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같은 2014시즌을 보낸 KIA 타이거즈가 고심 끝에 새로운 선장을 찾았다.

KIA는 지난 28일 제8대 감독으로 김기태 감독을 선임했다. 계약 조건은 3년 계약에 계약금 2억5천만 원, 연봉 2억5천만 원으로 총 10억 원이다. 지난 4월 말 LG에서 자진 사임했던 김기태 감독은 6개월 만에 프로 현장에 복귀하게 됐다.

논란 속에 등장한 김기태 KIA 감독

KIA는 올해까지 3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타이거즈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이었던 선동열 전 감독은 3년간 167승 9무 213패 승률 0.439의 초라한 성적을 남긴 채 쓸쓸하게 퇴장했다. KIA 구단은 애초 선동열 전 감독에게 2년 재계약을 보장하려 했으나 쏟아지는 여론의 비판과 '안치홍 파문' 등이 불거졌다. 부담을 느낀 선 감독이 1주일 만에 사임의사를 밝히면서 결국 새로운 감독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스타 선수 출신인 김기태 신임 감독은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해 삼성-SK 등을 거쳐 2005년까지 활약한 국내 간판 좌타자였다. 은퇴 후 SK와 일본 프로 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코치를 거쳐 2010년 LG의 2군 감독으로 부임했다가 2012년 1군 감독으로 승격했다.

경기바라보는 김기태 감독 13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LG 트윈스 대 NC 다이노스의 경기. LG 김기태 감독이 더그아웃에서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지난 4월 13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LG 트윈스 대 NC 다이노스의 경기에서 LG 김기태 감독이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김기태 감독은 지난 28일 KIA의 감독으로 선임됐다. ⓒ 연합뉴스


부임 2년 차였던 2013년에는 74승 54패(승률 0.578)를 기록하며 LG를 11년 만에 가을 야구로 이끌며 지도력을 검증받았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초반이던 4월 23일 LG가 바닥권 성적에 머무르자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돌연 자진 사퇴했다. 프로야구 사상 가장 충격적인 감독의 중도 하차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김기태 감독이 떠나고 난 뒤 LG는 양상문 신임 감독 체제에서 거짓말 같은 4강 진출에 이어 플레이오프까지 오르는 반전을 일궈내기도 했다.

지도자로서 김기태 감독의 강점은 뛰어난 '소통' 능력이 첫 손에 꼽힌다. 현대 야구에서 소통은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힌다. 김 감독은 한때 모래알 조직력과 감독들의 무덤으로 악명 높았던 LG에서 선수단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몇 안 되는 감독이었다. 현역 시절엔 오히려 엄격하고 단호한 강성 이미지가 강했지만, 지도자로 변신한 이후에는 선수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친근한 '형님 리더십'으로 마음을 사로잡았다.

자존심이 강한 선수들이 많았던 LG에서 김기태 감독은 '약속과 배려'라는 원칙을 지킨 게 성공 비결로 거론된다. 단기간에 선수들을 장악하려고 했던 전임 감독들과 달리, 김기태 감독은 선수들의 입장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소통하려고 애썼다. 감독으로 내뱉은 말은 무조건 지켰고, 항상 선수들의 편에서 먼저 이해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줬다.

해태 향수는 이제 버려야...

김기태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동안 LG는 출전 시간이나 팀 내 비중을 둘러싼 잡음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인위적인 세대교체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선수들의 경쟁 구도를 유발해낸 것이 성공적이었다. 선수 개개인의 역량에 비해 팀으로서의 조직력이 떨어졌던 LG가 김기태 감독 체제에서 조화를 갖춘 팀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다.

김기태 감독의 소통은 지금의 KIA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전임자 선동열 감독을 비롯하여 최근 몇 년간 KIA를 거쳐 간 감독들은 선수단 장악 과정에서 많은 갈등을 빚기도 했다. 고참급 선수들과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아 코칭 스태프와의 상호 신뢰가 깨지고, 전체적인 팀 분위기도 정체되는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KIA 야구는 현재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직도 KIA 하면 '해태 왕조'의 향수를 떠올리는 팬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지금의 KIA에서 해태의 역사는 이미 단절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해태 왕조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던 선동열 감독의 초라한 실패는, 더 이상 KIA에 해태 시절의 향수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바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선 감독 외에도 KIA를 거쳐 간 역대 해태 출신 감독들의 성적표는 그리 좋지 못했다. 이적생들의 증가 때문이기도 하지만, 달라진 야구 트렌드 속에서 헝그리 정신이나 한국시리즈 DNA, 엄격한 선후배 위계질서 등으로 대표되던 '해태 스타일'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김기태 감독은 현역시절 KIA-해태와는 별다른 연결 고리가 없었지만 호남 야구의 산실인 광주일고 출신이다. 전임자나 다른 감독 후보들처럼 해태의 유산을 계승해야 한다는 정신적 부채에서 자유로우면서도 KIA 팬들에게는 사실상 고향 팀 스타나 다름없는 친근함으로 어필할 수 있는 인물이다. 세대교체와 리빌딩의 시기를 맞이한 KIA에서는 김기태 감독은 원점부터 자신만의 팀을 새롭게 만들어갈 수 있다. KIA의 미래가 돼야 할 젊은 선수들이나, 선동열 전 감독 체제에서 소외 받았던 고참급 선수들과 마음의 벽을 허물어가는 게 가장 시급하다.

팬들의 인내심과 감독 자신의 성숙함 필요해

다음 시즌 KIA의 사정은 결코 좋지 않다. 올 시즌 8위에 그친 성적에 그나마 핵심 전력으로 꼽히던 양현종, 김선빈, 안치홍 등이 입대와 이적으로 대거 이탈을 앞두고 있다. 최대 약점이던 투수력은 유망주들의 더딘 성장으로 걱정을 보탠다. 하지만 김기태 감독은 LG 시절에도 부임과 함께 주축 선수들의 FA 이적과 승부 조작 사건 등이 맞물리며 최악의 전력 누수 속에서도 리빌딩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전례가 있다. 한 번 믿음을 준 선수는 끝까지 믿고 기용하는 '뚝심'은 김기태 감독의 또 다른 장점이기도 하다.

물론 김기태 감독이 넘어야 할 벽도 존재한다. 이는 구단과 팬들이 얼마나 전폭적으로 김기태 감독을 믿고 인내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KIA 팬들은 팀에 대한 애정이 지극한 것과 동시에 돌변하면 가차 없이 비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조범현 전 감독은 KIA에 한국 시리즈 우승을 안기고도 이듬해 성적이 추락하자 일부 홈 팬들의 극심한 인신공격성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타이거즈의 대표적 전설 출신인 선동열 감독도 성적 하락과 재계약 문제를 둘러싸고 가족들까지 비난에 시달리는 등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했다. IMF 위기로 팀이 공중 분해됐던 해태 시절 말기 이후 처음 겪는 암흑기 속에서 당장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리빌딩을 믿고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김기태 감독 역시 초보 감독 이미지가 남아 있던 LG 시절 이후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LG 시절 많은 업적과 장점에도 몇몇 치명적인 흠결은 옥에 티로 남아 있다. 2012년 SK와의 경기 도중 상대의 투수 교체에 발끈해 투수를 마지막 대타로 내보낸 경기 포기 사건이나, 올 시즌 성적 부진을 이유로 주변의 만류에도 자진 사퇴를 강행한 것은, '포기태' '포기가 빠른 남자'같은 굴욕적인 별명을 얻으며 다소 무책임하고 경솔한 이미지 또한 남겼다. 그렇게 감독직을 박차고 나온 지 불과 6개월 만에 바로 또 다른 팀의 감독으로 복귀한 것을 두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조직력은 떨어졌어도 선수 자원 자체는 비교적 풍부했던 LG에 비해 KIA는 말 그대로 김기태 감독이 바닥에서부터 하나하나 팀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LG 시절보다 더욱 험난한 리빌딩이 될 수 있다. 어쩌면 타이거즈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에 감독직을 수행하게 된 김기태 감독. 그는 과연 팬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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