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신년특별기획 <미생물> 포스터

tvN 신년특별기획 <미생물> 포스터 ⓒ CJ E&M


'장그래' 장수원은 생각보다 덜 뻣뻣했다. 장도연의 '안영이'는 오리지널만큼 늘씬했다. 김동식은 헤어스타일만 닮았고, 유상무의 박 과장과 유세윤의 오구탁 반장은 패러디의 쾌감을 던져줬다. 그런데 이게 다 무슨 의미일까. 아니다. 어쩌면 tvN <미생물>은 패러디물의 한 획을 긋는 작품으로 남을지 모를 일이다.

첫 방송 평균 시청률 3.9%, 최고시청률 5.3%(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가구 기준). 언론의 쏟아진 관심과 이를 반영하는 각종 커뮤니티와 SNS 반응. 웃기거나 '병맛'이거나 혹은 <미생>의 기억을 반추하거나.

2일 방송된 <미생물>은 분명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에서나 이뤄지던 드라마 패러디를 60분 물 2부작 드라마로 완성했다. 그리고 유의미한 반향을 이끌어 냈다. <미생>이 방영되던 그 시간에 바로 그 팬을 꽤 많이 흡수했고, 매체들은 이 신선한 기획에 호의로 화답했다. 케이블의 재기발랄한 PD들과 작가들은 지상파의 견고하고 완고한 벽을 그렇게 차례차례 부숴가는 중이다.

'SNL' 제작진과 '코미디 빅리그' 개그맨들, '미생'을 연기하다

 tvN <미생물>의 출연진

tvN <미생물>의 출연진 ⓒ CJ E&M


<SNL 코리아> 제작진의 감각과 <코미디 빅리그> 출연진의 조화는 꽤 호기로웠다. 작가들은 <미생>의 포인트를 정확히 요약, 정리했고, 제작진은 'SNL' '무한직업'과 엇비슷한 씁쓸한 듯 '병맛'인 블랙코미디의 기운을 살려냈다. 연기자들의 과장된 연기는 <미생>이 '상찬'을 받았던 리얼리티의 정확한 대척점에 서 있었다. 

여기서 '요약·정리'가 중요하다. 매회 70분에서 90분을 오가던 다소 방만한 오리지널을 휘적휘적 갈겨쓰는 듯한 패기와 쾌감이라니. 원전을 희화화하고 망가뜨릴 수밖에 없는 운명인 <미생물>은 그 안에서 '로봇연기' 장수원이 연기하는 장그래의 과거를 바둑인에서 연예인 연습생으로 바꿔 놓고, 개그맨들의 패러디 연기에 많은 부분을 의존한다.

웃기지 않는다 해도 절반은 이기고 들어가는 승부다. 이미 <미생>을 완독하고 배우들의 연기를 본 시청자들은 비교와 격려, 반추를 거듭하며 패러디 그 자체를 즐기게 됐다. 그 안에서 유세윤이나 유상무, 곽한구 등 비교적 친근하거나 (사고를 쳐서라도) 이미지가 각인된 개그맨들이 뛰노는 광경은 재기발랄 그 자체다.

쏟아지는 tvN의 '미생' 우려 먹기, '응답' 시리즈 답습은 그만

 tvN <미생물>의 한 장면

tvN <미생물>의 한 장면 ⓒ CJ E&M


"그래서 어쩌자고?"란 물음이 고개를 들어도 어쩔 수 없다. 포복절도할 웃음과 거리가 멀다 해도 상관없다. 이미 <미생>의 인기를 업고 언론플레이에 성공한 이 패러디물은 밑져야 본전을 뛰어넘어 대성공을 거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

쉴 새 없이 달려가며 장그래의 인턴 시절과 정직원 채용 후를 그리는 <미생물>은 tvN이라서 가능한 발상의 전환을 제대로 구현했다. 이는 성공한 원작과 이를 매만질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진, 그리고 개그맨 연기자들을 한데 모을 만한 아이디어와 추진력, 자유분방함이 있어서 가능했다.  

다만 tvN이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보여줬던 '성공한 콘텐츠 우려먹기'를 <미생>으로도 답습할 것인지는 상당히 우려된다. 이미 tvN은 2일 오후 시간대에 <택시>의 '미생 특집', <미생물>과 <미생> 재방송을 연이어 편성했다. 철이 지나기 전에 틀어야 하는 게 유행가라지만, <응답하라 1994>와 같이 '과유불급'을 재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미생>'의 미덕이 무엇이었는지 곱씹을 때다.

미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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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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