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언론을 가리켜 '세상을 비추는 창'이라 부른다. 언론이 무서운 건 그래서다. 만약 그 창에 빨간 종이가 붙어있다면 세상은 온통 빨갈 것이고, 파란 종이가 붙어있다면 우리는 파란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제 언론이 전하는 기사를 무조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오보의 가능성뿐만 아니라 자본과 권력의 이해관계에서 언론 역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안다. 그래서 '진실의 파수꾼'이 되어야 할 기자들에게 사람들은 '기레기(기자+쓰레기)'라 손가락질 한다. 언론의 신뢰도는 이미 땅에 떨어졌다.

시대의 결핍은 늘 새로운 트렌드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현실 속 언론과 기자에 대한 대중의 실망감이 최근 드라마 속 캐릭터를 통해 새롭게 창조되고 있다. KBS 2TV 월화드라마 <힐러> 와 SBS 수목드라마 <피노키오>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방송사 보도국을 배경으로 열혈 기자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두 드라마가 그리는 '기자', 어떤 모습일까?

 기자를 소재로 한 두 드라마. SBS <피노키오>와 KBS 2TV <힐러>.

기자를 소재로 한 두 드라마. SBS <피노키오>와 KBS 2TV <힐러>. ⓒ SBS, KBS


그렇다면 대중이 바라는 기자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하나의 캐릭터로 구체화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두 드라마 속 기자들의 모습을 통해 어느 정도는 유추해 볼 수 있을 거 같다.

먼저, 8일 첫 방영된 <힐러>의 스타기자 김문호(유지태 분). 그는 한 방송사를 대표하는 스타기자이지만, 동시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골칫덩어리 기자다. 이날 방송에서 그는 해고 반대 시위 현장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한 노동자를 인터뷰 한 뒤, 생방송 뉴스에서 그 노동자를 그렇게 만든 책임은 바로 자신을 비롯한 기자들에게 있다고 고백하며 방송사를 발칵 뒤집었다.

"그 분이 그렇게 되고 나서야 인터뷰를 하러 갔다. 그 전에는 산업 해고 사태는 우리의 취재 대상이 아니지 않았냐"고 자책하는 김문호 기자의 모습에서 꼭 비극적이고 자극적인 일이 벌어진 뒤에야 취재경쟁에 나서는 우리 언론들의 행태가 겹쳐보였다.

김문호 기자의 모습을 통해 짐작해 보건대, 아마도 대중이 바라는 기자란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성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그런 '양심'을 갖춘 기자가 아닐까 싶다.

 8일 첫 방영된 KBS 2TV <힐러> 속 김문호(유지태 분) 기자.

8일 첫 방영된 KBS 2TV <힐러> 속 김문호(유지태 분) 기자. ⓒ KBS


다음으로 <피노키오> 속 최인하(박신혜 분)와 최달포(이종석 분)를 통해서도 우리는 지금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기자상을 엿볼 수 있다. 거짓말을 못하는 피노키오 증후군으로 본인이 납득해야만 취재를 하는 인하, 자신이 전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의 책임감과 무거움을 느낄 줄 아는 달포. 이 둘의 모습은 단독이나 특종이란 이름 아래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마치 진실인 것처럼 보도하거나, 대중의 흥미를 자극하기 위해 추측성 기사를 남발하는 우리 언론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지난 10월 '국경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2014년 세계 언론 자유 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작년보다 7단계 떨어진 57위를 기록했다. 이는 '눈에 띄는 문제가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언론, 입에 재갈을 물은 언론을 과연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힐러>와 <피노키오>가 약속이나 한 듯 기자를 소환한 이유는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비단 드라마 속 캐릭터가 아닌,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현실에서도 정의감 넘치는 기자, 거짓말 못하는 기자, 말 한마디의 무거움을 느낄 줄 아는 기자가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그래서 언젠가는 '기레기'란 조롱이 아닌 '기느님'이란 찬사가 당연시 되는 사회를 그려본다. 그때쯤이면, 그래도 지금보다는 더 살만한 세상이 오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saintpcw.tistory.com),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힐러 유지태 피노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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