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포스터.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포스터.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쥬라기 월드>를 넘어섰다. <터미네이터 제네시스>는 가뿐히 제쳤다. 올 여름 북미 박스오피스의 복병이자 1, 2위를 다툴 가능성이 높다. 영화전문지 <버라이어티>로부터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아이디어"라는 찬사를 얻어 냈다. 올해 제68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최초 공개돼 전세계 영화인들로부터 호평을 이끌어냈다.

9일 개봉한 <인사이드 아웃>에 쏟아지는 찬사는 전 세계적인 흥행 성공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 19일 개봉한 북미 오프닝 성적은 <겨울왕국>을 뛰어 넘었고, 8일까지 전 세계적으로 3억 7천만 달러라는 높은 수익을 기록 중이다. <토이스토리>와 <윌-E> 등 작품성과 감동을 모두 만족시켰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픽사의 걸작 등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다.

찬사가 과한 것 아니냐고? 절대 그렇지 않다.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이나 보는 영화라는 선입견을 이미 오래전에 깬 픽사다. 창립 30주년을 맞은 그 픽사의 15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은 성인들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을 성숙하고도 지적이며 짙은 감수성을 자랑하는 영화다.

헌데, 수사들이 무언가 혼재돼 있다는 걸 느꼈는가. 이 놀랄만한 애니메이션은 그 모든 것을 다 갖춘 채, 자신만만하지만 수줍게(영화를 보면 안다, 영화 속 캐릭터 기쁨과 슬픔의 그 수줍은 매력을) 한국의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고 있는 중이다. 믿어도 좋다. <인사이드 아웃>의 그 창의성과 상상력, 그리고 진한 감성을.

인간의 감정을 의인화하라! <인사이드 아웃>의 놀라운 상상력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한 장면.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토이스토리> 시리즈의 장난감들, <몬스터 주식회사>의 괴물들, <니모를 찾아서>의 물고기들, <월-E>의 로봇과 <카> 시리즈의 자동차들까지. <토이스토리> 이래, 픽사의 의인화 작업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의 세계는 언제나 우리에게 '인간'과 '삶'을 반추하게 만드는 감동을 선사해 왔다. 모든 완성도 높은 우화가 그렇듯, 사물에게 따스한 숨결을 불어 넣으면서 말이다.

픽사의 이번 선택은 '뇌'다. 그렇다. 말 그대로, 우리의 머릿속 말이다. 그 머릿속의 감정들을 정교하게 시각화하고 친근하게 인물화 했다. <인사이드 아웃>은 사람의 감정을 지배하는 주요 감정을 '기쁨'과 '슬픔', '버럭'(분노)과 '까칠'(짜증), '소심'(두려움)으로 선정한 뒤, 이 다섯 감정이 사람의 성격과 일상, 기억을 어떻게 지배하고 또 변화시키는지를 기발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도대체, 사람의 '감정'을 의인화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놀랍지 아니한가. 

<인사이드 아웃>의 다섯 감정이 애지중지 다루고 조종하는 주인공은 11살 라일리다. 애정 넘치는 부모 밑에서 태어나 아이스하키와 단짝 친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시골) 미네소타 소녀로 성장한 라일리. 이 사랑스러운 소녀는 그러나 아버지의 사업 차 낯선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게 되면서 예상치 못했던 '성장통'을 겪게 된다. 그러면서 다섯 감정, 특히 기쁨과 슬픔은 덩달아 바빠지는 동시에 역시 단 한 번도 겪지 못한 모험에 맞닥뜨리게 된다.

최초의 놀라움은 일단 아이디어에서부터 온다. 라일리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는 다섯 감정의 활동은 '감정 컨트롤 본부'로부터 비롯된다. <인사이드 아웃>은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이 본부에서 다섯 감정의 활약과 화약 작용으로 이뤄진다는 설정을 밀어붙인다.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구슬로 만들어진 '기억'으로 변환·저장되고, '장기 기억 저장소'로 보내짐과 동시에 '추억'으로 새겨진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영화 촬영 현장을 익살스럽게 패러디한 '꿈제작소'나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가둬놓은 기억의 감옥, 2차원 애니메이션의 급작스러운 도입으로 그 효과를 더한 '추상적 사고', 라일리의 주요 성격을 형상화한 '성격의 섬' 등 사고와 의식, 기억과 관계된 추상적 개념들을 <인사이드 아웃>은 경쾌하면서도 귀엽게 시각화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아이디어들이 구체적인 개연성과 논리성을 탑재한 채 이야기 속에 깊숙이 밀착돼 있다는 점이리라.

거부할 수 없는 '귀여움' 역시 '픽사표' 애니 <인사이드 아웃>이 지니는 장점 중 하나다. 말 그대로,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이 다섯 '감정' 캐릭터 디자인은 제작진의 세심한 배려가 특히 돋보인다. "축하 자리에서 샴페인을 따는 느낌"과 같은 '기쁨'이 대표적이다. '분노'는 불꽃으로, '소심'은 길고 마른 외양으로 형상화한 점도 특이하다. 우리의 희노애락을 3D 애니메이션으로 마주하는 기분은 확실히 특별하다.

아주 특별한 설정을 거쳐 다다르게 되는 '슬픔의 카타르시스'

 <인사이드 아웃>의 기쁨과 슬픔

<인사이드 아웃>의 기쁨과 슬픔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자본주의를 비롯한 서구 발전 근간을 모더니즘으로 규정하는데 이견이 있을 순 없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계몽주의와 이성주의 철학은 모더니즘의 토대를 마련해줬다. 반면, 피트 닥터 감독이 "시나리오 작업 과정에서 수많은 심리학자와 뇌과학자들에게 많은 조언을 구했다"고 밝힌 <인사이드 아웃>의 세계관은 분명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에 더 근접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유분방하고 계보화할 수 없을 정도로 독창적이며 혼성모방의 흔적까지 엿보이는 표현들 때문만은 아니다. 다섯 감정이 각 개인들의 사고를 지배한다는 설정 자체로 '탈이성주의'의 흔적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비록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비약하고 있는 뇌과학이나 신경심리학의 영향을 무시할 순 없지만, <인사이드 아웃>이 이런 철학적인 질문들이나 지적 호기심까지도 아우르고 자극하는 작품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라일리의 성장통 덕택에 가보지 않았던 머릿속 다양한 세계를 접하는 '기쁨'과 '슬픔'의 모험 과정은 이렇게 지적 자극을 동반한다. 물론 그게 다가 아니다. 애니메이션 장르의 특성을 잊으면 안 된다. 선의로 가득 찬 다섯 감정들의 활약, 그 중 '기쁨'의 활약은 그야말로 '대모험'에 가깝다. 뇌라는 신세계를 가로 지르는 모험도 있고, 액션신도 있다.

그 밖으론 라일리가 벌이는 행동과의 조응이 기다리고 있다. '기쁨'과 '슬픔'이 조종석의 자리를 비운 사이,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라일리는 우울함과 짜증,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한다. '기쁨'과 '슬픔'이라는 주요 감정이 배제되 버린 라일리는 평소 일상에서 탈주해 가출을 감행해 버린다. 그 사이, <인사이드 아웃>은 꽤나 유의미하고 감동적인 결론에 다다른다. 바로 '슬픔'의 재발견이다.

라일리, 아니 '기쁨'은 모험의 끝에 항상 민폐를 끼치는 것처럼 비춰졌던 (우울을 포함한) '슬픔'이 사실은 꽤나 솔직하고 꼭 필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부모에게, 친구에게 자신의 내밀한 속내를 꺼내 보이고 다독임을 받을 때, 그 기억을 끄집어 낼 때 감정은 한층 성숙해지고 관계 역시 돈독해지는 것이다.

<인사이드 아웃>이 과거의 기억을 꺼내 들어, 이 '슬픔의 카타르시스'를 시각화하는 장면은 잊지 못할 감동의 순간을 선사한다. 그것이 11살 소녀의 현재이기에, 부모와 친구와의 관계이기에 성인 관객들 역시 자신의 특정 경험을 반추하게 된다. 보편성의 힘이 증명되는 순간이랄까. 꽤나 지적인 물음까지 담보하는 이 애니메이션은 그렇게 아주 특별한 설정을 거쳐 감정의 힘을 강조하고 관계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결론에 다다른다.     

픽사의 크리에이터들이여, 계속 철없는 피터팬으로 남아 주기를  

 픽사의 대표작 <토이스토리>의 캐릭터들.

픽사의 대표작 <토이스토리>의 캐릭터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내 모든 영화는 사람간의 관계가 영화의 중심"이라는 피트 닥터 감독은 지난달 26일 국내 언론과 가진 화상 인터뷰에서 슬픔이란 감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초반부 '슬픔'이 민폐 캐릭터로 비춰지는 것 역시 서서히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설정이었다는 것이다. 이 슬픔의 긍정에 대한 대목은 왜 픽사의 작품들이 성인과 아동층 모두에게 사랑 받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단초가 되어 준다.

"캐릭터들이 어떻게 서로 관계를 맺는가에 관심이 많다. 처음엔 상충하고 갈등을 빚지만 접점을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기쁨'과 '슬픔'도 갈등을 빚는다. 사람들은 감정의 많은 부분을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정도 분노나 짜증, 두려움이 필요할 때가 있지 않나. 가족, 친구들의 그 감정들을 알아가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관계를 만들어가며 성장한다. 공동체 내 많은 사람들과 감정을 나눌 때 우리의 삶도 비로써 풍부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세심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인사이드 아웃>은 우리에게 부모와 자식, 친구 등 '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완벽히 새롭게 창조해낸 머릿속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통해 눈물 한 방울을 쏙 빼며 생을 돌아보게 만드는 픽사의 힘, 실로 놀랍지 아니한가.

피트 닥터 감독은 "픽사의 직원들이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 요소들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간직하려 하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동심의 세계를 영유하면서도 오롯이 인간의, 인간 관계의 본질을 탐구하는 픽사의 작업이 아무쪼록 오래오래 힘을 간직하기를. 그리고, 픽사의 크리에이터들이 영원히 철이 들지 않기를.

인사이드아웃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