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 투 하트>의 포스터

<하트 투 하트>의 포스터 ⓒ tvN


이윤정 PD의 연출작인 tvN <하트 투 하트>가 16부로 막을 내렸다. 주인공인 고이석(천정명 분)과 차홍도(최강희 분)는 우여곡절 끝에 사랑을 지켜냈고, 안면홍조는 고칠 수 없었지만 대인기피증을 극복하는 차홍도의 모습을 마지막 회에서 볼 수 있었다. 다친 서로의 마음에 난 생채기를 치료하는 것은 결국 사랑이었다.

두 주인공의 만남은 필연일까

고이석은 재벌가의 장남으로 잘 나가는 정신과 의사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환자강박증으로 인해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 죽은 형에 대한 죄책감은 그에게 뭐든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했고, 어머니(진희경 분)의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신과 의사가 됐음에도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의 환자강박증은 어머니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무력한 자신에 대한 분노에 기인했을지 모른다. 그러한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마셨던 술이 결국 환자를 다치게 하면서 그의 잘난 의사 인생에 먹구름이 드리운다. 그리고 한 여자가 그의 인생에 들어온다. 헬멧을 쓰고 볼이 빨간 채로 자신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차홍도가.

차홍도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세상에 혼자 남겨진 외로운 아이였다. 자신의 집이 유일한 세상인 홍도는 밖에 나가는 게 무섭다. 세상 사람이 다 자신의 붉게 변한 얼굴을 쳐다볼까 두려워 무거운 헬멧을 꾹 눌러 쓰고 다닌다. 할머니 변장을 한 채로 다른 집의 가사 일을 돕는 것이 유일한 생계수단이다. 그런 그녀가 고이석이 쓴 <하트 투 하트>라는 책을 읽고 안면홍조로 인한 대인기피증을 고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채 그를 찾아간다. 그런데 그가 하는 짓이 영 믿음직스럽지 않다. 이기적인 돌팔이 의사라고 상대도 하지 않으려는데 그가 자꾸 신경 쓰인다. 할머니 변장을 한 오 여사로 그의 집에 드나들면서 그의 가정사를 알게 되자 아프고 상처받은 그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두 남녀 주인공은 묘하게 닮았다. 자라온 환경은 다르지만 고이석이 죽은 형과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신을 병들게 한 것과 차홍도가 안면홍조로 인한 대인기피 성향으로 자신을 집안에 가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무기력한 개인의 모습을 반영하는 까닭이다. 한데 안면홍조라고 해서 모두가 대인기피 성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사연에서 홍도의 대인기피 성향의 원인을 읽을 수 있다. 화재사건으로 인해 고이석의 형 일석이 죽게 되고 홍도는 성냥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로 고작 여섯 살의 나이에 경찰차에 오른다. 그때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 자신을 비난하던 그 눈빛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는 것으로 보아 사람들의 시선이 홍도에겐 트라우마로 작용했을 수 있다. 그러니 그 시선을 피해 안으로 숨을 수밖에.

불을 내고도 자신의 잘못이라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밝히지 못해 20여 년을 떠돌아다닌 이석의 아버지(엄효섭 분)도, 그런 자식의 치부를 감추고자 어린아이에게 책임을 지운 못난 부정의 할아버지(주현 분)도 행복하지 못했다. 형을 죽였다는 자책으로 형의 그림자로 살아왔던 고이석과 자식을 앞세운 어미로 떠도는 남편을 원망하며 삶의 순간순간이 고통스러워 죽고 싶어 했던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어린 홍도와 홍도의 할머니 나주댁도 마음의 빚을 지고 살아야 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손녀의 이름을 영지에서 홍도로 바꾸었을까. 20여 년 전, 일석의 죽음은 그렇게 모두에게 불행을 가져온 근원이었다.

과거를 인정하고 마주하기

세상 누구도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과거는 흘러가는 시간이라고 하지만, 그래서 흘려보내야 한다고 하지만 오늘의 시간이 어제의 과거가 되는 것을 보는 우리가 어제를 말끔히 잊기란 쉽지 않다. 오늘이 곧 과거이고 내일이 곧 과거가 될 테니까. 그렇다고 과거의 환영, 그 그림자를 부여잡고 길지 않은 평생을 산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는 우리를 끔찍한 무력감에 빠뜨리고 말 테니까.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과거의 기억과 직면하는 것. 과거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이 과거를 흘려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장 형사(이재윤 분)가 가져온 라이터가 찍힌 사진 한 장이 이석의 가족에게 계속되는 과거의 그림자를 지울 수 있는 단서가 되었다. 이석의 아버지는 잘못을 시인함으로써 더 이상 집을 떠나지 않고 가족 곁에 남을 수 있었고, 이석의 어머니 역시 고통스러워 지워버린 기억을 떠올리고 남편의 잘못을 인정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석은 자신을 사랑하는 홍도를 곁에 두고 행복할 수 있게 됐다. 홀로 미국에서 자라 외로웠던 막내 세로(안소희 분) 역시 장 형사와의 사랑을 이루었다.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럴 수 없었던 고이석과 차홍도는 생채기마저 보듬어 안으며 서로를 치유했고 이석의 가족 또한 과거에서 벗어나 오늘을 살 수 있게 됐다. 철학자 고가 후미타케와 베스트셀러 작가 기시미 이치로의 저서 <미움받을 용기>에 이런 대목이 있다.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

과거의 트라우마란 있을 수 없고, 트라우마가 현재의 불행을 야기한다는 사실 또한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의 현재가 우리의 의지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과거의 원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프로이트식 견해를 뒤집은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바탕을 둔 말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 과거에 우리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인생을 결정한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네 인생도 이석과 홍도처럼 해피엔딩일 수 있지 않을까. 

하트투하트 이윤정 피디 최강희 천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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