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나하시 아츠시 감독의 영화 <핵의 나라 2(Nuclear Nation II)>는 일본 후쿠시마현에 위치한 후타바 지역 주민들을 추적한 다큐멘터리다. 2011년 3월 11일 일본에 대지진과 쓰나미가 덮치고, 원자력 발전소가 파괴된 이후의 삶을 소재로 다루었다.

방사선 누출 피해로 후타바 마을은 출입 제한 지역으로 지정된다. 수만 명의 주민들은 후쿠시마 바깥으로 250km 거리에 떨어진 피난소로 대피한다. 난민 일부는 임시로 건설한 컨테이너 가옥에서 생활하고, 1400여 명의 사람들에게는 사이타마의 폐교된 고등학교 4층 건물이 숙소로 마련된다.

원전사고가 낳은 자국 피난민의 고단한 삶

 영화 <핵의 나라2> 중 한 장면. 일본 후타바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제한구역이 된 고향을 떠나 피난민 신세가 된다.

영화 <핵의 나라2> 중 한 장면. 일본 후타바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제한구역이 된 고향을 떠나 피난민 신세가 된다. ⓒ 서울환경영화제


영화 <핵의 나라 2>는 피난소에서 도시락을 배급받는 중년 여성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밥과 반찬, 젓가락을 두 벌씩 박스에 받아서 향한 곳은 고등학교 건물의 미술실과 체육관이다. 초라한 밥상에서 삼각김밥 등으로 겨우 끼니를 해결하고, 몇 겹의 이불을 덮고서 불편한 잠을 잔다. 창가에는 빨래가 어지럽게 널려 있고, TV에서는 사고 소식을 다룬 뉴스가 건조하게 흘러나온다.

도무지 사람이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피난소. 그곳에서의 삶은 3년이 넘도록 계속된다. 카메라는 묵묵히 1111일 동안 자국을 떠도는 피난민의 모습을 촬영했다. 가족과 집을 잃은 이들의 고단한 일상은 모두 원전 사고가 낳은 비극이었다.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망가진 것은 마을과 이웃 공동체도 마찬가지였다. 식료품과 섬유 염색 가게, 정육점을 운영하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 터전을 잃었다. 작지만 평화롭던 마을은 순식간에 박살이 났고, 모두가 일손을 놓은 채로 피난소에서 무기력한 시간을 보낼 뿐이다.

마을 복구를 요구하던 정장(지역 자치단체장)은 지역 의회에 의해 해임되고, 주민들의 의견은 정치권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주민이 항의 차원에서 의회를 방문해보지만, 배·보상 문제만 변명같이 거론될 뿐이다. 정작 마을 복원을 위한 구체적 방안은 좀처럼 진행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화가 난 주민은 의원들에게 "당신 같은 사람을 뽑는 게 아니었어" 하는 탄식을 뱉으면서 피난소로 돌아온다.

폐허가 된 마을로 2시간 동안의 귀향

 영화 <핵의 나라2> 중 한 장면. 일본 마을 후타바를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다. 마을의 부흥을 가져왔던 원전은 후쿠시마 사태로 파괴되면서 마을을 폐허로 만든다.

영화 <핵의 나라2> 중 한 장면. 일본 마을 후타바를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다. 마을의 부흥을 가져왔던 원전은 후쿠시마 사태로 파괴되면서 마을을 폐허로 만든다. ⓒ 서울환경영화제


<핵의 나라 2>는 모래시계처럼 서서히 쏟아지는 3년의 시간, 그동안의 피난생활을 스크린에 풀어낸다. 도무지 상황이 나아질 것처럼 보이지 않던 와중에 정부에서는 주민들 중 일부에게 '2시간 동안의 귀향'을 허가한다. 영화 중반, 카메라는 몇 년 만에 고향 후타바를 다시 찾은 사람들을 비춘다.

누출된 방사능 제거 작업을 어느 정도 마쳤지만 마을은 여전히 폐허가 된 상태였다. 수백년 동안 대를 이으면서 살아온 기와집은 무너져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평생을 바친 가게는 먼지와 쥐똥으로 뒤덮여 있다. 무덤의 묘비들은 모두 휩쓸려 구석에 쌓여 있다. 대지진 이전에 죽은 남편의 영정 사진을 끌어안고 "(두고 가서) 미안해요" 하고 읊조리는 할머니의 모습은 애절한 상황을 압축한다.

"불행한 유산입니다."

새로 선출된 신임 자치단체장이 마을에 위치한 제1원자력 발전소를 두고 한 말이다. 그와 동행한 주민들은 방진복을 입고, 평생을 산 마을 거리에 서서 마을의 상점가를 바라본다. "여기서 저녁마다 회식을 했다"며 "저 가게의 고로케가 맛있었다"고 추억하는 표정에서 씁쓸함이 배어나온다. 평온하던 시절은 무너진 건물의 잔해처럼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남았다.

1960년대까지 작은 농촌마을이던 후타바는 원자력 발전소 유치를 제안받으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세금 감면 혜택과 거액의 정부 보조금이 투입되면서 지역 경제가 활성화된 것이다. 청년들도 도시로 떠나지 않으면서 인구도 불어났고, 발전에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주민도 늘어났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하자 원전은 한순간에 마을을 황폐한 유령도시로 만들었다. '불행한 유산'이라는 표현처럼, 한때 지역의 부흥을 이끌던 시설은 이제 죽음만을 가져오는 방사선 유해물질로 마을의 흔적만 남겼다. 영화는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 같은 잔해 사이에서 갈 곳 없이 방황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담았다.

대참사로 떠올린 질문,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영화 <핵의 나라2> 중 한 장면. 일본 후타바 지역 주민들은 2011년 대지진 이후 고향을 떠났다. 사진은 방사선 누출로 폐허가 된 후타바를 다시 찾은 주민의 모습.

영화 <핵의 나라2> 중 한 장면. 일본 후타바 지역 주민들은 2011년 대지진 이후 고향을 떠났다. 사진은 방사선 누출로 폐허가 된 후타바를 다시 찾은 주민의 모습. ⓒ 서울환경영화제


주민들이 다시 찾은 후타바에선 찢긴 일장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주민들은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하고 1000일 동안 피난소에 방치된 상황에 분노했다. 무엇보다도 정부의 무관심이 그들의 소외감을 키웠다는 얘기였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3년, 방사선 제거 작업이 어느 정도 이뤄지자 일본은 피난민들에게 새로운 거주 지역으로 이주할 것을 지시한다.

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사실이 뒤따른다. 도쿄전력이 지은 핵발전소로 인해 발생된 폐기물도 후타바 지역에 저장한다는 발표가 나온 것이다. 주민 일부는 폐기물 중간저장시설에 밀려 살던 집을 포기하고, 땅을 건설 부지로 내어줘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보상금은 턱없이 부족해서 새로운 집을 지을 비용으로 쓸 수도 없다.

생산된 전기도 모두 대도시로 송출되는 것이었는데, 피해와 뒤처리도 모두 지역 주민들의 몫이라는 소식에 후타바 생존자들은 허탈한 반응을 보인다. <핵의 나라 2>를 살펴보면, 주민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돌아온 것은 사회의 싸늘한 외면뿐인 현실을 확인할 수 있다. 임시 피난소로 쓰인 고등학교는 주민들이 청소한 뒤 다시 사이타마현에 반납했고, 심지어 소 300여 마리를 살리겠다며 사고 이후에도 마을을 지킨 농장주도 있다.

결국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참사 이후,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물음이 떠오른다. '원전은 안전하다'던 정부는 사고 이후 침묵으로 일관한다. 팽창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핵에너지가 우리에게 안겨줄 것은 과연 안락함뿐인지, 영화 <핵의 나라 2>는 우리의 믿음을 다시 돌아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 편집ㅣ최규화 기자


덧붙이는 글 다큐멘터리 영화 <핵의 나라 2>는 2015년 제12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상영된 작품입니다.
서울환경영화제 핵의 나라2 원자력발전 후쿠시마 사태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