족을 살해하고 만다. 살인범이 된 그가 다시 돌아간 곳이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세상의 끝으로 몰아넣은 바로 그 사무실이었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진짜 회사에 뼈를 묻으러 간 것이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회사에 출근을 하고,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정규직만을 바라보고 "열심히만" 일하는 이미례도, 영업실적을 채우기 위해 부하직원의 상처는 안중에도 없이 닦달 하는 김상규 부장(김의성 분)도, "살기 위해 일하는 건지 일하기 위해 사는 건지 모르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회사를 나선 홍지선 대리(류현경 분) - 이 모두 '우리 주변에 있음직한 회사 동료의 모습'이다. 사실적인 직장의 모습을 담아 개봉 전 많은 주목을 받았고 제68회 칸영화제를 비롯한 해외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면서 한국판 현실밀착형 스릴러로 입소문을 탄 영화 <오피스>를 본 직장인들은 스스로의 회사생활을 돌아볼 수밖에 없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영화 <오피스> 사람들의 전부가 되어버린 오피스

▲ 영화 <오피스> 사람들의 전부가 되어버린 오피스 ⓒ 영화사 꽃


칼을 쥔 채 텅 빈 눈을 하고 사무실 자리에 앉아있던 김병국 과장은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남의 삶을 짓밟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알지만 회사를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자신도 회사의 비정한 사회적 사망선고(해고)를 당하게 되면서 절망감을 느끼게 되고, 지켜내야만 한다는 숨 막히는 의무감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가족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만다.

열심히 일 했기에 순탄하게 정규직이 되리라는 희망을 가진 미례 역시 새로운 인턴 사원이 부서에 들어오고, 부장과 선배들의 기울어진 마음을 알게되자 잠재되어 있던 악의 그림자에 잡아먹히게 된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해버린 것이다.

김병국 과장이 직장에서 해고되었다고 해도 나이든 노모와 장애가 있는 아들, 부인과 함께 닥쳐온 어려움을 잘 해결해나갔을 수도 있다. 새로 들어온 인턴이 아니라 성실하게 일을 해오던 미례가 정직원이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그저 현실에는 없는 핑크빛 미래일 뿐이라는 반론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세상이다.

당신의 마음 속 칼은 잘 있습니까?

영화<오피스> 당신의 마음 속 칼은 잘 있습니까?

▲ 영화<오피스> 당신의 마음 속 칼은 잘 있습니까? ⓒ 영화사 꽃


대리점주가 죽기 전에 김병국 과장에게 보내온 칼은 영화에서 우리 마음속의 분노를 상징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서랍 속 사표를 꺼내는 대신 지켜야 할 것들을 위해 자신의 한 켠을 분노에게 내어주고 가면을 쓰게 되는 우리 마음속의 칼 말이다.

같은 칼도 요리사가 들면 맛있는 음식이 나오지만 악인이 들면 남을 해치는 도구가 된다. 김병국 과장과 이미례가 저지른 살인이 끔찍하고 상상하기 싫은 일이지만, 반대로 그들이 벼랑 끝에 서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우리는 나지막이 이해할 수 있다.

영화 <오피스>는 귀신이 등장하는 영화가 아니지만,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라는 교훈을 남긴다. 철저한 자본주의에 성장만을 강요하는 전쟁터가 되어버린 사회 속에서 우리는 '인간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를 버리고 마음 속의 분노의 칼을 들거나 들게끔 하는 순간, 우리의 현실은 상상할 수없는 나락으로 떨어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우리 마음 속의 칼은 분노의 마음으로 갈아서는 안된다. 자칫 그것은 자신을 찌르게 되기도 하니까. 자신을 지키기 위해 불안이나 분노 같은 것들을 나로부터 잘라내는, 그런 칼로서만 존재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개인블로그에도 싣습니다 www,newlotus82.blog.me )
영화오피스 마음속의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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