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방영한 MBC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의 한 장면

지난 5일 방영한 MBC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의 한 장면 ⓒ MBC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영화 <침묵의 시선>에서, 1965년 인도네시아 군부정권 대학살 당시 형을 잃은 아디는 학살의 가해자들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수십년 전 자신들이 저지른 학살을 자랑스러워하던 가해자들은 그 때의 일을 거론하는 아디의 질문에 "어디까지나 지난 일"임을 운운하며, 더이상 묻지 말 것을 강요한다.

프로그램 방송 10주년, 그리고 광복 70주년을 맞아 해외 동포들에게 음식을 배달해 주기로 한 MBC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 특집(이하 <무한도전>)은 지난 5일 방송에서 일본 우토로 마을로 향했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일본 곳곳에 거주하고 있지만, <무한도전>이 그 중에서도 우토로 마을을 찾아간 이유는 명확했다. 우토로 마을의 주민들은 일제 강점기 시절 강제 징용된 이들과 그 후손들이다. 하지만 일본은 이 군국주의의 피해자들에게 보상과 사과는커녕, 불법 점거를 이유로 강제 철거 명령을 내렸다.

한국에서 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십시일반 뜻을 모아 도와준 덕분에 우토로 마을 주민들은 땅의 일부를 구입할 수 있었고, 생활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결국 우토로 마을은 개발 논리에 밀려 2년 뒤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고 한다.

현재 진행형인 이야기

 지난 5일 방영된 MBC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의 한 장면

지난 5일 방영된 MBC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의 한 장면 ⓒ MBC


1945년 광복을 맞고도 돈이 없어서 조국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우토로 마을 주민들에게 우토로 마을은 또 다른 고향이며, 삶의 터전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토로 마을 주민들은 일본 정부의 차별과 냉대 속에서도 지난 70년간 상하수도 시설미자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왔다.

이들의 모습을 보며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잊혀진 군대>(1963) 속 상이 한국인 병사들을 떠올렸다. 또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을 정당화하는 데엔 열중하지만, 정작 진상 규명 앞에서는 "지난 일"을 운운하며 회피하는 일본의 태도는 <침묵의 시선> 속 대학살 가해자들과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죽음과 전쟁의 상처는 있지만 책임은 없는 아이러니한 현실에서, 피해자들은 은연중 강요된 침묵을 지켜야만 했다.

일제 강점기 시절의 만행에 대해 아직까지 일본 정부는 진정으로 사과한 적이 없다. 무엇보다 일제의 잔재가 한국 내에서 말끔히 청산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민족이 겪은 트라우마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암살>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던 것은 바로 이를 보여주는 증거다.

하물며 일제 군국주의의 직접적인 피해자이며, 그 이후에도 한국과 일본 어느 곳에서도 완전히 정착하지 못한 채 힘겨운 나날들을 이어나가야 했던 우토로 마을 주민들의 과거를 그저 가슴 아픈 지난 일로만 흘려보낼 수 있을까.

이제 2년 뒤면 그동안 살았던 우토로 마을을 떠나야 하는 주민들에게 <무한도전> 유재석과 하하는 주민들 대부분의 고향이라는 경상도와 전라도 음식을 직접 만들어 대접하며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아픈 역사의 산 증인인 우토로 마을과 주민들을 다시 한 번 기억하게 했다.

역사 교과서가 응당 가르쳐 주어야 했으나, <무한도전>으로 자세히 알게 된 이야기. 이제야 알게 되어서 부끄럽고 죄스러운 마음에 하염없이 눈물만 흐르게 만드는 우토로 마을과 다음주 <무한도전>을 통해 본격적으로 거론될 하시마섬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며, 평생 기억하고 되새겨야할 역사다. 지난날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아프고 부끄러운 과거도 회피하지 않는 각성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지금, 시의적절한 물음을 제시한 <무한도전>은 광복 70주년에 꼭 필요한 특집을 보여 주었고, 강렬한 잔상을 남겼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진경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neodol.tistory.com),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무한도전 우토로 마을 배달의 무도 강제징용 하시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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