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장면 지난 14일, 배우 임태경과 바다가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커튼콜에서 석양을 배경으로 입을 맞추고 있다. 배우 임태경은 본인에게 맞지 않는 역을 소화하느라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바다의 연기와 노래는 출중하나, 캐릭터 자체의 매력이 별로 없어 인물이 빛을 발하지 못한다.

▲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장면 지난 14일, 배우 임태경과 바다가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커튼콜에서 석양을 배경으로 입을 맞추고 있다. 배우 임태경은 본인에게 맞지 않는 역을 소화하느라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바다의 연기와 노래는 출중하나, 캐릭터 자체의 매력이 별로 없어 인물이 빛을 발하지 못한다. ⓒ 곽우신


[기사 수정 : 23일 오전 10시 25분]

10년 동안 집필한 원고만 트렁크 하나를 가득 채웠다. 1936년 초고 출판 당시 1037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소설은 미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힌 책으로 자리매김한다. 1939년 영화화될 당시 러닝 타임만 230분. 긴 시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 박스오피스 흥행 1위 기록(인플레이션 고려)을 놓치지 않고 있다. 전설적인 고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서사가 얼마나 장대한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지난 2003년 프랑스에서 뮤지컬로 재탄생하여 관객들을 찾았다. 프랑스에서 흥행에 선전한 후, 소설 탄생 80주년을 맞아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한국 무대에 상륙했다. 지난 1월 9일,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아시아 지역 초연의 막을 올렸다. 지난 15일, 성황리에 서울 공연을 마무리했고 오는 3월 17일부터 부산을 시작으로 지방 순회공연에 돌입한다.

그러나 방대한 이야기를 150분이라는 시간에 억지로 구겨 넣은 탓일까. <출발! 비디오 여행> 같은 주말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관람한 듯, 씬 별로 툭툭 흐름이 끊어진다. 바람과 함께 인물도, 이야기도 사라져버린 뮤지컬이 되어버렸다.

총체적 난국,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린 인물의 설득력

배우 임태경과 바다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레트 버틀러를 연기한 임태경과, 스칼렛 오하라 역의 바다가 지난 14일 커튼콜에서 계단을 내려오며 인사하고 있다. 깨-바 커플로 불리며 이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커플 중 그나마 가장 괜찮은 합을 보여줬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평가일 뿐, 전반적으로 봤을 때 썩 좋지 못한 연기였다.

▲ 배우 임태경과 바다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레트 버틀러를 연기한 임태경과, 스칼렛 오하라 역의 바다가 지난 14일 커튼콜에서 계단을 내려오며 인사하고 있다. 깨-바 커플로 불리며 이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커플 중 그나마 가장 괜찮은 합을 보여줬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평가일 뿐, 전반적으로 봤을 때 썩 좋지 못한 연기였다. ⓒ 곽우신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총체적인 난국에 빠진 작품이다. 극 전체에 바람이 숭숭 불 것처럼 구멍이 뚫려서 '없는 것' 투성이다. 우선 극 중 인물을 보자. 작품의 주요 스토리는 레트 버틀러, 스칼렛 오하라, 애슐리 윌크스, 멜라니 해밀튼 4명이 이끌어 간다. 그리고 이외의 인물은 극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들이다.

스칼렛의 유모인 마마는 그냥 노예의 장이 노래를 부를 때 보조해주는 것 말고는 하는 일이 없다. 스칼렛의 아버지인 제럴드 오하라는, 2막에서 미쳐서 사망하지만 딱히 스칼렛에게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 벨 와틀링은 빨간 반짝이를 입고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다가, 레트에게 마차 한 번 빌려주는 게 끝이다.

그렇다고 4명의 연인들이 제 역할을 확실히 하는 것도 아니다. 도저히 인물의 동기를 종잡을 수가 없다. 레트 버틀러는 왜 남부 청년들과 각을 세워가면서까지 북부를 지지했는가? 알 수 없다. 그냥 자신이 '이방인'인 것이다. 그는 왜 스칼렛 오하라에 반해 사랑에 빠졌나? 설명은 없다. 갑자기 사랑한 거다. 그는 전쟁을 반대한다고 노래하지만, 정작 전쟁이 벌어지자 참전한다. 이유는 없다. 심지어 스칼렛을 데리고 전쟁터를 이동하던 중에-그렇게 사랑했건만-그녀를 버리고 떠난다.

그렇게 떠났으면서, 돈을 위해 자신에게 접근한 그녀를 향해 다시 사랑한다고 외친다. 스칼렛이 애슐리랑 바람을 피는 것을 안 순간 분노하지만, 마지막까지도 다시 시작해보려고 애쓴다. 그런데 정작 그가 스칼렛을 버리게 된 결정적 계기는 딸의 죽음이다. 관객들이 모두 뛰어난 통찰력의 소유자가 아닌 이상, 그의 동기를 이해하기 어렵다.

애슐리는 멜라니를 향한 일편단심을 보이지만, 2막에서 어느 순간 스칼렛에게 넘어가 있다. 왜인지는 알 방법이 없다. 그러다가 멜라니가 죽자마자 진정한 사랑은 멜라니였다고 슬퍼하며 노래한다. 동기 설명은 역시나 없다. 그나마 가장 '정상'적인 건, 애슐리가 바람을 피든말든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주는 멜라니지만 존재감이 정말 '바람' 같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스칼렛도 이 총체적 구멍을 피해갈 수 없다. 그토록 오랫동안 애슐리가 스칼렛을 향해 사랑하지 않는다고 얘기했음에도 애슐리를 가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정작 자신과 애슐리의 사랑의 장애물이었던 멜라니가 죽자, 자신이 레트 버틀러를 사랑했음을 깨닫는다.

사건의 시간순 배열이 각 사건의 인과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멜라니의 죽음을 보고 오열하는 애슐리를 보고, 애슐리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수도 있지만, 이는 이미 수차례 반복된 내용이다. 그런데 그게 대체 왜 레트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지는지 알 수 없다.

레트가 떠나자 당장 죽을 것처럼 매달리더니, 정작 떠나니 "그래, 나에겐 타라가 있어"라고 땅에 대한 애착을 보이는 데는 실소가 나온다. 역시나 또 다시, 이유는 없다. 이토록 인물이 엉망이니, 배우들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산발적으로 퍼진 메시지, '있을 때 잘해라'가 유일한 교훈?

배우 박송권과 앙상블 배우 박송권과 앙상블 연기자들이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지난 14일 커튼콜에서, 넘버 '인간은'을 다시 열창하고 있다. 노예의 장을 연기한 박송권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연기와 노래를 보여주나, 비중 자체가 워낙 곁가지인지라 전체 이야기에 녹아들지 못한다.

▲ 배우 박송권과 앙상블 배우 박송권과 앙상블 연기자들이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지난 14일 커튼콜에서, 넘버 '인간은'을 다시 열창하고 있다. 노예의 장을 연기한 박송권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연기와 노래를 보여주나, 비중 자체가 워낙 곁가지인지라 전체 이야기에 녹아들지 못한다. ⓒ 곽우신


그나마 이 극에서 가장 훌륭한 연기와 노래를 보여주는 건, 조연인 노예의 장이다. 이름도 없는 노예장 캐릭터는 1막과 2막에서 각각 '검다는 것'과 '인간은'이라는 넘버를 부른다. 웅장한 멜로디에 애절한 가사, 앙상블과의 힘 있는 합창이 어우러져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마마가 뒷받침하는 소울풍의 화음도 착착 감긴다.

그러나 정작 노예장을 위한 스토리나 에피소드는 전혀 없다. 그냥 갑자기 튀어 나와서 남부 노예들의 고달픈 삶과 불평등한 처우에 대해 절규한다. 이전까지 아무런 장면 묘사도, 설명도 없다. 심지어 노래 두 곡을 제외하면 대사조차 없다. 그러니 노예들이 아무리 자유를 외쳐봐야, 이 작품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소음에 지나지 않게 된다.

노예장과 앙상블의 '인간은'은 커튼콜에서도 불린다. 극이 막을 내리고 극장을 빠져나올 때 뇌리에 남아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가, 정작 극의 이야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인물의 넘버라는 건 아이러니하다. 아무리 뛰어난 노래라도, 작품과 별 연결점도 없는 두 곡을 듣기 위해 14만 원(VIP석 기준)을 지불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라기보다는, 26개의 독립된 노래를 부르는 갈라 콘서트 같다. 프랑스 뮤지컬 특유의 장르를 넘나드는 넘버들은, 동기부여 없이 사방팔방으로 튀어 다니는 인물들 덕택에 오히려 단점으로 다가온다. 토막 난 이야기들은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 각각의 노래는 미려하지만, 작품에 녹아들지 못해 큰 감동을 주는 데 실패한다.

메시지도 산발적으로 퍼진다. 이 극이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는 여러 종류가 있다. 진정한 사랑이란 누구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도 있고, 인간 평등과 박애주의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다. 전쟁의 참혹함이 어떻게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그릴 수도 있고, 남북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전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메시지 전달에 실패한다. 메시지의 문제가 아니라, 메신저의 문제다. 극 중 인물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관객의 관심법이 필요할 지경인데, 그가 하는 이야기가 어떻게 관객의 마음에 다가오겠는가.

원작 소설이나 영화를 보지 않은 채로, 뮤지컬만 보고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만 가득 찼다. 해외의 수작이 라이선스 작업을 거치는 과정에서, 어설픈 번역과 어처구니없는 각색으로 인해 망가지는 경우는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이 정도면 죄질이 심각하다.

그나마 가장 명료하게 다가오는 교훈은, '있을 때 잘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 정도이다. 결국 무대에 남은 건 자신을 사랑한 남자의 마음을 일찍 받아주지 못하고, 그가 떠나는 때에야 뒤늦게 후회하는 한 여자의 어리석은 선택뿐이다. 스칼렛은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만을 탐하려다 정작 자신의 바로 옆의 가장 소중한 존재를 깨닫지 못했다. 그 사람의 존재 가치를 뒤늦게 깨우치지만, 그가 이별을 결심한 후였다. 그때가 돼서 후회한들, 레트 버틀러의 말마따나 "솔직히, 내 알 바 아니다"

서울에서 막을 내린 이 작품은 오는 3월 17일부터 부산에서 다시 막을 열 예정이다.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포스터. 지난 1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을 내리고 오는 3월부터 지방 순회 공연에 들어선다. '역사적 아시아 초연'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총체적으로 난잡한 작품이 되어 버렸다.

▲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포스터. 지난 1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을 내리고 오는 3월부터 지방 순회 공연에 들어선다. '역사적 아시아 초연'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총체적으로 난잡한 작품이 되어 버렸다. ⓒ (주)쇼미디어그룹



뮤지컬 바람과함께사라지다 레트 버틀러 스칼렛 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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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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