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전국학생종목별육상대회 세단뛰기 금메달 수상

2015전국학생종목별육상대회 세단뛰기 금메달 수상 ⓒ 강원체고 제공


국가대표 후보 현정이는 세단뛰기와 멀리뛰기 선수다. 홍천 석화초등학교 방과후 체육을 통해 시작했고, 강원체육중학교에 진학했다. 2012년 전국소년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체육고등학교에 진학하여서는 각종 전국대회 및 체전에 참가해 금메달을 따고, 청소년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우리 딸 기사 하나 써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같은 동네 사는 현정이 아빠가 농담처럼 말했다. 그때마다 우리 동네의 자랑이니 당연히 그러겠다고 대답했는데, 벌써 3학년이다. 내가 너무 게을렀다. 미안했다. 더는 미룰 수 없었다. 

며칠 전 강원체육고등학교에 취재 요청을 했다. 현정이는 경북예천에서 실시한 국가대표 후보 하계소집훈련에 참가하고 있었다. 9일 학교로 복귀한다는 설명이었고, 11일 취재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훈련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오전 10시 휴식시간에 맞춰가겠다고 약속했다.

아침부터 서둘렀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 때 가무잡잡한 얼굴만 생생하게 떠오르는데, 벌써 고등학교 3학년이란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참 밝은 아이였다. 특히 뛰어놀 때 보면 산골마을 골목대장이었다. 목소리도 항상 씩씩했다. 나는 큰 목소리로 인사 잘하는 현정이를 떠올리면서 춘천의 강원체육고등학교로 향했다.

육상부 한외석 감독님에게 현정이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8월 21일부터 23일까지는 강릉에서 열리는 문화체육관광장관배 전국 육상대회에 강원도대표로 참가하고, 24일부터는 제주도에서 열리는 한중일주니어종합경기대회에 한국대표선수로 출전한다는 일정표도 보여주었다.

"참 긍정적인 선수입니다. 승부욕도 남다르고, 성실하죠. 세단뛰기는 12m80cm, 멀리뛰기는 5m85cm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목표의식이 뚜렷한 선수이니까 대학에 진학하면 더 좋은 기록을 낼 것입니다."

현정이는 한국체육대학에 진학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당장 실업팀에서 스카우트 요청이 많이 들어오지만, 전문적인 지도를 더 받고 싶어 하는 현정이의 선택이었단다.

세계적인 종목인 양궁이나 태권도를 했으면...

 2015전국 학생종목별육상대회 세단뛰기 시상식

2015전국 학생종목별육상대회 세단뛰기 시상식 ⓒ 강원체고 제공


현정이는 아침 훈련을 마치고 친구들과 그늘에 누워 쉬고 있었다. 자기 이름을 부르자 벌떡 일어나는 현정이 얼굴은 어렸을 적 그대로였는데, 키가 커서 먼저 물었다.

"173cm예요."

내 시선이 탄탄해 보이는 다리 근육으로 옮겨갔다. 국가대표 도약 선수의 근육은 역시 달랐다. 우리 둘은 그늘을 찾아 앉았다. 어렸을 적 기억을 더듬으며 한참을 이야기했다. 강원체중 진학을 앞두고 고민하던 현정이 아빠와 엄마에게 조언해준 기억도 떠올랐다. 그래서 집을 떠나와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체육중학교에 진학한 것을 혹시 후회를 하거나 아쉬운 점이 있지는 않은지 물었다.

"후회는 안 해요. 잘한 거 같아요. 부모님께서 권했지만, 제가 선택한 것이잖아요. 그런데 중학교 때 교복을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것은 정말 아쉬워요."

딸아이를 키우는 아빠 입장에서 현정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달리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비인기 종목 선수로 활동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말해달라고 말꼬리를 돌렸다.

"솔직히 아직은 고등학생이니까 잘은 모르겠어요. 열심히 운동만 했으니까요. 그런데 가끔 세계적인 종목을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요. 제가 하는 종목은 솔직히 아시아권에서 경쟁하는 정도잖아요. 양궁이나 태권도 같은 종목은 우리나라 선수가 세계를 대표하잖아요. 하지만 괜찮아요. 제가 세계적인 선수가 되면 되니까요. 하하."

현정이의 말을 들으니 안타까웠다. 그래서 얼토당토않지만, 팔자 타령을 했다. 애초에 양궁부가 있는 학교나 태권도부가 있는 초등학교에 진학했으면 그 종목 선수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현정이가 다니던 석화초등학교는 특별하게 육성하는 체육종목이 없었던 것을 애써 설명했다.

"괜찮아요. 제가 양궁이나 태권도를 했으면 잘하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시상대에 태극기를 꼭 올리고 싶었어요"

 강원체육고등학교 멀리뛰기 세단뛰기 방성훈코치와 이현정선수

강원체육고등학교 멀리뛰기 세단뛰기 방성훈코치와 이현정선수 ⓒ 이종득


웃으면서 말하는 현정이가 나보다 어른 같았다. 그래서 국가대표 후보로 소집훈련에 참가하고 온 소감을 물었다.

"정말 좋아요. 합숙 들어가면 전국에서 잘하는 선수들 다 모이잖아요. 같이 운동하면서 격려도 하고, 경쟁도 하는데, 정말 긴장도 되고, 재밌기도 해요."

강원체고에는 같은 종목을 운동하는 선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늘 혼자 훈련하는데, 그래서 더 막막했던 때가 중학교 3학년 때였다고 현정이가 기억을 더듬었다.

"다행히 코치선생님이 정말 잘해줬어요.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선생님이 참아주시고, 다독여주셔서 지금까지 잘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속상하게 한 적도 많은데, 항상 제 입장에서 생각해주시고, 결정해주세요. 그리고 사모님도 현재 현역으로 뛰시는데 저에게 정말 잘해주세요. 제가 여자라서 그런지 사모님께서 신경을 더 써주시는 거 같아요."

현정이가 울컥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질문을 바꿨다.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참가하면 어떤 기분인지 물었다.

"처음에 국제대회에 나갔을 때, 다른 선수 시상식 장면을 보게 되었어요. 다음 날이 제 경기였는데, 태극기가 올라가는 것을 보니까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올라오는 거예요. 그래서 그날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잤는데요. 3등이라도 좋으니까 나도 태극기를 올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제 기록으로는 입상이 불가능했는데, 경기에서 제 기록을 깨면서 메달을 땄어요. 그때 정말 감동이었어요. 그래서..."

현정이 눈에 눈물이 살짝 고였다. 나로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그때 그 순간에 느낀 태극기에 대한 감동이 지금의 현정이를 키워낸 것이라 짐작할 뿐이었다. 나는 현정이의 말을 한참 동안 경청했다.

 문화체육관광장관배 대회를 앞두고 훈련중인 강원체육고등학교 육상부 선수들

문화체육관광장관배 대회를 앞두고 훈련중인 강원체육고등학교 육상부 선수들 ⓒ 이종득


현정이와 대화를 마치고 중학교 때부터 지도해온 방성훈 코치선생님을 만나 그동안 현정이를 지도하며 느낀 이야기를 들었다.

"강한 아이입니다. 승부욕이 남다릅니다. 작년에 멀리뛰기에서 2위를 했는데, 1cm 차이로 진 거예요. 정말 엉엉 우는데, 다음 날이 주종목인 세단뛰기 결승인데, 달래느라 엄청 혼났습니다. 그때부터 또 달라지더라고요. 성격이 워낙 긍정적인 아이라, 목표 설정이 되면 시행착오가 별로 없습니다. 정말 열심히 하는 아이라서 지도하면서도 큰 보람을 느낍니다. 부모님과 의논해서 한국체대에 진학이 결정되었는데요. 정말 잘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방성훈 코치님의 말을 들으면서 현정이가 정말 좋은 선생님을 만났구나, 생각 들었다. 인생에 있어서 좋은 은사님을 만나는 행운은 사실 흔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특히 운동을 통하여 꿈을 꾸는 학생 선수에게 지도자의 역할은 부모와 다를 바가 없다. 그것은 한때나마 복싱선수 생활을 한 내가 경험한 사실이다.

나는 국가대표가 되어 우리 동네의 자랑이 될 현정이를 잘 지도해주신 방성훈코치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현정이에게도 선생님의 가르침을 항상 마음에 담아두고 모범이 되는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헤어졌다. 그런데 학교를 졸업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졸업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당부도 꼭 해주고 싶어서 다시 현정이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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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강원체육 유망주 기사를 위한 체육 꿈나무를 찾습니다. 전국대회 우승 경력이 있는 학생 선수 추천을 받습니다.
이현정 강원체고 방성훈코치 한외석감독 세단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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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아재양념닭갈비를 가공 판매하는 소설 쓰는 노동자입니다. 두 딸을 키우는 아빠입니다. 서로가 신뢰하는 대한민국의 본래 모습을 찾는데, 미력이나마 보태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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