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2015시즌 치열한 6강 플레이오프 혈전을 펼치고 있는 프로농구 서울 SK와 인천 전자랜드에는 한국 무대에서 오랫동안 활약한 장수 외국인 선수가 유독 많다. 특히 SK 애런 헤인즈와 전자랜드 리카르도 포웰은 홈팬들 사이에서 웬만한 국내 선수 이상의 사랑을 받는 '프랜차이즈급' 선수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선수들은 다음 시즌 현 소속팀에서 뛸 수 없다. 프로농구연맹(KBL)은 외국인 선수의 재계약 기한을 최대 3년까지로 규정하고 있다. 특정 팀의 전력 불균형을 막기 위한 장치라고 하지만 사실상 외국인 선수가 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가로막는 불합리한 규정이 아닐 수 없다. 다른 구단과 계약을 맺으면 이전 소속팀에서의 연봉 인상 등도 모두 KBL이 정해준 기준에만 맞춰 백지 상태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더구나 KBL은 다음 시즌부터는 연차에 상관없이 모든 외국인 선수에 대해 기존 소속 구단과 재계약 없이 백지 상태에서 전면 드래프트를 실시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이 경우, 물론 확률적으로는 기존 소속 구단에 다시 돌아갈 가능성도 있지만, 추첨을 통해 우선 선발권이 주어지는 만큼 원소속 팀에게까지 기존 외국인 선수들을 다시 뽑을 지명권이 돌아올지 장담하기 어렵다.

새 규정상 장·단신을 구분해 외국인 선수를 뽑는 프로농구 초창기 방식으로 돌아가게 됐다는 것도 기존 외국인 선수들에게는 타격이다. 설사 원소속팀에 지명권이 돌아온다고 해도 포웰(197cm)이나 헤인즈(201cm)는 새 규정에서는 장신자로 분류되는데, 이들을 뽑게 되면 남은 한 자리를 193cm 이하의 단신으로 선발해야 하는 만큼 장신 빅맨을 보강하는 게 불가능하다. 외국인 선수에게 골밑을 의존하는 국내 농구의 특성상, 포웰과 헤인즈같이 어중간한 신장의 스윙맨들에게는 KBL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좁아지는 치명적인 규정인 셈이다.

오락가락 KBL 외국인 선수 규정

가장 큰 문제는 KBL의 외국인 선수 규정이 원칙도 일관성 없이 너무 자주 바뀐다는 점이다. 출범 이래 KBL의 외국인 선수 제도는 평균 2~3년마다 한 번씩 요동치기 일쑤였다. 드래프트에서 자유 계약제로 갔다가 다시 드래프트제로 회귀했고, 초기에 외국인 2인제와 장-단신 규정을 도입했다가 부작용이 늘어나면서 1인제와 신장합산제 등으로 보완했던 것을 몇 년도 못 가 또다시 뒤집는 식이다. 충분한 여론 수렴이나 향후 파장을 검토하지 않고 그때그때 즉흥적인 탁상공론으로 정책을 밀어붙였다가 문제가 생기면 슬그머니 또 제도를 바꿔버린다. 이래서는 리그의 권위나 안정성이 정착될 수 없다.

요즘은 많이 사라졌지만 프로농구 초창기만 해도 외국인 선수는 '용병'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았다. "돈을 받고 고용된 병사"라는 표현에는 공공연하게 외국인 선수에 대한 거리감과 배타적인 정서가 묻어있다. 물론 때때로 지나치게 돈만 밝히거나 실력만 믿고 자만하는 외국인 용병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들도 있다. 소속팀에 대해 국내 선수 이상의 강한 연대감을 가지고 한국 농구에 깊은 대한 애정을 지닌 선수도 많다.

SK 헤인즈는 한국 무대에서 활약한 최장수 선수 중 하나다. 지난해 비록 농구협회의 행정 착오로 무산됐지만, 대표팀 합류를 위해 국내 귀화까지 검토했을 만큼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한동안 플레이오프 진출과 거리가 먼 암흑기를 보냈던 SK를 다시 리그의 강호로 발돋움시킨 것도 헤인즈의 공이 절대적이다. SK는 최근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정규리그 마지막 홈경기에서 3년간 팀에 공헌했던 헤인즈와 커트니 심스를 위한 송별회를 마련하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포웰은 2007년 자밀 왓킨스(당시 동부) 이후 프로농구 역대 두 번째 외국인 주장이다. 전자랜드 팬들 사이에서는 '포주장', '포비 브라이언트', '캡틴포'같은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포웰은 2008년 전자랜드를 통해 KBL과 첫 인연을 맺었고, 이후 구단이 팀 매각설 등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던 2012년부터 다시 전자랜드에 복귀해 3년 연속 재계약할 만큼 인천과 끈끈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훈련 때는 어린 선수들에게 기술적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팀 분위기를 독려하는 등, 전자랜드에 대한 포웰의 애정과 충성심은 팬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이들만이 아니다. 포웰의 팀 동료인 테렌스 레더(전자랜드), 전창진 감독과 '톰과 제리' 듀오로 유명했던 찰스 로드(KT), 모비스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끈 리카르도 라틀리프(모비스) 등은 오랫동안 한국 무대에서 활약하며 많은 것을 이뤄낸 선수들이다. 이들이 만들어낸 숱한 기록과 이슈들은 모두 KBL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됐다. 단지 용병이나 지나가는 소모품이 아니라 KBL을 빛낸 일부분으로 존중받을 자격이 있는 선수들이다.

포웰과 헤인즈는 현재 6강 플레이오프에서 상대 팀의 에이스로 격돌하고 있다. 헤인즈는 1차전에서 당한 무릎 부상으로 잔여 시리즈 출장이 불투명해진 반면, 포웰은 2차전에서 극적인 결승골을 넣는 대활약으로 전자랜드의 2연승을 이끌었다.

두 선수 모두 소속팀에서 치르는 마지막 플레이오프가 될 가능성이 높다. 3차전에서 SK가 또다시 패하면 헤인즈는 팀의 마지막 경기를 벤치에서 지켜보며 고별 인사를 해야 한다. 2차전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이뤄낸 후 전자랜드 팬들에게 하트를 날리며 함께 환호하는 포웰의 모습은 '과연 이런 선수를 내년에는 전자랜드에서 다시 볼 수 없는가' 하는 아쉬움을 자아내게 한다.

KBL은 항상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마다 리그 발전과 흥행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운다. 그러나 팬도 선수도 원하지 않는 제도는 과연 누구를 위해서인지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리그를 더욱 재미있고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단지 외국인 선수들의 '득점력'이 아니라, 그들이 코트 안에서 한 팀의 일원으로 동료들-팬들과 함께 호흡하며 만들어내는 '스토리'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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