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한 장면. 송일국의 '삼둥이' 중 첫째 대한이는 추성훈의 집에 놀러갔을 때도 VJ에게 관심을 보였다.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한 장면. 송일국의 '삼둥이' 중 첫째 대한이는 추성훈의 집에 놀러갔을 때도 VJ에게 관심을 보였다. ⓒ KBS


국정원 요원이 따로 없다. "뭐 하세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질문 세례에도 굳게 다문 입술. "나 지금 일하고 있다, 이게 내 직업이다!" 왜 말을 못해.

아빠와 아이의 48시간을 담는 KBS 2TV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시청하다 보면, 작은 텐트가 눈에 띈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강조하는 소품처럼 보이지만, 이곳은 엄연히 누군가의 일터다. 요정이 살고 있을 것 같지만, 그 안에는 그냥 '아저씨'가 몸을 구기고 있다. 가족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담기 위해 숨어 있어야 하는 카메라맨, VJ들이다.

그나마 촬영 초창기보다는 형편이 좀 나아졌다. 겨우 몸을 가릴 만한 박스에서 시작해 세모난 움막을 거쳐 지금의 집 모양 텐트로 바뀌었으니, 판자촌에서 30평대 아파트로 이사 온 셈이다. 공간은 2배 정도 넓어졌지만 '잠복' 촬영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한 번 들어가면 3~4시간 머물러야 하고, 때로는 사식 넣어주듯 텐트 안으로 들여 보내주는 김밥이나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기도 한다. 이 정도면 EBS <극한 직업>에 출연해도 될 것 같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고 싶은 집 주인(?)과 달리, 손님들은 불시에 찾아든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가장 에너지 넘치는 송일국네 '삼둥이'들이 한꺼번에 습격해오는 것은 다반사. 최근에 촬영을 시작한 엄태웅네서는 개 새봄이까지 얼굴을 들이밀고 아저씨의 안부를 물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 중인 엄태웅의 딸 지온이와 애견 새봄이도 VJ 아저씨가 뭐 하는지 궁금하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 중인 엄태웅의 딸 지온이와 애견 새봄이도 VJ 아저씨가 뭐 하는지 궁금하다. ⓒ KBS


아뎌띠가 '호~'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삼둥이' 둘째 민국이가 VJ에게 손가락을 보여주며 울상을 짓고 있다.

'삼둥이' 둘째 민국이가 VJ에게 손가락을 보여주며 울상을 짓고 있다. ⓒ KBS


"아뎌띠, 여기 다쳤어요."

살면서 차라리 카메라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가. 민국이의 치명적인 애교는 많은 이들을 TV 앞에서 '호~' 하게 만들었지만, 정작 눈앞에 있는 VJ는 이를 외면해야 했다. 국민 모성애를 자극한다는 대한·민국·만세의 뽀뽀 삼단 콤보를 아쉽게도 카메라 렌즈에 받아낼 수밖에 없는 마음은 오죽할까. 왜 대답이 없냐며 엄하게 꾸짖는 송만세 선생이 '때찌'를 해도 묵묵히 일할 뿐이다.

분명 누군가 있는 것 같은데 카메라만 왔다 갔다 하는 VJ 텐트를 '공룡' '악어'라고 표현했던 아이들은 수개월 이상 촬영이 진행되며 이제 VJ의 존재를 인지하게 됐다. 숨어 있다고 해도 테이프를 교체할 때 노출될 수밖에 없고, 여러 번 얼굴을 익혔기에 '삼촌' '아뎌띠(아저씨)'라고 부를 만큼 친밀해졌다. 너무 어려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던 이휘재네 서언·서준 형제도 심지어 '엉클(삼촌)'이라고 아는 척한다. 최근 방송에서는 민국이가 VJ의 기침 소리를 듣고 "삼촌, 기침하지 마세요"라고 걱정하는 모습이 담기기도 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연출하는 강봉규 PD는 "한집 당 평균 네 분의 VJ가 촬영하는데 두세 분은 거의 고정이라 이제 아이들과 많이 친해졌다"면서 "특히 배려심이 많은 민국이는 VJ가 부스럭거리는 움직임이나 기침을 한다든지 하는 소리에 반응을 해주는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촬영 초창기에는 송일국씨가 교육을 시켰어요.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카메라들이 이미 설치돼 있는데, '공룡 삼촌들에게 인사해야지' 하고 가르쳤죠. 그래서 대한·민국·만세 할 거 없이 다 텐트로 다가와서 인사해요." 

"VJ 텐트, 아이들보다 아빠들 때문에 친 것"

 <슈퍼맨이 돌아왔다> '삼둥이'들이 묵묵히 일을 하고 있는 VJ에게 대답을 요구하고 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삼둥이'들이 묵묵히 일을 하고 있는 VJ에게 대답을 요구하고 있다. ⓒ KBS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제작진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 몇 년 사이 우후죽순 생겨났지만, VJ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촬영하는 방식은 새롭다. 강봉규 PD는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거의 처음으로 시도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사실 아이들보다 아빠들 때문에 텐트를 쳤다"고 전한 강 PD는 "VJ들이 노출된 것과 가려져 있는 것의 차이가 크다"며 "촬영을 시작할 때 아빠들은 카메라를 인식할 수밖에 없어서 행동이 어색한데, VJ들이 보이지 않으면 한두 시간 후에 촬영하고 있다는 걸 잊어버린다"고 덧붙였다.

물론 이는 아이들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담으려는 방법이기도 하다. 지온이네 집에는 거울 뒤에도 VJ가 있다. 강 PD는 "지온이가 거울을 정말 좋아해서 무지하게 쳐다볼 거라는 판단 하에, 거울 안쪽에서 밖이 잘 보이도록 제작해 카메라를 설치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촬영하는 게 불편하고 단점도 있어요. 텐트 안에 들어가 있으면 움직일 수 없어서 따라가면서 찍을 수 없잖아요. 하지만 원샷, 정면을 포기하더라도 자연스러운 장면을 얻는 게 더 중요해요. 촬영에 대한 거부감을 덜고, 아빠와 아이들의 모습을 담을 수 있어서 장점이 더 많죠.

완전 초창기, 그러니까 파일럿 프로그램이었을 때는 텐트 안에서 7~8시간 촬영하기도 했어요. 너무 힘드니까 잠깐씩 나와 기지개 켜고 다시 들어가곤 했죠.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에요."

 <슈퍼맨이 돌아왔다> '삼둥이' 둘째 민국이가 VJ의 카메라에 입을 맞추며 아침인사를 건네고 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삼둥이' 둘째 민국이가 VJ의 카메라에 입을 맞추며 아침인사를 건네고 있다. ⓒ KBS


언젠가 삼둥이가 "잘 잤어요?"라고 예쁘게 웃으며 카메라 렌즈에 입을 맞추는 장면이 있었다. 애교가 많은 민국이는 평소에도 제작진에게 그렇게 뽀뽀를 잘한단다. 그런데 '먹방'으로 매번 화제가 되는 삼둥이인데도 희한하게 "텐트로 먹을 걸 갖다 주는 건 못 봤다"고 강 PD는 웃는다. 

물론 뽀뽀 한 번에 오랜 촬영으로 저린 팔과 다리가 풀리진 않겠지만, 아이들의 행동과 표정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건 VJ의 소소한 낙이라고. 그 모습을 안방까지 전달하기 위해 오늘도 <슈퍼맨이 돌아왔다>에는 또 다른 슈퍼맨이 숨어있다.

그렇게 신경을 쓰고 시청하니, 1일 방송에서는 유독 텐트 쪽으로 시선이 갔다. 송일국네 집에 놀러 온 추성훈네 사랑이와 삼둥이의 슈퍼 에너지가 합세하자 힘없는 텐트 2개가 흔들리고 뭉개지는 걸 보며 VJ들의 안부가 묻고 싶었다. 아뎌띠,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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