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내내 정치적 시련을 겪은 탓일까. 20살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식 사회자로 선정한 배우들을 살펴보면, 영화제로서의 정체성만큼은 굳건히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원위회는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인 송강호와 아프카니스탄의 대표 여배우인 마리나 골바하리를 20회 개막식 사회자로 선정했다고 8일 발표했다. 지난 17회 때부터 시작된 국내-해외 배우 조합과 아시아를 대표하는 배우들을 선정하는 관례에 딱 부합하는 결정인데, 그에 더해 올해 선정된 두 사람에는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어 보인다.

 20회 부산영화제 사회자로 선정된 송강호. 천만 영화 <변호인>에서 부산지역 인권변호사 송우석역을 맡아 빼어난 연기를 선보였다.

20회 부산영화제 사회자로 선정된 송강호. 천만 영화 <변호인>에서 부산지역 인권변호사 송우석역을 맡아 빼어난 연기를 선보였다. ⓒ NEW


송강호는 명실상부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대표 배우다. <괴물> <설국열차> <관상> 등에서 빼어난 연기를 선보였고, 16일 개봉하는 기대작 <사도>에서 주연을 맡아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 자체로 이미 개막식 사회를 맡기에 손색이 없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이번 송강호 선정을 놓고 영화 <변호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천만 영화 <변호인>은 부산과의 관계성이 클 뿐 아니라, 내용적으로 볼 때 그가 맡은 인권변호사 송우석은 정치적 이유로 비인간적 고문을 당한 학생들의 편에서 활약하는 인물이다. 이는 상영의 자유를 압박당하며 정치적 시련을 겪고 있는 부산영화제의 상황과 은근히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 송강호의 사회는 지난 6회 때에 이어 두 번째다.

그의 파트너가 된 아프칸 여배우 마리나 골바하리 역시 마찬가지다.

마리나 골바하리는 아프칸에서는 유명한 배우지만 사실 국내에는 생소하다. 그간 개막식 사회자에 한국 배우 파트너로 중국-일본-홍콩 배우가 나섰던 흐름(안성기-탕웨이, 강수연-궈부청, 문소리-와타나베 켄 등)을 생각하면 아프칸 배우의 등장은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20회 부산국제영화제 사회자로 나서는 아프칸 여배우 마리나 골바하리

20회 부산국제영화제 사회자로 나서는 아프칸 여배우 마리나 골바하리 ⓒ 부산국제영화제


하지만 아프칸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세계적 위상의 아시아 대표 영화제인 부산영화제의 개막식 사회자로서의 갖는 의미는 상당하다. 아프칸은 1960년대 유럽 국가들보다 먼저 여성들이 투표권을 얻어냈고, 교사와 공무원 등에서 여성의 수가 절반이 넘는 등 여성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적 활동을 하던 국가였다. 그러나 탈레반이 장악한 이후 이슬람 근본주의가 맹위를 떨치면서 최악의 여성인권국가라는 평가를 받기에 이른다. 몇 해 전까지 여성의 지위가 가축과 비슷할 정도여서 '여성의 지옥'이라 불리기도 했다.

탈레반이 물러나면서 상황이 완화되기는 했지만, 지난 4월 국제엠네스티는 보고서를 통해 여전히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정부의 방관 속에 여성인권활동가들에 대한 협박과 성폭력, 암살 위협 등 폭력 행위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탈레반 무장단체의 소행이지만, 정부 관계자나 정부의 지원을 받고있는 강력한 지역 군벌 지도자들이 이런 폭력과 위협 행위에 관여하는 경우도 부쩍 늘고 있다는 것이 앰네스티의 지적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여성으로서 배우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자로 선정된 마리나 골바하리 역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온갖 위협을 받고 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배우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 부산영화제 측의 설명이다.

마리나 골바하리와 부산국제영화제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궁핍의 시절을 보내던 11살 때 시디그 바르막 감독의 눈에 띄어 <천상의 소녀>에 출연했고, 이 영화가 2003년 부산영화제 초청되면서 앳된 소녀의 모습으로 당시 부산을 방문했다. 이번에 사회자로 초청되면서 12년 만에 두 번째 부산을 찾는 마리나 골바하리는 약혼자와 함께 방문한다.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는 "그녀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박탈당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게는 희망이자 길잡이"면서 "부산국제영화제가 그녀를 올해 개막식 사회자로 초청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라고 밝혔다.

 20회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

20회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 ⓒ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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