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동물 사육에 관한 프로그램 중 매우 유명한 것으로 <도그 위스퍼러>라는 것이 있다. 멕시코 출신 반려견 행동전문가인 시저 밀란이 그 주인공인데 그의 개들에 대한 행동교정 방식은 주로 강력한 카리스마가 바탕이 되며, 그 내용에 있어서도 사람과 동물, 동물과 동물 간의 서열 정립을 위한 강한 리더십 확립을 주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한 훈련 방식에 대해서는 찬탄의 소리도 많지만, 비인도적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가 개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그 주인들에게 일관되게 하는 말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것은 바로 '에너지'에 관련된 것인데, 결국 센 에너지를 발산하는 쪽이 공간을 지배하게 되고, 그것에 반드시 굴복하는 이가 생기며 자연스레 서열이 생기게 된다는 것.

'풍문으로 들었소' 공식 포스터.

▲ '풍문으로 들었소' 공식 포스터. ⓒ SBS


누구의 에너지가 강한가...철새 같은 등장인물들

비록 한사람의 예를 든 것이긴 해도 SBS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의 권력관계를 살펴보면 에너지에 관련된 시저 밀란의 의견이 그리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드라마 속에 한껏 고착화된 갑과 을의 관계를 들여다보고, 또 앞으로 그것이 전복되고 와해될 과정을 유추해 본다면 말이다.

시저 밀란이 개들을 훈련시키고 그들을 복종하게 만드는 과정은 한인상(유준상 분)을 비롯한 드라마 속 인물들의 그것과 비슷하다. 개와 인간이 동급이냐며 발끈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에너지 발산의 정도가 서열정리의 수단이 된다는 것,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개와 인간의 모습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반론의 여지가 별로 없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강한 에너지를 내뿜는 이는 두말할 것 없이 한정호다. 그의 사무실 직원들, 그리고 아내인 최연희(유호정 분)의 친구들인 지영라(백지연 분), 송재원(장호일 분), 엄소정(김호정 분) 등도 시시각각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쪽으로 철새처럼 이동한다.

최연희는 상대적으로 약한 기를 발산하지만, 날 때부터 주어진 뛰어난 조건들 덕분에 많은 이들의 굽신거림을 받는다. 카리스마는 부족하지만, 그 모자람을 커버해 주기에 충분한 엄청난 외적 조건들은 그의 큰 무기다. 돈과 지위가 곧 권력이며 에너지라는 얘기다.

'풍문으로 들었소' 서서히 변해 갈 고아성의 행보는 큰 흥미거리다.

▲ '풍문으로 들었소' 서서히 변해 갈 고아성의 행보는 큰 흥미거리다. ⓒ SBS


드라마 속 역학관계 찾는 재미...카리스마가 중요하다?

시종일관 계속되는 권력싸움, 관계는 덧없게만 느껴지고 소모적인 인간관계만 보인다. 그런데 이제 그 권력관계를 전복하려는 이가 나타났다. 바로 서봄(고아성 분)이다. 그는 타고난 외적 조건은 볼품없지만, 적어도 공간을 지배할 수 있는 에너지만큼은 타고난 듯하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이 '굴러온 돌'은 최연희의 비서 이선숙(서정연 분)을 비롯한 주변인들의 기선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풍문으로 들었소>의 제 2막을 알리는 중요한 신호가 된다. 바야흐로 을의 반란이 시작된 걸까. 권력의 맛을 알아가며 서서히 변해갈 서봄의 행보는 이 드라마의 긴장감과 재미를 위한 큰 축이 될 터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런 서봄의 움직임에 별다른 긴장감이 실리질 않는다. 그것은 그의 주변에 시부모와 남편 한인상(이준 분)은 물론, 한결같이 '괜찮은' 사람들만이 포진된 탓이다. 하물며 힘센 이들의 곁에 붙어 '가진 자 코스프레'를 하는 이들도 찾기 힘들다. 그러고 보면 서봄은 운이 무척 좋은 사람인 듯하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하지만 물밑은 아직 어둡다. 언제, 누가 그 관계를 어그러뜨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계기만 생긴다면 바로 역전될 수도 있으니까. 그러한 역학관계에 무작정 뛰어드는 것은 자칫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는 일이다. 그것을 견뎌 낼 힘이 없다면 차라리 방관자로 머무르는 것이 백번 나은 선택일 터이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서봄의 언니 서누리(공승연 분)가 그 관계에 무작정 뛰어들었다. 동생에 대한 질투심, 그리고 잠시 누린 돈과 권력의 맛도 그 무모함에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동생에게 태생적으로 주어진 강렬한 에너지가 없다. 그리하여 뭔가 가혹한 대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느낌. 두려운 순간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팽팽한 긴장감만을 주지는 않는다. 그 아슬아슬함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추억과 아스라한 연민을 가진 이들을 발견한다. 한인상과 서봄의 아버지 서형식(장현성 분)의 만남. 두 사람은 술잔을 기울이며 서봄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토로한다. 그들의 기억은 순수했던 날들의 서봄의 모습에 박제되어 있고, 그들을 사로잡는 것은 서서히 변해갈 무언가에 대한 서러움과 아쉬움이다.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드라마를 계속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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