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구단을 둘러싼 논란이 사회적 이슈로 확산되고 있다. 당초 선수단과 프런트간의 해묵은 갈등에서 비롯된 내부 문제에서 출발했다면, 최근에는 CCTV 사찰을 둘러싼 인권 침해와 기업 윤리의 문제로 그 범위가 확대됐다.

스포츠 뉴스가 아닌 시사프로그램과 신문 사회면에서 잇달아 이 문제가 거론되고 있고, 정치권에서조차 예의 주시하는 등 '롯데 사태'는 이제 구단 내부나 야구계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지 오래다.

롯데 둘러싸고 빚어진 갈등의 실체가 드러나다

사건의 시작은 지난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권두조 수석코치가 선수단과의 갈등으로 갑자기 하차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언론에는 강압적 방식을 사용한 권 코치가 젊은 선수들과의 소통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선수단이 직접 구단측에 권 코치의 교체를 요구했다는 내용 정도만 알려졌다. 구단 측이 이를 수용하고 권 코치가 사의를 표명하면서 갈등은 적당히 봉합되는 듯했다.

하지만 시즌 종료 후 김시진 감독이 4강 탈락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고, 구단이 차기 감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다시 내부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구단이 또 다른 구단 측 인사인 공필성 코치를 차기 감독으로 선임하려 했지만, 선수단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됐고 이 과정에서 선수단이 다시 '친프런트파'와 '반프런트파'로 갈려 파벌싸움의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때부터 그동안 롯데를 둘러싸고 빚어진 갈등의 실체가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롯데 선수단은 지난 10월 28일 공식 성명서를 통해 구단 프런트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프런트 핵심인사로 분류된 이문한 운영부장의 실명까지 거론했다. 이 부장이 중심이 된 프런트가 선수 및 코치진을 이간질했고, CCTV로 선수 사찰까지 했다는 내용이었다.

5월에 먼저 물러난 권두조 코치의 사퇴 역시 CCTV 문제가 관련돼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권두조-공필성 코치는 모두 일찍부터 '구단 측 인사'로 분류되던 인물. 무엇보다 권-공코치 때까지만 해도 선수단 내부 문제 정도로만 다루어졌던 사건들이, 이 시점을 계기로 '선수단 vs 프런트'의 갈등으로 바뀌면서 공개적인 '폭로전'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는데 주목할 만하다.

후진적인 조직문화와 인권의식 실종이 부른 비극

 프로야구 팀 롯데자이언츠가 구단 운영을 둘러싸고 팬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5일 저녁 부산 사직구장 앞에서 팬들이 처음으로 집회를 열었다. 팬들은 구단 프런트의 사퇴를 요구하며 집단 행동을 이어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프로야구 팀 롯데자이언츠가 구단 운영을 둘러싸고 팬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지난 5일 저녁 부산 사직구장 앞에서 팬들이 처음으로 집회를 열었다. 팬들은 구단 프런트의 사퇴를 요구하며 집단 행동을 이어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 정민규


궁지에 몰린 이 부장과 공 코치는 법적대응까지 시사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여기서 이 부장은 새로운 사실까지 추가로 폭로했다. 지난달 30일 인터뷰를 통하여 모든 사건의 원인이 최하진 대표이사에게서 비롯되었다고 밝힌 것. CCTV를 통한 선수 사찰도 자신이 아닌 최하진 대표의 지시라고 주장했다.

이 부장의 폭로에 따르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구단 최고위층인 대표가 프런트와 코치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즌 초반부터 롯데의 원정숙소 CCTV를 통하여 선수들의 동선을 체크하도록 지시했고, 이를 눈치를 챈 선수단과 여론의 반발이 심해지자 결국 이 부장과 일부 코치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꼬리 자르기'를 하려했던 셈이다.

최하진 대표는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CCTV 사찰 내용을 부분적으로 인정했다. 공교롭게도 최 대표는 과거 롯데그룹 감사실장 출신이기도 하다. 사실이라면 이는 명백히 불법일뿐 아니라, 고객의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CCTV 영상을 구단에 제공했을 호텔 역시 심각한 범죄행위에 동참한 것이 된다. 더구나 구단 경영진측이 결정한 내용이었다면, 모기업인 롯데 그룹 측에서도 과연 사전에 이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는지, 혹은 알고도 묵인했는지 여부도 논란이 될 수 있는 대목이다.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최하진 대표는 6일 오전 <부산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제가 책임지고 물러나는 게 도리다. 오늘이라도 물러나겠다"라고 사퇴 의사를 분명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일을 벗기면 벗길수록 몸통은 점점 커지고 파문은 확대됐다. 결국 구단이 구시대적인 방식으로 선수단을 통제하려는 과정에서 경영진까지 연루된, 조직적이고 심각한 불법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한국야구-기업계의 후진적인 조직문화와 인권의식의 실종이 불러온 비극이다.

'사회적 논란'이 되어버린 롯데 파문

이번 사태의 최대 쟁점은 CCTV 사찰의 타당성과 '사전 동의' 여부다. 주동자로 거론되는 최하진 대표는, 선수보호와 기강 확립의 차원에서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CCTV도 일방적인 사찰이 아니라 공개석상에서 회의를 통하여 거론된 내용이고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에게는 사전 동의를 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롯데 선수단은 아 사실을 전혀 통보받지 못했다는 입장이어서 진실게임은 불가피하다. 개인정보보호법상 당사자의 동의 없이 영상 자료를 제3자(구단) 측에 제공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다. 여기서 CCTV 촬영을 사전에 통보하라는 최하진 대표의 지시가 프런트와 코칭스태프를 거쳐 선수단에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선수단 측이 CCTV 촬영을 지시한 주체가 최 대표였다는 것을 과연 어느 시점부터 알았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밝혀진 것만으로도 롯데 구단 내부에 심각한 상호 '불통' 현상과 도덕 불감증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설사 롯데 선수단의 기강과 안전을 진심으로 우려했다고 해도 이런 방식은 용납될 수 없다. 롯데는 프로 구단이고 선수들은 엄연한 성인들이다. 팀의 규율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 선수가 있다면 규정에 따라 문책하면 그만이다. 대한민국에 롯데 외에도 많은 야구단과 스포츠팀들이 있지만 선수단 통제가 어렵다고해서 감시 카메라로 선수들을 사찰하지는 않는다. 선수단의 반발과 부작용이 드러난 상황에서도 CCTV 사찰이 수개월에 걸쳐 지속된 정황은, 구단 측이 처음부터 여론 수렴에 대한 최소한의 의지도 없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 큰 문제는 계속되는 롯데 구단의 헛발질이다. 롯데 측은 내부 갈등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던 상황에서 미봉책으로 사태를 덮는 데만 급급했다. 강압적으로 선수단을 통제하려다가 반발이 커지자 프런트를 이용하여 선수들을 회유하려했고, 갑작스러운 신임감독 선임과 총대를 멘 일부 프런트 및 코치진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식으로 당장의 국면 전환에만 급급했다. 결국 구단 최고위층까지 연루된 불법행위가 밝혀지며 구단과 모기업 이미지에까지 먹칠을 할 동안, 롯데는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고 사태를 방치했다.

구단 내부적으로 수습하기엔 너무 멀리 온 상황

 프로야구 팀 롯데자이언츠가 구단 운영을 둘러싸고 팬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5일 저녁 부산 사직구장 앞에서 팬들이 처음으로 집회를 열었다. 2명의 남성 팬은 집회에서 구단 프런트의 사퇴를 촉구하며 삭발했다.

프로야구 팀 롯데자이언츠가 구단 운영을 둘러싸고 팬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5일 저녁 부산 사직구장 앞에서 팬들이 처음으로 집회를 열었다. 2명의 남성 팬은 집회에서 구단 프런트의 사퇴를 촉구하며 삭발했다. ⓒ 정민규


알고 보면 이번 사태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국내 기업과 프로구단에 만연한 폐쇄성에서 비롯된 '구조적인 문제'임을 환기해야 한다. 이번 CCTV 사건이 결정적인 빌미가 되기는 했지만, 롯데만 해도 구단 운영과 프런트를 둘러싼 불신이 꽤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야구에 대한 이해나 애정이 없는 수뇌부가 낙하산으로 내려오고, 전문성보다는 구단 내부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조직이 좌우되는 기형적인 운영구조가 반복되면서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또한 이번 사건은 야구에 관심이 없는 일반 대중의 시각에서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안이다. 지난 정권에서 논란을 일으켰던 공공기관의 개인 불법 사찰이, 이제는 기업이나 사조직에 의하여서도 공공연하게 자행될 수 있다는 사실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과 불신을 안겼다.

이번 사태는 이미 구단 내부적으로 수습하기에는 너무 멀리 온 상황이다. 롯데 팬들은 지난 5일부터 경영진의 총사퇴를 요구하며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집회를 개최하는 등 본격적인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온라인에서도 성토의 목소리가 높다.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에도  부산의 상징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해온 지역 정서에 큰 상처를 준 사건이기에 당분간 화난 여론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야구계도 이번 사태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선수협 관계자들은 6일 오후 부산에서 비공개 회동을 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구단 측에 법적대응을 할지 여부를 논의할 전망이다.

이번 사태를 빌미로 아직도 프로구단들 내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인권침해'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선수들의 권익 신장과 규약 개정을 요구하는 선수협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수록,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해온 타 프로구단들의 대응 여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롯데그룹에서도 이제는 결단을 내릴 시점이 됐다. 논란의 핵심이 이제 구단 경영진에까지 올라오면서 모기업에서도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롯데에서는 그동안 암암리에 야구단을 그룹 내 비주류 혹은 좌천된 한직 정도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룹 내부의 무관심과 방치가 롯데 사태를 장기적으로 더욱 악화시킨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제라도 책임감을 가지고 구단 정상화를 위한 후속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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