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et <쇼미더머니4> 포스터

Mnet <쇼미더머니4> 포스터 ⓒ CJ E&M


힙합이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는 장르가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힙합이라는 장르는 20여 년 전 천대받으면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홍대의 힙합 클럽에서 1세대 래퍼들이 공연하고, 믹스 테이프를 만들고, 팬층을 확대하며 하나하나씩 바닥부터 다져서 힙합이라는 장르의 기반을 잡아왔다. 가리온과 cb mass, 드렁큰타이거와 허니 패밀리, 조PD까지. 그들은 한국의 힙합 문화를 만들어 온 1세대다.

그중 일부는 오버에서, 일부는 언더에서 성공을 거뒀지만 힙합이라는 장르가 대중적으로 지금처럼 폭넓은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여전히 힙합 하면 '못 사는 애들, 사회에 반항적인 애들, 마약이나 하고 나쁜 짓이나 할 것 같은 애들'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들은 그런 시선을 뒤로하고 음악적으로 노력했고, 문화를 만들어 나가려 했다. 그들의 힘은 한국 힙합을 성장시킨 자양분이다.

이후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이 생겼고, 대중은 힙합에 환호했다. 이 프로그램은 힙합을 대중화시키는 것에 크게 기여했다. 힙합을 하면서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해준 프로그램이었다. 래퍼들이 꿈꾸던 미국 래퍼들의 '블링블링'을 따라 할 수 있는 계기이자 기회이기도 했다.

문제는 이 프로그램이 계속되고, 그 영향력을 점차 확대해 나가면서 발생했다. 이젠 래퍼라면 이 프로그램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힙합은 대중적인 음악이 됐고, 래퍼들이 원하는 것은 대중에게 사랑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욕할 일은 아니다. 당연한 일이다. 장르가 인정받지 못했던 시절이라면 장르의 자존심을 지키고 래퍼의 자존감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 중요했겠지만 장르가 대중화된 이후에는 대중을 쫓을 수밖에 없다. 시인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쇼미더머니>에 참가하는 래퍼를 후지다고 말할 수 없다. 그들에겐 더 많은 대중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한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광대가 되는 것을 마다치 않는 모습, 과거 천대받던 시절에 지켜왔던 래퍼로서의 자존감을 잃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꽤 씁쓸하다.

래퍼들은 <쇼미더머니>라는 틀 안에 들어와서 시스템을 욕하고, <쇼미더머니>를 욕한다. 그럴 수 있다. 그들의 목소리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중에게 들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자존감은 지키려 하는 것이다. 서출구가 얼토당토않은 사이퍼에 굴하지 않은 것처럼, 비록 탈락했음에도 <쇼미더머니>와 비즈니스 힙합에 대해 일갈한 P-type처럼.

그런 점에서 브랜뉴의 번복은 후졌다. 번복 자체가 후졌던 것은 아니다. 판단이 잘못됐다면 그럴 수 있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용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깨를 움츠리고 마치 죄진 것처럼 <쇼미더머니>라는 거대한 스테이지의 제작진에게 가서 애원하듯이 번복하는 모습은 확실히 후졌다. 시스템 안에서 잃어버린 자존감은 블랙넛의 랩으로 더욱 확실해졌다. '정치질. 대중으로부터 받을 비난에 쫀.' 블랙넛은 무너진 자존감에 총알을 날렸다.

물론 아쉬운 것은 그렇게 일갈해놓고 블랙넛도 다시 그 비즈니스의 스테이지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할 말 하고 나와 버렸으면 됐을 것을. 그 또한 <쇼미더머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모든 일의 가장 큰 문제는 <쇼미더머니> 제작진이다. 그들은 '쇼 앤 프루브'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힙합과 래퍼에 대한 조금의 리스펙트라도 있었다면 이런 장면을 화면에 내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이런 제안이 왔을 때, 단칼에 잘랐을 것이다. 힙합이 천대받던 시절에 1세대 힙합퍼들은 자존감 하나로 버텼다. 한국 힙합의 뿌리는 '딸내미들 따먹겠다'는 스웩이 아니라, 세상 모두가 우릴 무시해도, 우리는 세상에 대고 할 말 하는 아티스트라는 자존감이었다. 그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면 세상에 대해 일갈할 수 있었던 그 시인들이 세상에 들어가 어깨를 움츠리고 구걸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거나 쓰진 않았을 것이다. 그것도 몰랐다면? 자격 미달이라는 소리다. 알면서도 재미를 위해 그 상황을 방송한 거라면? '쇼 앤 프루브'따위는 애초에 없었단 얘기다.

힙합을 돈 되는 장르로 만들어 준 <쇼미더머니>가 이제 힙합을 구리게 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씁쓸하다. 세상은 변한다. 1세대 힙합이 지닌 한을 계속 이어갈 필요는 없다. 지금의 힙합은 지금의 힙합을 하면 된다. 그것이 피처링이든, 사랑 이야기든 상관없다. 힙합은 세상을 이야기하면 될 뿐이다. 하지만 힙합이 구려지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그들이 하는 사랑 이야기도, 그들이 하는 세상 이야기도, 블링블링도, 스웩도 앞으로는 모두 구린 것이 될 수 있다. 그때가 되면 힙합은 그저 돈놀이밖에 안 될 것이다. 리스펙트? 지금 이건 확실한 '디스'다. 더 이상 힙합을 구리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쇼 앤 프루브'를 보고 싶다.

쇼미더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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