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영진위를 항의방문한 영화단체 대표자들이 김세훈 위원장 등 영진위 실무진들에게 영화계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있다.

지난 16일 영진위를 항의방문한 영화단체 대표자들이 김세훈 위원장 등 영진위 실무진들에게 영화계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있다. ⓒ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영화진흥위원회는 듣겠다는 입장이었고 우리는 최종 입장을 전달하러 간 자리였다. 요구사항을 전달했고 소통하겠다는 의사를 보였으니 어떤 행동이 나오는지 지켜볼 거다. 최소한 요구사항에 대해 우리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면 이후 모든 대화 채널은 닫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독립예술영화관 운영사업 문제와 부산영화제 지원금 삭감 등을 항의하기 위해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이은 대표와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최은화 대표, 영화단체연대회의 이춘연 대표 등 영화단체 대표자들이 지난 16일 부산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 함께 한 영화단체 관계자는 18일 전화통화에서 "이날 방문이 사실상 최후통첩을 전하는 형식의 자리였다"며 "영진위의 반응에 따라 대응 수위가 높아질 수 있음"을 강조했다.

올 초부터 이어지고 있는 영진위와 영화계의 갈등이 분기점에 다다른 모습이다. 독립예술관 사업을 비롯해 영화제 상영작에 대한 검열 논란, 부산영화제 지원금 삭감 등 일련의 상황들에 대해 영화단체 대표자들이 영진위와 직접 얼굴을 맞댔기 때문이다. 영화계가 그간 기자회견이나 성명서 형식으로 영진위를 압박했다면 16일 항의방문은 직접 이야기를 전달했다는 점에서 무게감이 실린다.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영화단체들이 밝힌 요구조건에는 최근 현안에 대한 영화인들의 인식과 해결 방향이 담겨 있다. 세 가지 핵심 요구 사안은 ▲문화부 장관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논란이 일고 있는 사업의 원상복구 및 중장기 영화진흥방안 제시, ▲논란 있는 사업의 담당 실무자의 문책 및 예산 미집행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방치한 김종국 부위원장의 사퇴 등이다.

영화계가 문화부 장관의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한 것은 최근 현안이 문화부의 지침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단체의 한 대표자는 "영진위 측은 공식적으로 절대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문화부뿐만이 아닌 그 윗선에서 개입했다는 게 대부분의 생각 아니냐"고 말했다. 영진위가 단독으로 결정해 논란을 만들어 낸 사안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보수진영의 한 영화인도 이 같은 영화계의 시선에 동의하며 "영진위는 시키는 대로 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김세훈 영진위원장은 예전 조희문 전 위원장과 같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희문 위원장은 자기 생각대로 밀어붙이다 논란을 야기한 측면이 있다면 김세훈 위원장은 위에서 시키는 일만 잘하는 성향"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영진위원장에 대한 책임은 한발 뒤로 미룬 모양새다. 영진위원장에게 '논란이 생긴 사업의 원상복구와 중장기 진흥방안을 제시하라'는 요구만 전달한 것은 조금 더 지켜보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김세훈 위원장은 서자, 김종국 부위원장이 적자"

 지난해 12월 영진위원으로 임명돼 임명장을 받고 있는 김종국 영진위 부위원장(우측)

지난해 12월 영진위원으로 임명돼 임명장을 받고 있는 김종국 영진위 부위원장(우측) ⓒ 문화체육관광부

하지만 대신 김종국 부위원장의 사퇴와 실무자들의 문책을 요구한 것은 소모적 논란을 일으킨 데 대해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는 영화단체들의 의지가 담겨 있다. 영화계에서 논란을 일으켰거나 자격에 의구심이 있는 인물들이 영진위원에 임명되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도 내포돼 있다. 영진위의 영진위원 3명은 오는 8월말 임기만료로 교체될 예정이다. 

아울러 이러한 요구가 이행되지 않을 시, 영진위원장을 비롯한 9인 위원회의 총사퇴,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사퇴를 요청할 것임을 밝혀 향후 대응 방안을 예고했다. 최소한의 성의마저 보이지 않을 경우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전개하겠다는 각오다. 3명의 영진위원 교체에 대해서도 그만큼 영화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영화단체들의 요구 중 가장 주목할 부분은 부산국제영화제 예산 삭감 등과 관련해 김종국 부위원장을 정조준 했다는 점이다. 김 부위원장은 이명박 정권 당시 영화계 갈등을 유발했던 문화미래포럼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2010년 영화계가 독립영화관과 영상미디어센터 운영자 공모 심사의 부정 논란으로 영진위와 심각하게 대립할 당시에는 영상미디어센터 소장을 맡았었다.  

이 때문에 지난 연말 영진위원에 임명되면서부터 부적격 인물이라는 지적이 나왔고, 본인의 강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실세라는 설이 파다했다. 부위원장으로 사전 내정됐다는 소문은 실제 상황이 됐다. 이번 부산영화제 지원금 삭감에서도 심사위원장으로서 배정된 예산을 불용처리하게 만들면서 사실상 영진위 실세라는 주장은 굳어지는 분위기다. 영진위 주변에서도 "김세훈 위원장은 서자고 김종국 위원장이 적자 아니냐"는 자조섞인 우스개 소리가 나오고 있을 정도다.

이에 대해 김 부위원장은 "내가 무슨 힘이 있냐"면서 "전혀 사실과 다른 억측일 뿐이고, 온갖 오해가 몰리는 것이 억울하다"는 입장이지만 영화계가 퇴진 요구를 공론화시킴에 따라 구석으로 몰리는 분위기다. 예산 불용에 따른 책임을 져야할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킬 경우 실세임을 입증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영진위 내부에서는 영화단체들이 실무 책임자들에 대한 문책까지 요구한 것에 대해 일부 직원들의 동요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영화계의 요구에 서운해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그런 강한 성명을 내면서 직원들까지 언급할 이유가 있었냐는 것이 내부적인 분위기"라고 전했다. 

영진위 측은 "영화단체의 요구에 대해 의견 수렴 등을 준비하고 있다"며 "실무부서 등을 중심으로 중장기 정책 방향 등에 대해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단 영화계와의 소통하겠다는 자세다. 그러나 상급 기관의 지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현실에서 윗선의 눈치 보기 없이 독자적인 판단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따라서 김종국 부위원장의 자진 사퇴와 실무자 책임자 문책이 소통과 대립의 기로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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